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험사, 혁신 산업 ‘큰손’ 돼야”… 빗장 푼 해외 ‘주목’
국내 보험산업이 1100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자산을 보유하고도 국공채 위주의 보수적 운용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해외처럼 인공지능(AI)·에너지 등 혁신 분야의 ‘장기 모험자본’ 공급자로 거듭나려면 정부 차원의 유인책이 절실하다는 주장이다.
박지원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 10일 금융브리프 포커스 ‘보험회사의 장기 모험자본 공급 해외 사례와 시사점’을 통해 “해외에서는 제도적 인센티브나 시장 자율 접근을 통해 보험사 장기자금을 혁신 분야에 활용하고 있다”며 개선책 마련을 강조했다.
“정부가 보증 서니 돈이 돈다”… 벤처·인프라로 향하는 보험사
보고서에 따르면 선진국의 혁신 분야 투자 형태는 ‘정부 주도형’과 ‘시장 자율형’으로 나뉜다. 특히 유럽은 정부가 적극적인 ‘당근’을 제시해 보험사의 투자를 유도하고 있다.
대표적인 성공 사례는 프랑스의 ‘티비(Tibi) 이니셔티브’다. 정부가 우량 벤처 펀드를 인증(라벨)하면 보험사가 출자하는 구조로, 정부 검증을 통해 리스크를 줄인 결과 1단계(2020~2022년)에만 목표를 초과한 64억 유로가 실제 투자됐다.
영국은 브렉시트 후 ‘솔벤시 UK(Solvency UK)’를 도입해 투자 여력을 키웠다. ‘위험마진’을 축소하고 ‘매칭조정’ 요건을 완화해 친환경 인프라 등에 자금이 흐르게 설계했으며, 이에 영국 보험협회(ABI)는 향후 10년간 1,000억 파운드 투자를 약속하며 화답했다.
반면 미국과 일본은 시장 자율을 택했다. 미국 보험사는 별도 프로그램 없이도 사모신용·인프라 시장을 통해 자산의 10~30%를 운용하며 실물경제 자금원으로 기능한다. 일본도 금융청(FSA) 가이드라인 아래 보험사들이 자율적으로 임팩트 투자를 늘리는 추세다.
규제에 묶인 손발… “제도 개선·위험 분담 이뤄져야”
국내 상황은 녹록지 않다. 박 연구위원은 “지급여력제도(K-ICS·킥스)와 새 보험회계 국제기준(IFRS17) 도입 후 자본 규제 부담과 손익 민감도가 커져 국공채 위주 운용에 치중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금융당국이 규제 개선에 나섰지만 아직 부족하다는 평가다. 보험사들이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설립 등 스타트업 투자에 나섰으나, 대부분 본업 연계 소규모 투자에 그쳐 대규모 인프라 투자를 주도하기엔 역부족인 상황이다.
보고서는 진정한 ‘모험자본 공급자’가 되기 위한 정교한 정책 설계를 제언했다. 박 연구위원은 우선 “영국 사례를 참고해 사실상 사문화된 ‘매칭조정’ 제도를 인프라 등 장기 자산까지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생산적 금융과 연계해 보험사의 자본 부담(요구자본)을 덜어주자는 취지다.
투자 인프라로는 ‘국민성장펀드’ 활용을 주문했다. 펀드가 모펀드(앵커 자본)로서 위험을 분담하면, 보험사들이 후행 투자자로 참여해 심사 부담 없이 모험자본 공급에 나설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박 연구위원은 “보수적 관행을 고려해 시범사업이나 공동 펀드부터 시작해 점진적으로 확대하고, 성과를 보며 규제를 보완하는 단계적 전략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