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진흥청(청장 이승돈)이 중동 지역 정세 불안에 따른 국제 비료 공급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가축분뇨발효액, 일명 액비(液肥)의 비료 기준을 완화하는 본격적인 절차에 들어갔다.
농촌진흥청은 4월 23일 생산업계, 학계, 농업인 등 현장 이해관계자가 참여한 가운데 협의회를 열고 액비의 질소(N)·인산(P)·칼리(K) 합계 기준을 기존보다 0.2% 낮추는 조정안에 대한 의견을 집중적으로 청취했다. 이 조정안은 지난 4월 16일 전문가 회의에서 마련된 것으로, 농업 현장에서 액비를 더 쉽고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추진되고 있다.
이번 협의회에서는 특히 농업인들이 실제로 느끼는 사용 편의성과 작물에 대한 적용 가능성에 초점을 맞춰 논의가 진행됐다. 또한 여과 과정을 거친 액비를 양액(養液) 재배용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도 함께 다뤄졌다. 양액 재배는 토양 없이 물에 영양분을 녹여 작물을 키우는 방식으로, 깨끗하게 처리된 액비가 이 분야에서도 사용될 수 있을지가 주요 관심사로 떠올랐다.
가축분뇨발효액은 소나 돼지 등의 분뇨를 발효·숙성시켜 만든 액체 비료다. 화학 비료를 대체할 수 있는 친환경 자원으로 주목받지만, 영양분 함량이 일정하지 않고 사용 방법이 까다롭다는 이유로 농가에서 외면받아 왔다. 이번 기준 완화는 액비 생산 업체가 보다 안정적으로 제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하고, 농가의 사용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조치다.
농촌진흥청은 이날 협의회에서 나온 현장 의견을 취합해 오는 5월 초 열리는 비료전문위원회에 상정할 자료에 반영할 계획이다. 이후 행정예고 등 법적 절차를 거쳐 이르면 5월 중순께 비료공정규격 고시가 개정될 전망이다. 고시가 개정되면 액비의 질소·인산·칼리 합계 기준이 0.2% 낮아져, 생산업체는 더 다양한 원료를 사용할 수 있게 되고 농가는 액비를 더 넓은 범위의 작물에 적용할 수 있게 된다.
이번 조정안은 중동 지역의 정세 불안으로 수입 원자재 가격이 급등한 상황에서 국내 비료 수급을 안정화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농촌진흥청은 화학 비료 원료의 해외 의존도를 줄이고, 국내에서 발생하는 축분을 재활용하는 비율을 높여 유기성 자원의 선순환을 촉진한다는 복안이다. 실제로 한국은 비료 원료의 상당 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국제 정세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농촌진흥청 김상경 차장은 "이번 협의회는 전문가 회의에서 마련한 조정안에 대한 현장 의견을 듣는 마지막 수렴 단계"라며 "중동 전쟁으로 인한 불안정한 비료 수급에 대응하고 국내 축분 자원 순환 확대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도록 전문위원회 상정을 차질 없이 준비하겠다"고 강조했다.
가축분뇨발효액 기준 완화는 단순한 규제 개선을 넘어, 농업의 자원 순환 체계를 강화하고 기후 위기 대응에도 기여할 수 있는 정책으로 평가된다. 축분을 비료로 재활용하면 매립하거나 소각할 때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고, 화학 비료 사용을 줄여 토양과 수질 오염을 방지하는 효과도 기대된다. 농촌진흥청은 앞으로도 현장 의견을 지속적으로 반영해 액비의 활용도를 높이는 방안을 모색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