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험사들이 계약 인수심사에 인공지능(AI)을 도입하면서 속도보다 정교한 통제 시스템 구축이 새로운 경쟁 지표로 부상하고 있다. AI 기반 자동 심사가 확산되는 흐름 속에서도 최종 판단과 책임은 사람이 맡아야 한다는 원칙이 강조되면서, 보험업계는 모델 검증과 데이터 품질 관리에 더욱 집중하는 분위기다. 이는 단순한 업무 효율화를 넘어 소비자 신뢰와 직결된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최근 보험사들은 청약 단계에서 가입 적격성을 미리 판별하는 사전 심사, 질병 정보와 보험금 청구 이력 분석, 담보별 위험 평가 등에 AI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표준 조건 계약은 자동화된 시스템으로 처리하고, 기저질환이 있거나 고액 계약, 조건부 인수 건은 전문 심사역이 직접 검토하는 이원화 방식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 같은 구조는 심사 속도를 높이면서도 오류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미래에셋생명은 이달 거대언어모델(LLM)을 활용한 생성형 AI 시스템 ‘AI-FIT’을 도입했다. 이 시스템은 고객의 건강 정보와 과거 보험금 청구 기록을 분석해 보장별 심사 결과를 실시간으로 제공한다. 자연어로 작성된 치료 이력과 진단서 정보는 표준 질병 코드로 자동 변환된다. 흥국생명 역시 차세대 시스템 ‘하이프라임’을 통해 선·후심사로 분리된 인수 심사 체계와 채널별 기준을 통합하고, AI 기반 질병 심사 모델로 자동심사율 90% 이상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 같은 변화의 배경에는 유병자보험 시장 확대와 장기인보험 경쟁 심화가 자리 잡고 있다. 보험사들은 경증 질환이나 완치 이력이 있는 고객을 선별적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손해율 악화를 막기 위해 더욱 세분화된 심사 기준을 요구한다. AI는 대량의 청약 데이터와 보험금 지급 이력을 빠르게 분류해 심사 효율을 높이는 핵심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자동 심사가 소비자에게 불이익을 줄 가능성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특정 조건이 부과된 이유를 설명받지 못하거나, 데이터 학습 과정에서 과거 관행이 고착화될 위험이 존재한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2일부터 시행한 금융분야 AI 가이드라인에서 AI를 업무 보조 수단으로 규정하고 최종 의사결정과 책임은 임직원이 져야 한다고 명시했다. 보험연구원도 지난 1월 보고서에서 AI 전략의 핵심이 도입 여부에서 통제와 검증 가능한 운영 역량으로 전환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업계 관계자는 “AI 기반 언더라이팅 경쟁력은 자동심사율 자체보다 모델 검증 절차, 데이터 품질 관리, 심사 근거 기록, 인간의 최종 개입 기준을 얼마나 명확히 갖추는지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