
AI 상담원 확산에 고객만 ‘답답’
“0번을 누르시면 상담원과 연결됩니다.”
“0번.”
“AI 전문 상담원이 상담을 도와드리겠습니다.”
6분 41초. 지난달 25일 한 보험회사 고객센터에서 인간 전문 상담원과 연결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단순히 상해 이후 보장 가능 여부를 확인하려고 전화했지만, 대표번호 안내에서 문의 항목을 정확히 찾기 어려웠고 AI 상담은 청구 접수 안내로만 이어졌다. 결국 여러 단계를 반복한 끝에야 직접 문의가 가능한 인간 상담원과 연결됐다.
금융권 전반에 AI 도입이 확산되면서 고객센터에도 ‘AI 전문 상담원’이 빠르게 자리잡고 있다. 은행과 보험사가 AI 활용을 통해 업무 효율성을 높이고 고객 편의성을 강화하겠다는 전략이지만, 현장에서는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한 채 안내만 반복되는 상황에 고객 불만이 누적되고 상담원의 스트레스도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비슷한 불만이 확인된다. 자동계좌이체가 설정됐다는 문자를 받고 확인차 대표번호로 전화한 A씨는 상담사 연결이 되지 않아 인터넷에서 ‘인간 상담사 연결 방법’을 찾아야 했다며, “20대인 본인도 이렇게 힘든데 연세 드신 분들은 어떻게 쓰냐”고 토로했다. AI가 고객 말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다시 말해달라”는 응답만 반복해 상담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감독당국은 2024년 7월, 금융회사들이 AI 상담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금융소비자의 소통 불편이 발생한다는 언론 지적과 민원이 제기되자, AI 상담을 운영 중인 금융회사와 협의해 고령 금융소비자가 일반 상담원과 쉽게 소통할 수 있도록 안내 절차를 개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향후 AI 상담 도입시 금융회사에 대해 소비자 선택권과 편의성을 고려한 시스템 마련을 지도하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도 현장에서는 유사한 불편이 반복된다는 평가다. 특히 ‘상담사 연결’ 선택지를 눌러도 인간 상담원이 아닌 AI 상담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 소비자 입장에서는 체감 불편이 더 커질 수 있다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문제의식은 보고서에서도 확인됐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지난해 10월 발간한 ‘AI와 인간의 협업을 통한 금융 상담 혁신’ 보고서에 따르면, 금융사 콜센터 AI 상담 서비스 만족도는 21.6%에 불과했다. 응답자의 73.6%는 ‘AI가 요구사항을 이해하지 못해’ 불편을 겪었고, 56.9%는 ‘인간 상담원 연결 과정’에서 불편을 느꼈다고 답했다.
부작용은 상담 현장에도 전가되는 모습이다. 같은 보고서에서 상담원의 66%는 AI 도입 이후 ‘근무 여건이 악화됐다’고 응답했으며, 그 이유로 53%가 ‘AI 기술 오류로 인한 고객 민원 스트레스 증가’를 꼽았다. 단순 문의를 AI가 처리해 상담사 부담을 덜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해결되지 않은 문의가 누적되면서 감정노동과 민원 응대 부담이 오히려 커졌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보험·은행권을 중심으로 금융권 전반에서 AI 상담원 활용은 확대되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융권의 AI 상담 도입은 상담사를 대체하기 위한 목적이라기보다는 상담 업무의 효율성과 정확성을 높이기 위한 보조 수단에 가깝다”며 “단순·반복 문의는 AI가 신속히 처리하고, 보다 복잡하거나 정교한 판단이 필요한 상담은 전문 상담사가 직접 응대하는 구조가 기본 방향”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금융 상담은 신뢰와 공감이 중요한 영역인 만큼 전문 상담사 연결 지연으로 불편을 느끼는 부분을 업계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며 “AI 상담을 확대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상담사의 업무 부담을 줄여 전문 상담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인 만큼, 데이터 축적을 통해 AI 상담의 전문성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고도화해 편의성을 높이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