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질환 시대를 맞아 우리 전통 잡곡이 과학적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농촌진흥청은 『동의보감』에서 질병을 다스리는 '약곡(藥穀)'으로 기록된 국산 잡곡의 효능을 현대 과학으로 입증하고, 항당뇨와 항고혈압 효과를 극대화하는 '황금 혼합비율'을 찾아내 특허 등록에 성공했다고 8일 밝혔다.
이번 연구는 고령화와 당뇨·고혈압 등 만성질환 인구가 급증하면서 환자용 영양식(메디푸드)과 고령친화식품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는 가운데 국산 잡곡의 부가가치를 크게 높일 수 있는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은 2019년부터 공동 연구를 통해 항당뇨와 항고혈압 활성이 우수한 국내 잡곡 원료를 선발하고, 효능을 극대화하는 최적 혼합비율을 설정했다. 항당뇨용 비율은 귀리 30%, 수수 30%, 손가락조 15%, 팥 15%, 기장 10%이며, 항고혈압용은 손가락조 30%, 수수 35%, 팥 35%로 구성된다.
연구진은 귀리 '대양', 손가락조 '핑거1호', 수수 '소담찰', 팥 '아라리', 기장 '금실찰' 등 각 작목별로 우수 품종을 선발했다. 손가락조 '핑거1호'는 유사 효능이 확인된 조 '삼다찰'로, 수수 '소담찰'은 기능성 성분 함량이 높은 수수 '고은찰'로 각각 대체할 수 있어 현장 활용도를 높였다.
최적 비율을 적용한 혼합 잡곡을 동물실험한 결과, 혈당 개선 효과가 뚜렷했다. 당뇨 유도 동물에게 이 혼합 잡곡을 섭취시킨 그룹은 공복혈당이 당뇨 유도군보다 약 22% 낮아졌으며, 이는 당뇨 치료제 메트포민과 유사한 수준이다. 고혈압 유도 동물실험에서는 수축기 혈압이 대조군보다 약 20% 감소해 고혈압 치료제 캅토프릴과 비슷한 효과를 보였다.
이러한 연구 성과는 상업화로도 빠르게 연결됐다. 현재까지 10건의 기술이전이 완료됐으며, 특수의료용도식품(음료)과 고령친화식품(냉동밥)을 비롯해 혼합곡, 선식, 죽, 과자, 떡 등 15종의 다양한 가공 제품이 출시됐다. 한국농업기술진흥원의 경제성 분석(2023년)에 따르면 이번 기술 개발과 보급을 통해 91억 원 규모의 생산유발효과와 147명의 취업유발 효과가 창출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기술을 이전받아 제품을 출시한 한 기업은 관련 매출이 전년 대비 2배 이상 급증했다. 다른 기업은 중소벤처기업부 지원사업에 선정돼 대형마트와 온라인상점 입점 준비 등 후속 사업화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항당뇨 혼합잡곡의 효능은 귀리에 풍부한 아베난쓰라마이드와 수수에 함유된 탁시폴린 등 다양한 페놀성 화합물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석된다. 이들 성분이 탄수화물의 소화·흡수 속도를 늦추고 혈당 상승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준 것이다. 항고혈압 혼합잡곡에는 수수, 조, 팥에 포함된 히스티딘, 글루탐산 같은 아미노산과 항산화 성분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혈관 수축 관련 효소 활성을 억제한 것으로 추정된다.
농촌진흥청은 국산 잡곡 소비를 늘리고 관련 산업화를 앞당기기 위해 농가에는 안정적인 판로를, 식품업체에는 고품질 국산 원료를 공급하는 상생 협력 모델을 확대하고 있다. 홍성(팥), 강진(귀리) 등 계약재배 생산단지를 확대하고, 대상웰라이프, 쿠첸·농협양곡, 롯데마트·청그루 등 주요 기업과 업무협약을 맺어 유통과 소비 시장 확대에 힘쓰고 있다.
가정에서는 쌀과 잡곡을 7 대 3 비율로 섞어 밥을 지을 것을 권장한다. 잡곡의 거친 식감이 걱정된다면 미리 1시간 정도 불리거나 백미보다 물을 약간 더 넣으면 부드럽게 조리할 수 있다. 쿠첸과 협력해 혼합비율별 최적 취반 조건과 전용 취반 모드도 개발 중이어서 머지않아 간편하게 건강 잡곡밥을 즐길 수 있을 전망이다.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김병석 원장은 “국산 혼합 잡곡 및 기능성분 고함유 팥순 등 다양한 식량작물을 활용한 고부가가치 소재 개발을 확대하겠다”며 “소비자와 산업체가 필요로 하는 품종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종자에서 식탁까지 이어지는 생산·가공·유통·소비 전 주기 협력체계를 강화해 국산 식량작물의 부가가치를 높여 나가겠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