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소형 보험사까지 번진 ‘설계사 빼가기’… 영업 기반 흔드는 악순환
내년 7월 법인보험대리점(GA) 설계사 초년도 수수료 1200% 규제 시행을 앞두고 보험사들이 막바지 영업조직 유치에 나서면서, 업계 전반에 ‘설계사 빼가기’ 관행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기존에는 대형 전속채널이나 대형 GA 중심에서 벌어지던 인력 스카우트 경쟁이 최근에는 중소형 보험사로까지 확산되며 사태가 전 업계로 번지고 있다.
최근 논란의 중심에는 한 은행계 K생명보험사가 외국계 H생명보험사를 대상으로 전방위적인 인력 유출을 시도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사태의 발단은 올해 3월, H생명 영업총괄 임원이 K생명으로 이직하면서 시작됐다. 이어 6~7월에는 H생명의 GA영업·전속영업 담당 임원들까지 연달아 K생명으로 이동했고, 이 무렵부터 H생명 내부에서는 “대규모 영업조직 유출이 본격화됐다”는 증언이 나왔다.
H생명에 따르면 K생명은 본사 직원에게 승진·급여 인상 등 조건을 제시하며 팀장급을 포함한 다수 인력을 7~8월 사이에 영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9월부터는 대상이 영업현장으로 확대돼 전국적으로 H생명 설계사들에게 지속적인 접촉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특히 K생명이 설계사 유치를 위해 자체 맞춤형 규정까지 신설하며 조직적 스카우트에 나섰고, 지난 11월에는 서울지역 H생명의 한 지점장을 중심으로 설계사 10여 명이 집단 이동한 정황도 포착된 것으로 전해졌다.
H생명 관계자는 “근거 없는 루머를 퍼뜨리며 집요하게 영업조직을 유인하고 있다”며 “해당 임원 및 설계사들에 대한 법적 조치를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전직 임원이 본사 인력과 현장 조직을 동시에 빼가는 사례는 거의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건전하고 성숙한 영업문화를 정착시키려는 업계 전체 노력에 역행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이번 K생명 설계사 빼가기 형태에 대해 보험업계 전문가는 “가뜩이나 취약한 중·소형 보험사의 영업기반을 약화시키고, 설계사 육성 의지를 떨어뜨리는 구조적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생명보험사 관계자는 “설계사 한 명을 육성하는 데 약 700만~800만원의 비용과 6개월~1년의 시간이 필요하다”며 “스카우트가 지속되면 회사 입장에서는 육성할 동인이 사라지고 GA 의존도만 높아지는 부작용이 생긴다”고 우려했다.
설계사 이동은 소비자 피해로 직결되기도 한다. 핵심 설계사가 대거 이탈하면 조직 생산성이 낮아지고 계약 관리의 공백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H생명 관계자는 “이번처럼 숙련된 설계사가 빠져나가면 매출 공백이 장기화된다”며 “특히 경험이 많고 교육·관리·리더십을 갖춘 설계사들은 회사의 ‘핵심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사정을 뻔히 아는 전직 임원이 이번 일을 주도했다는 점에서 비윤리적인 행위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이동 과정에서는 고객 정보 사적 이동, 계약 유지율 하락, 보험료 미납, 사고 처리 지연 등의 문제가 발생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더 나아가 승환계약·경유계약 등 보험업법 위반 소지가 커지고, 일부에서는 무분별한 리필 설계나 불완전판매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과열된 리크루팅 경쟁은 스카우트 비용과 각종 리크루팅 수당을 급증시키며 정책비 상승을 초래하고, 나아가 보험료 인상 요인으로까지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건전한 상품·서비스 경쟁이 아니라 ‘인력 쟁탈전’ 위주의 왜곡된 경쟁 구조가 형성된다는 뜻이다.
고객 명단, 계약 정보 등 민감 개인정보 유출 문제도 빈번하게 발생하며 법적·규제 리스크를 높이고 있다. 실제 관련 소송과 제재 사례가 최근 꾸준히 늘고 있는 상황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설계사 빼가기는 단순한 인력 이동을 넘어 고객 피해 → 조직 리스크 증가 → 불건전한 경쟁 → 산업 전체 비용 증가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만들고 있다”며 “업계 차원의 자정 노력과 제도적 보완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