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법원은 보험기간 안에 교통사고가 발생했다면, 보험기간이 끝난 뒤 그 사고를 직접 원인으로 사망한 경우에도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쟁점은 약관에 적힌 단 한 줄, ‘피보험자가 보험기간 중 교통재해로 인해 사망한 때 보험금을 지급한다’였다.
보험사는 ‘보험기간 중 사망’까지 필요하다고 봤고, 유족은 ‘보험기간 중 교통재해’가 발생했다면 이후 사망도 보장된다고 주장했다. 1·2심은 보험사 손을 들었지만, 대법원은 원심을 파기하고 ‘보험기간 중’의 수식 범위에 내포된 불명확성을 근거로 고객에게 유리한 해석을 택했다.
새로운 법리는 아니다.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은 약관의 뜻이 명백하지 않다면 고객에게 유리하게 해석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약관은 신의성실 원칙에 따라 공정하게 해석돼야 하고, 고객에 따라 다르게 해석돼서도 안 된다. 대법원 역시 보험약관은 평균적 고객의 이해 가능성을 기준으로 객관적·획일적으로 해석해야 하며, 그렇게 해석한 뒤에도 여러 뜻으로 읽히고 각각의 해석에 합리성이 있다면 고객에게 유리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법리를 반복해 왔다.
이는 약관 작성자가 약관 문구의 불명확성에 따른 위험도 부담해야 한다는 취지의 ‘작성자 불이익의 원칙’에서 비롯됐다. 다만 이 원칙은 약관 문구에 조금이라도 다툼의 여지가 있으면 곧바로 적용되는 만능열쇠라기보다, 일반적 해석 기준을 거친 뒤에도 뜻이 명확하지 않을 때 작동하는 ‘보충적 기준’에 가깝다.
소비자 보호 관점에 부합하는 보조 장치이기도 하다. 하지만 약관 해석의 불명확성을 줄이려는 시도는 역설적으로 약관을 더 길고 촘촘하게 만들었다.
주요 보험사들의 보험약관은 지금도 첫 장부터 부록까지 200쪽을 훌쩍 넘기는 방대한 양을 자랑한다. 보장 내용, 지급 요건, 제외 사유, 면책 사유가 조항마다 세밀하게 붙는다.
그만큼 평균적인 고객이 약관을 끝까지 읽고 이해하기는 더 어려워졌다. 보험업계에서는 지급하기 어려운 경우를 미리 열거하는 방식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한다.
약관의 문장 하나하나가 해석의 도마 위에 오르는 만큼, 불승인 또는 면책 사유를 구체적으로 적어야 추후 해석 다툼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보험금 지급 기준이 지나치게 흔들리면 다른 가입자와의 형평성 문제도 발생하기에 보험사의 행태가 잘못됐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소비자는 사정이 다르다. 해피콜에서 “설명을 들었다”는 확인을 남기고 청약서에 체크를 했더라도, 그것이 곧 약관의 핵심 위험을 100% 이해했다는 뜻으로 보기는 어렵다.
보험사 입장에서는 설명과 확인의 기록이 필요하고, 소비자로서는 그 기록이 때로 형식에 불과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양쪽의 긴장이 여기에서 발생한다.
반가운 소식은 최근 금융감독원이 보험상품 약관·상품설명서 개선방안의 구체안을 논의한 점이다. 이는 고객이 실제로 어떤 위험을 인지해야 하는지 명확히 알리는 방식으로 설명 체계를 보완하는 시도다.
이처럼 약관 해석의 불명확성을 줄이려는 노력은 소비자 인지 내용을 남겨두는 데만 머물지 않고, 건전한 계약을 지속하기 위한 노력으로 이어질 필요가 있다.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문구가 아닌, 더 이해하기 쉬운 문구다.
소비자에게도 자신이 가입한 상품의 기본 보장과 주요 제외 사유를 정기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보험계약관리 안내)가 지금보다 더 확대됐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