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직연금 사전지정운용제도, 일명 디폴트옵션이 가입자 수 734만 명, 적립금 53조원을 돌파하며 안착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2024년 말 기준 금융감독원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이 제도는 전년 대비 가입자가 16.3%, 적립금은 32.9% 성장했으며, 특히 개인형 퇴직연금(IRP) 부문에서 54.5%의 자산 증가율을 기록하는 등 뚜렷한 확산 흐름을 보이고 있다. 현재 41개 금융기관이 319개 승인 상품을 운영 중인 가운데, KB국민은행이 10조9353억원으로 가장 많은 적립금을 운용하고 있다.
눈에 띄는 점은 일부 투자유형의 높은 수익률과 전체 수익률의 괴리다. 적극투자형은 연간 14.9%, 중립투자형은 10.8%의 수익을 기록했지만, 전체 평균 수익률은 3.7%로 전년 4.1%보다 하락했다. 이는 전체 적립금의 85%, 가입자 79%가 안정형 상품에 집중돼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안정형은 은행 예금이나 원리금보장보험 등으로 구성돼 수익률이 2.6%에 그치며, 물가 상승률(2.1%)을 겨우 상회하는 수준이다.
이러한 자산 배분 편중은 장기적인 노후자산 형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자산군에 분산 투자해야 하지만, 현재 구조는 안정성에 치중되며 성장 잠재력을 소홀히 하고 있다는 평가다. 이에 따라 정부는 2025년부터 상품명을 기존 ‘안정형’ ‘적극형’에서 ‘안정투자형’ ‘적극투자형’으로 변경해 투자 개념을 강조하고, 금융기관별 위험등급별 판매 비중을 공시 대상에 포함하는 등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업계는 이번 공시 강화가 소비자의 자발적 자산 배분 전환을 유도할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가입자가 자신의 투자 성향에 맞는 상품을 보다 투명하게 선택할 수 있게 되며, 금융사들도 단순한 자산 보관을 넘어 장기 수익 창출을 위한 운용 전략을 내놓을 필요가 생겼다. 특히 보험사와 은행은 원리금보장 중심의 상품 구조를 재고하고, 리스크와 수익이 균형 잡힌 상품 라인업 확충이 요구될 전망이다.
고용노동부와 금융감독원은 디폴트옵션이 근로인의 노후 소득 보장 핵심 수단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제도 운영의 투명성과 선택의 질을 높여나가겠다는 방침이다. 장기적으로는 퇴직연금 적립금이 단순한 저축이 아닌, 실질 구매력을 확보하는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시스템적 뒷받침이 지속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