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손보험 있으세요?” 한마디가 의료쇼핑 부추겨
병·의원이 진료에 앞서 환자의 실손의료보험 가입 여부를 먼저 확인하는 관행을 두고 과잉진료를 유발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절차를 제도적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병원이나 의원을 방문하면 ‘어디가 불편하세요?’ 보다 ‘실손보험 있으세요?’라는 말이 인사처럼 굳어졌다”며 “실손보험 가입 여부에 따라 진료 내용이 달라지는 구조 자체가 과잉진료의 토양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손보험은 2020년대 들어 전체 손해율이 100%를 초과하면서 적자를 기록, 보험사 수익구조를 가장 위협하는 상품이 되고 있다. 2022년 적자폭은 약 1.5조원이었고, 2023년에는 약 1.97조원으로 증가했다. 보험료 인상 효과가 반영된 2024년에도 적자 규모는 2.1조원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실제 사례도 적지 않다. 지난 10월 초, 발을 헛디뎌 동네 의원을 찾은 22세 대학생 A씨는 접수 직후 간호사로부터 실손보험 가입 여부를 먼저 확인받았다. 이후 4~5차례 병원을 방문하는 과정에서 간호사는 “실손보험 가입자들과 같은 치료를 받으면 치료비가 많이 나온다. 괜찮겠느냐”는 질문을 여러 번 반복했다. 치료를 이어가면서 병원비는 100만원을 훌쩍 넘었고, 간호사는 “대부분의 환자들은 실손보험에 가입돼 있어 도수치료나 통증 완화 치료처럼 진료비가 비싸도 큰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보험업계는 이 같은 상황을 심각한 도덕적 해이로 보고 있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병원은 환자의 상태에 따라 진단 방법과 치료 범위를 결정해야 한다”며 “실손보험 가입 여부에 따라 치료 내용이 달라진다면, 이는 보험을 전제로 한 과잉진료가 가능하다는 의미로 매우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실제 병원 현장에서는 “실손 있으시면 이 치료 하셔도 된다”, “본인 부담은 거의 없다”는 식의 설명이 빈번히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환자 상태에 대한 충분한 의학적 설명보다 보험 적용 여부가 먼저 언급되면서, 실손보험과 무관하게 필요한 진료만 설명해 달라는 요구도 커지고 있다.
과잉진료 분쟁이 잦은 정형외과의 경우 문제가 더욱 두드러진다. 정형외과는 내과나 외과와 달리 도수치료, 체외충격파, 증식치료, 고가 물리치료 및 주사 치료 등 의사 재량이 큰 비급여 항목이 많다. 명확한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실손보험과 결합되면 남용 소지가 크다는 지적이다.
영상검사 역시 논란의 대상이다. X-ray 촬영 이후 곧바로 MRI를 권유하는 이른바 ‘일단 찍어보자’식 진료가 빈번하지만, 응급 상황이나 신경학적 이상이 없는 경우 즉각적인 MRI는 과잉진료에 해당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 과정에서 병원이 “실손보험이 있으니 부담이 거의 없다”, “다들 이 정도는 한다”고 설명할 경우, 의료적 판단보다 보험 가입 여부에 따라 진료가 설계되는 문제가 발생한다는 우려다.
정확한 진단명 없이 “근육 상태가 안 좋다”, “염증이 있다”는 포괄적 설명만 제시한 채 도수치료 10회, 20회 등 패키지 치료를 권유하거나, MRI 촬영 후에도 판독 결과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없는 경우 역시 대표적인 과잉진료 사례로 꼽힌다.
보험업계는 이러한 과잉진료가 결국 모두에게 부담으로 돌아온다고 경고한다. 최근 실손보험에서는 도수치료, 체외충격파, 증식치료 등에 대한 심사가 매우 까다로워졌으며, 반복·장기 치료의 경우 보험금 삭감이나 분쟁 가능성도 크다. 과잉진료가 발생할 경우 환자는 보험금 지급 거절이나 갱신 불이익을 겪을 수 있고, 병원 역시 조사나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
일부 실손보험 미가입 환자들은 “병원에서 실손보험 가입 여부를 따져 치료 내용이 달라지는 느낌을 받는다”며 “이런 관행이 실손보험 과잉진료의 원인 중 하나인 것 같다”고 지적하고 있다.
반면 병원 측은 실손보험 가입 여부를 사전에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한 병원 관계자는 “도수치료, 체외충격파, 영양주사·수액, 신의료기술 등 비급여 진료를 시행하기 전 실손보험 가입 여부를 파악해야 사후 분쟁을 줄일 수 있다”며 “이 때문에 실손보험 가입 여부를 먼저 묻는 병원이 늘어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손보험을 둘러싼 과잉진료 논란이 반복되면서, 진료 전 보험 가입 여부 확인 관행에 대한 제도적 정비 필요성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