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말부터 일본 정부가 기업 리스크관리의 패러다임 전환을 본격화하고 있다. 경제산업성과 금융청이 공동 주도하는 ‘기업 리스크 매니지먼트 고도화 검토회’가 12월 출범한 데 이어, 2026년 2월과 3월 연이어 회의를 열며 정책 방향을 구체화했다. 이는 단순한 재해 대비를 넘어서 기업 전략과 재무 구조 전반에 리스크관리를 통합하려는 포괄적 접근으로 읽힌다.
이번 정책 전환의 핵심은 다중 리스크의 동시 발생에 대한 대응 체계 재설계다. 자연재해의 대규모화, 사이버 리스크의 기업 내 침투, 지정학적 갈등의 장기화에 더해 사회적 인플레이션이 배상 판결에 영향을 미치며 기업 리스크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변화했다는 인식이 바탕에 깔렸다. 일본 당국은 기존 보험 인프라가 이러한 복합 위기에 더 이상 탄력적으로 대응하지 못한다고 판단, 구조적 개편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보험시장 자체의 기능 제약도 정책 논의의 중요한 축으로 작용했다. 재보험 비용 상승과 자연재해로 인한 지급 부담 증가로 보험사 인수 여력이 위축되면서, 기업이 요구하는 보장 수준을 충족하기 어려운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더욱이 보험 인수에서 고위험 지역에 대한 면책 확대와 보험료 인상이 병행되며, 기업의 전략적 의사결정 자체가 제약받는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이에 일본 정부는 리스크관리를 경영 전략의 핵심 축으로 재정의하고 나섰다. 사후 대응 중심의 총무부서 소관 업무가 아닌, 경영진이 직접 주도하는 전사적 체계로 전환할 것을 권고한 점이 주목된다. 리스크 컨트롤, 리스크 파이낸싱, 레질리언스 회복력 등 세 축을 통합 운영하는 구조가 제시되며, 리스크관리의 성과가 자본 조달 비용, 투자 여력, 기업 가치에 직접 연결되는 새로운 인식 체계가 형성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금융시장에서 이미 반영되고 있다. 일본 정책투자은행이 사업연속성 계획(BCP) 수준에 따라 금융 지원을 차등화하고 있으며, 글로벌 자산운용사들도 이사회 리스크 감시 역량을 ESG와 동등한 수준의 평가 요소로 삼고 있다. 리스크관리의 질이 기업의 신용도와 성장 가능성 자체를 결정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