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포용금융을 단순한 일회성 민생대책이 아닌 금융시스템 전반의 작동 방식을 바꾸는 구조개혁 과제로 삼고 본격적인 논의에 나섰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6월 17일 오후 서울 중구 예금보험공사에서 열린 '포용금융 현장 대토론회'를 주재했다. 이번 토론회는 기존의 틀에 얽매이지 않는 생생한 현장 의견을 듣기 위해 타운홀 미팅 방식으로 진행됐다. 금융위원장이 토론회 전 과정에 참석해 참석자들과 직접 질의응답을 주고받았으며, 실시간 소통을 위해 유튜브 생중계도 병행했다.
이억원 위원장은 모두발언에서 "오늘 현장대토론회는 정부가 기존의 틀 안에서 이미 정해 놓은 정책을 익숙한 방식으로 발표하는 자리가 아니다"라며 "정부·금융권·전문가·현장활동가들이 열린 마음과 치열한 문제의식으로 포용금융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지 함께 묻고 답을 찾는 자리"라고 강조했다.
이 위원장은 "오늘 만큼은 격식보다 진심이, 정답보다 솔직함이, 듣기 좋은 칭찬보다 뼈아픈 지적이 더 환영받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며 "토론과 문답의 전 과정에 함께하면서 여러분이 현장에서 마주하고 느꼈던 생생한 이야기들을 끝까지 듣겠다"고 밝혔다.
이 위원장은 포용금융이 일회성 민생대책이 아니라 금융 시스템의 구조개혁 과제라고 강조했다. "새정부 출범 이후 새도약 기금, 신용사면, 정책서민금융 금리인하 등을 통해 금융소외계층에 대한 긴급 지원을 추진해 왔고, 이는 제도권 금융 이용이 어려운 분들에게 다시 기회를 드리기 위해 필요한 조치였다"고 평가하면서도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왜 국민들이 제도권 금융의 문턱 앞에서 돌아서게 되는지, 왜 한 번의 연체가 장기연체로 이어지는지 그 구조 자체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지금 필요한 것은 금융에서 배제되는 구조를 줄이고, 정책 서민금융을 통해 신용을 쌓아 제도권 금융으로 연결되는 도약의 경로를 만드는 구조적 접근"이라고 강조했다. 포용금융은 금융의 원칙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금융이 더 정확하게 평가하고, 더 일찍 조정하며, 더 낮은 사회적 비용으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만드는 길이라고 설명했다.
이 위원장은 "낮은 신용점수, 짧은 금융이력, 한 번의 연체 경험 등으로 제도권 금융의 문 앞에서 돌아서는 분들이 있는데, 제도권 금융 밖으로 밀려난 분들은 불법사금융·과도한 추심·장기연체의 악순환에 빠져들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비용이 증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개별 금융회사 입장에서는 위험을 줄이는 선택이 합리적일 수 있으나, 모든 금융회사가 안전한 고객만 선택한다면 전체 금융시스템에 자금공급의 공백이 생기고 결국 금융시스템 전체가 더 큰 위험을 떠안게 된다"며 "이제는 회피가 아니라 포용이 합리적인 선택이 되도록 금융의 규칙을 다시 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토론회는 두 개 세션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첫 번째 세션에서는 금융의 공적역할과 서민금융정책의 방향을 논의했고, 두 번째 세션에서는 금융산업 구조 자체를 포용적으로 재설계하는 방안을 다뤘다.
첫 번째 세션에서 발제자로 나선 임수강 전 생산과포용금융연구회 부회장은 "금융은 개별 경제주체에게는 자금 융통수단이지만 국민경제 전체로는 자금을 효율적으로 동원하고 생산적으로 배분하는 핵심 인프라"라고 설명했다. 특히 금융기관은 사적 이윤을 추구하는 민간 주체이면서도 사회 전체의 자금 흐름을 좌우하는 공적 기능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금융 산업의 상업성과 공공성이 균형 있게 작동하도록 제도적 유인과 공적 규율이 함께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임수강 박사는 금융배제를 금융기관의 공적역할 약화가 드러난 현상으로 진단했다. 금융이력이 부족한 청년층, 일시적 실업자, 저소득층 등 회복 가능성이 있음에도 정량적 기준만으로 배제되는 계층이 확대될 경우 불평등 심화, 사회 갈등 비용 증가, 노동력 손실 등 국민경제 전체의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포용금융의 1차적인 주체는 대형 금융기관이지만 이것만으로는 금융배제 계층을 충분히 포괄하기 어려운 만큼, 서민금융기관의 역할을 강화하고 서민금융진흥원과의 협력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특히 서민금융정책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서민금융안정기금 설립 등 안정적 재원 기반 마련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 번째 세션에서는 강경훈 동국대학교 교수와 고석헌 신한금융지주 부사장이 발제했다. 강경훈 교수는 현재 한국 금융이 부동산 담보·고신용자 위주의 극단적 리스크 회피 구조로 굳어진 결과 중소벤처기업과 저소득층이 사실상 금융 접근권에서 배제되는 '구조적 시장실패' 상태에 있다고 진단했다. 포용금융이 단순한 복지 시혜가 아닌 기술혁신에 따른 사회적 위험을 흡수하는 인프라이자, AI·자동화 시대 고용양극화로 인한 성장동력 훼손을 예방하는 생산적 정책임을 강조하면서 금융기본권의 정립·확산과 보편적 디지털 금융역량 제고 등 신용인프라 혁신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고석헌 부사장은 현장 관점에서 금융회사로서의 성장과 금융기관으로서의 사회적 역할을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고 전제하면서, 포용금융 확대의 가장 큰 제약이 중·저신용 차주 중심의 높은 연체율에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중·저신용 대출의 연체율이 상승하는 등 건전성 부담이 크다는 점을 언급하며, 포용금융의 양적 확대와 금리부담 완화, 대안신용 평가 강화의 세 축을 결합해 비우량 고객을 우량 고객으로 전환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건전성 부담이 큰 금융회사도 포용금융을 적극 추진할 수 있도록 출연료 감면 등 과감한 인센티브와 대안 신용평가 활성화를 위한 데이터 활용 규제 완화를 건의했다.
이번 토론회에서는 신용평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의견이 특히 많았다. 참석자들은 기존 금융시스템이 보지 못한 '좋은 차주'를 발견하고 이들의 금융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신용평가에 과거의 금융이력, 현재 행태뿐 아니라 미래 상환능력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현재 소득이 낮거나 금융이력이 부족해 제도권 금융에서 배제되었으나 미래 소득과 생산성이 비교적 예측 가능한 대상을 선별해 금융접근성을 확대하고, 정책 서민금융은 실제로 이를 필요로 하는 대상에게 집중 지원함으로써 포용금융의 효과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이억원 위원장은 "정책은 밀실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현장의 질문과 비판 속에서 단단해져야 한다"고 언급하며, 앞으로 운영될 '포용금융 전략추진단'에 대해 "전문가·시민단체·현장 실무자까지 폭넓게 참여해 더 넓게 듣고, 신용평가·금융회사 인센티브·채무조정 등 금융 시스템 전반을 더 깊게 들여다보며, 국민과 시장이 함께 지켜보고 검증할 수 있도록 더 투명하게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금융위원회는 이번 대토론회를 통해 제기된 현장의 목소리와 전문가 제언을 포용금융 전략추진단 분과별 논의과제에 반영할 계획이다. 포용금융 전략추진단은 총괄·정책서민·금융산업·신용인프라 등 4개 분과를 중심으로 운영되며, 금융감독원, 서민금융진흥원 등 관계기관과 정책연구기관뿐만 아니라 학계, 시민단체, 재야전문가, 현장 실무자 등을 포함해 구성된다.
오늘 현장대토론회의 논의를 시작으로 4개 분과가 6월 중 첫 회의를 개최하고 논의과제, 운영 방향 및 일정 등을 확정할 예정이다. 검토가 마무리되는 과제는 순서대로 현재 운영 중인 '포용금융 대전환 회의'에 올려 정책화하고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과제발굴, 대안마련, 제도개선까지 논의과정 전체를 공개해 국민과 시장이 함께 지켜보고 검증할 수 있는 방식으로 운영해 나갈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