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민금융정책 600년, 반복되는 실패의 고리

조선시대 환곡제도가 빈민 구제라는 본래 목적을 잃고 백성을 옥죄는 도구로 변질된 것처럼, 현대의 서민금융정책도 유사한 함정에 빠져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햇살론 등 정책 서민금융 상품의 대위변제액이 3년 연속 1조원을 넘어선 가운데, 일부 보증상품의 회수율은 한 자릿수로 추락했다. 정부가 대신 갚아준 자금이 사실상 회수되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가 드러난 셈이다.
문제의 근원은 '서민'이라는 대상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없다는 데 있다. 햇살론은 소득과 신용을 기준으로, 미소금융은 자산을, 햇살론유스는 연령을 기준으로 삼는 등 상품마다 서민의 기준이 제각각이다. 저소득 사회초년생, 다중채무에 시달리는 자영업자, 소득과 신용이 모두 무너진 한계가구는 전혀 다른 금융 수요를 가졌지만, 정책은 이들을 하나로 묶어버린다. 대상이 불분명해지자 정책의 성과는 자연스럽게 '공급액'이라는 양적 지표로 수렴됐고, 올해 몇 조원을 공급했는지가 성공의 척도가 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했다.
금융 시스템의 구조적 모순도 간과할 수 없는 요소다. 은행은 대출 실행 순간 새로운 예금을 창출하는 '만년필 화폐'의 특권을 가진 반면, 대부업체나 여신전문금융회사는 실제 자본을 빌려줘야 한다. 은행은 위험한 차주를 걸러내는 것이 구조적 숙명인 반면, 제도권 사금융은 은행이 밀어낸 위험한 차주를 떠안고 가장 높은 금리를 매기는 역전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공적 성격의 은행이 가장 사적으로 움직이고, 사적 자본이 공공의 빈자리를 메우는 기형적 구조가 고착화된 것이다.
이러한 역설은 수치로도 명확히 드러난다. 2021년 법정최고금리가 연 20%로 인하되자 등록 대부업체의 대출잔액은 2년 반 만에 16조원에서 12조원으로 4분의 1 가까이 급감했다. 밀려난 차주들은 불법 사금융 시장으로 향했고, 불법사금융 피해 신고는 5년 내 최대치를 기록했다. 금리 규제가 오히려 취약계층을 더 위험한 사금융으로 내모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서민금융정책이 '누구를 위한, 어떤 성격의 돈인가'라는 근본 질문을 회피한 채 양적 공급에만 집착해온 결과라고 분석한다. 1972년 8·3 조치와 2003년 카드대란 당시의 실패가 반복되는 양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대상의 정의와 자금의 성격에 대한 명확한 기준 없이 '대출 공급이 해결책'이라는 믿음에 기댄 정책은 결국 제도 스스로를 위해 작동하다 무너지는 악순환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