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영흡의 종횡무진 세계사 적정 이자율의 중요성을 일깨운 스웨덴 경제학자, 크누트 빅셀

송영흡의 종횡무진 세계사 적정 이자율의 중요성을 일깨운 스웨덴 경제학자, 크누트 빅셀
뉴스를 보다 보면 기준금리 이야기가 거의 빠지지 않는다. “이제 인하 국면에 들어선 것인가”, “추가 인하는 언제 가능할까” 같은 질문이 반복된다. 이 과정에서 금리는 마치 시험 점수처럼 취급돼 2.5%면 낮은지 3.5%면 높은지, 숫자 그 자체가 판단의 출발점이 된다. 그러나 한국의 통화정책을 둘러싼 혼란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중요한 것은 금리의 절대적인 수준이 아니라, 그 금리가 한국 경제의 구조와 조건 속에서 어떤 위치에 놓여 있는가다. 이 문제를 처음으로, 그리고 가장 체계적으로 제기한 인물이 바로 스웨덴 경제학자 크누트 빅셀(Knut Wicksell)이다.
스웨덴은 중세 초 바이킹 사회에서 출발한 왕국으로, 17세기 발트해 패권을 둘러싼 전쟁을 거치며 국력이 크게 소진됐다. 이 경험 이후 스웨덴은 대외 팽창을 포기하고 중립 노선을 선택했으며, 내부 제도와 사회 안정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국가 전략을 전환했다. 20세기에는 두 차례 세계대전 속에서도 중립을 유지했고, 이후 노사 협력과 조세 기반을 토대로 복지국가를 구축한 국가로 평가받는다.
빅셀이 활동하던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스웨덴은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이동하는 전환기에 놓여 있었다. 산업화가 본격화되며 성장 잠재력은 빠르게 확대됐지만, 통화제도는 금본위제에 묶여 있어 중앙은행이 활용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반면 은행 부문의 신용은 급속히 팽창해 투자 붐과 자산가격 상승을 촉발했고, 그 결과 물가 변동과 경기의 큰 진폭이 반복됐다.
불안정은 사회적 긴장으로 이어졌다. 임금과 생활비의 괴리가 커지며 실질소득은 불안정해졌고, 자산 상승의 혜택은 자본가층에 집중되면서 계층 간 갈등도 심화됐다. 여기에 경기 변동에 따른 실업과 빈곤, 해외 이민 증가까지 겹치며 기존 제도에 대한 불만이 누적됐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빅셀은 통화량 자체보다 이자율과 실물경제의 균형 관계에 주목했다. 그는 우리가 실제로 접하는 시장금리와, 경제가 과열도 침체도 없이 균형을 이루는 상태의 금리를 구분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 균형 금리가 바로 자연이자율이며, 오늘날 정책 논의에서 사용하는 중립금리(r*)는 이 자연이자율을 토대로 한 정책적 추정치에 가깝다. 즉 자연이자율은 관측 가능한 ‘정답 숫자’가 아니라, 성장 잠재력·인구 구조·생산성·기술 변화 등 구조적 조건을 반영해 판단해야 하는 이론적 기준선이다.
빅셀의 핵심 통찰은 명확하다. 시장금리가 자연이자율보다 낮게 유지되면 차입과 투자가 늘어나며 경제는 과열되고, 물가와 자산 가격 상승 압력이 누적된다. 반대로 시장금리가 자연이자율보다 높아지면 소비와 투자가 위축되며 경기 둔화와 디플레이션 위험이 커진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과정이 자동으로 반대 방향으로 되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금리가 균형점에서 벗어나 있는 한 그 효과는 시간이 지날수록 한 방향으로 쌓이며 부작용은 점점 확대되는데, 이것이 빅셀이 말한 ‘누적 과정’의 효과다.
이 개념은 샤워에 비유하면 이해하기 쉽다. 샤워의 목적은 겨울에는 몸을 따뜻하게 하고, 여름에는 시원함을 느끼는 데 있다. 샤워기에서 나오는 물이 25도라고 하면, 여름에는 시원하게 느껴지지만 겨울에는 차갑게 느껴진다. 물의 온도는 같지만 계절이라는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겨울에 25도의 물로 계속 샤워하면 몸은 점점 더 추워질 것이고, 반대로 여름에 시원함을 기대하며 30도의 물로 샤워를 하면 오히려 더 덥게 느껴질 것이다. 금리(이자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같은 2.5% 혹은 3.5%라도 경제 환경에 따라 완화적이거나 긴축적으로 작용할 수 있으므로 기간에 따라 경제에 미치는 누적효과를 점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결국 바람직한 금리 정책이란 시장금리가 자연이자율에서 지나치게 벗어나지 않도록 균형을 관리하는 데 있다. 중립금리는 맞혀야 할 ‘정답 숫자’가 아니라, 정책이 과도한 완화나 긴축으로 기울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기준선에 가깝다. 따라서 통화정책의 성숙도는 “언제 금리를 인하했는가”가 아니라, 변화하는 경제 구조 속에서 적정 이자율이라는 좌표를 얼마나 일관되게 의식하며 정책을 운용했는가로 평가되어야 한다.
다양한 정치적·경제적·사회적 환경이 중첩된 오늘의 한국 경제는 복합적인 위기 국면에 놓여 있다. 이런 상황에서 통화정책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고, 그 성격 역시 한층 정교해질 수밖에 없다. 점점 복잡해지는 현대 경제에서 통화정책은 구불구불한 산악도로를 달리는 운전과도 같다. 속도를 한 번에 크게 바꾸기보다 도로의 굴곡과 주변 여건을 살피며 핸들을 미세하게 조정해, 너무 빠르지도 너무 느리지도 않게 나아가는 것이 핵심이다.
안전을 지키면서도 정체되지 않도록 균형 잡힌 운전이 필요하듯, 금리 정책 역시 신중한 판단과 조정을 통해 경제가 불안정한 구간을 안정적으로 통과하도록 도와야 한다. 이러한 관점은 한 세기 전 크누트 빅셀이 스웨덴의 현실을 고민하며 제시한 자연이자율과 중립금리의 의미가 오늘날 한국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