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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엽의 만만보(萬漫步) 산책] 2025년 산책로를 되돌아보며

 전인엽의 만만보(萬漫步) 산책  2025년 산책로를 되돌아보며

전인엽의 만만보(萬漫步) 산책 2025년 산책로를 되돌아보며

2025년도 어느덧 삼백육십이일이 훌쩍 흘러갔다. 사흘만 지나면 2026년이다. 12월 마지막 주 도시인의 발걸음은 변함없이 분주하다. 일년 풍파를 슬기롭게 헤치고 연말까지 숨가쁘게 달려온 시민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길은 흔적을 새겨 지나온 발걸음을 반추할 수 있게 한다. 만만보 산책길은 올해 무엇을 새겨 놓았을까 천천히 되돌아 걸어본다.

단골 산책로인 광화문광장과 시청광장. 작년 12월 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어처구니 없는 비상계엄령 선포로 시민들은 연초부터 또 다시 촛불을 들고 ‘파면’과 ‘처벌’을 외쳤다. 계엄령 선포 관련 핵심 인사들은 구속됐고 권력의 중추는 우에서 좌로 넘어갔다. 경복궁 북쪽 청와대가 춥다고 대통령실을 남쪽 용산으로 옮긴 대통령은 임기를 절반도 못 채우고 부부가 나란히 철창 신세를 지고 있으니 세상에 이런 아이러니가 또 있을까 싶다.

참, 윤 전 대통령의 덕을 본 것도 있다. 청와대 경내가 새로 산책로에 편입된 것이다. 청와대는 윤의 대통령 취임일이던 2022년 5월 10일 개방됐다. 필자는 개방 이후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한번 정도 찾았고, 그때마다 서울에서 만만보 산책로로 이만한 곳은 없을 것이라는 평가를 내리곤 했다. 봄에는 사방이 벚꽃길이 되고 여름에는 녹빛 푸르름으로 가득 채워진다. 대정원과 소정원 사이 불로문을 거쳐 고목이 즐비한 녹지원에 이르기까지, 작은 숲길에서 만나는 가을 단풍은 어찌 그리 곱던지. 윤 부부가 의지했다는 도사, 법사, 무당, 역술가, 풍수쟁이는 청와대 터가 음산하다고 했다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볕이 그립거나 햇살 고운 날 찾았던 대통령 집무실 앞 대공원에서 쬐는 햇빛은 한겨울 추위를 금세 녹일 만큼 따듯하고 화사했다. 이런 청와대가 다시 대통령실로 쓰여지면서 좋았던 산책로 하나를 잃게 됐다.

샛노란 잎으로 늦가을 정서를 대표했던 정동길 은행나무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옐로 카펫을 만들지 못했다. 열매를 털어낼 때 잎도 절반 정도 떨어진데다 기후변화로 여름이 길어지면서 곱게 물들 시간이 없었던 탓이다. 기후변화는 이제 일상화 단계에 다다랐다. 기상청은 작년에 “올 여름(6~8월)은 기상 관측 사상 가장 높은 평균기온을 기록하면서 역대 최악의 폭염으로 기록된 2018년의 각종 더위 관련 수치를 넘어섰다”고 했다. 이 기록은 불과 1년만에 깨졌다. 이에 기상청은 “2025년 6~8월 전국 평균기온은 25.7도로 기존 역대 최고치였던 지난해보다 0.1도 더 올라 전국적인 기상 관측을 시작한 1973년 이래 가장 높았다”고 작년 멘트를 숫자만 바꿔 반복했다. 올여름 서울의 열대야 일수도 46일로 작년보다 7일 더 늘었다. 왠지 2026년 여름도 ‘가장 더운’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지난 주말에는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 북촌에 있는 한옥 스튜디오에서 올해 1월 1일 새해 첫날 세상으로 나온 손녀 첫돌 기념 사진을 앞당겨 촬영했다. 손녀는 인생 2막에서 누리는 최대의 축복이고 기쁨이다. 그저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미소가 절로 지어지고, 앙증맞은 몸짓과 해석할 수 없는 발성으로 할아버지와 교감하려고 안간힘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 무척 대견하고 엔돌핀이 솟구친다. 하루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손녀를 보며 남은 인생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거듭 생각한다. 손녀 세대가 살아가게 될 세상을 지금보다 더 좋게 하는데 조금이라도 거들 수 있는 말과 행동을 하자고. 적어도 나쁘게 만드는 말과 행동 만큼은 결코 하지 말자고.

본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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