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의 눈 보험, 신뢰로 돌아갈 시간
지난 14일 보험업감독규정 개정안이 의결되면서 보험판매제도 개편이 확정됐다. 보험판매 수수료 개편안과 1200%룰을 법인보험대리점(GA)까지 확대 시행하는 방안이 정해졌다.
이번 개편은 단순히 설계사 보수를 조정하는 문제가 아니다. ‘누가 더 많이 파느냐’에서 이제는 소비자를 위해 ‘누가 더 오래 책임지느냐’로 시장의 기준이 옮겨진 것이다. 소비자보호가 구호로만 남지 않으려면 보험이 계약의 시작뿐 아니라 끝까지 작동하는 산업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 출발점은 유지율부터다. 보험은 가입 순간보다 시간이 흐른 뒤 효용이 커지는 상품으로, 계약이 오래 유지될수록 보장 공백을 줄이고 불이익을 피할 수 있다. 유지율이 낮다는 것은 ‘필요할 때까지’ 계약이 버티지 못했다는 뜻이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2년 초과 보험 유지율은 69.2%로 해외와 비교해 낮은 편이며, 싱가포르 96.5%, 일본 90.9%, 대만 90%, 미국 89.4%와 격차가 크다. 2년을 갓 넘긴 시점에서 계약이 흔들렸다는 건, 보험이 약속의 상품이기 전에 ‘변경의 상품’으로 받아들여져 왔다는 신호로도 읽을 수 있다.
유지율 하락이 남기는 비용은 크다. 초기 수수료가 계약 초반에 집중되다 보니 현장에선 유지 관리보다 신규 계약이 더 빠른 성과로 평가돼 꼭 바꾸지 않아도 되는 상품을 갈아타도록 권유하기도 한다. 계약 이후 설계사의 연락이 점검과 케어가 아닌 권유만으로 온다면 소비자는 보험이 생활의 안전망이 아니라 선택을 재촉하는 상품으로만 느낄 수 있다. 보험은 한 번 해지하면 면책·감액기간을 다시 밟아야 하고, 같은 보장을 다시 구성하려면 보험료가 높아지거나, 건강 상태가 달라져 가입 자체가 어려워지기도 한다. ‘좋아졌다’는 설명이 언제나 더 나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게 된다.
이번 개편으로 영업 현장에선 설계사와 GA 수익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다만 수수료 체계를 손보는 것은 ‘판매’에만 몰리던 동기를 ‘유지’로 분산시키기 위한 장치로, 과열된 경쟁을 낮추고 장기 유지와 사후 관리의 가치를 키우려는 방향은 분명해 보인다. 산업이 얻어야 할 성과는 신규 계약 건수가 아니라, 계약이 유지되는 시간과 고객의 만족도여야 한다.
유지율을 높인다는 것은 단순히 해지를 막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소비자가 ‘이 계약을 계속 가져가도 된다’는 확신을 갖게 만드는 과정이다. 계약 체결 후 1년, 2년, 3년째 점검이 이어지고, 청구와 상담이 편해지고, 생활 변화에 맞춰 보장이 조정될 때 보험은 일상의 안전장치가 되고, 소비자가 보험을 바라보는 눈도 달라질 것이다. 선진국의 높은 유지율은 상품이 뛰어나서라기보다, 장기 관리가 표준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일 수 있다.
다만 제도는 방향을 제시할 뿐, 신뢰는 현장에서 완성된다. 설계사는 계약에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하고, 보험사는 팔기 쉬운 사업비 경쟁에서 벗어나 유지 가능한 상품 구조와 청구·상담 같은 사후 서비스에 투자해야 한다. GA와 전속채널 모두 단기 실적보다 장기 관리가 인정받는 평가 체계를 갖춰야 한다.
유지율이 오르면 분쟁이 줄고, 설계사도 장기 고객 기반으로 전문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 미래의 위험을 현재의 약속으로 바꾸는 계약이 보험이다. 그 약속이 25개월을 넘기지 못한다면, 소비자에게 보험산업은 계속 신뢰를 잃을 수밖에 없다. 이번 보험판매제도의 개편은 보험이 본래의 자리로 돌아갈 기회다. 판매 중심에서 관리 중심으로, 단기 경쟁에서 장기 신뢰로. 이제는 수익을 위한 갈아타기가 아니라, 소비자의 삶을 지키는 보험업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갈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