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진단을 받은 어르신이 혼자서 재산을 관리하기 어려울 때, 국가가 나서서 도와주는 제도가 생겼다.
보건복지부는 4월 22일부터 '치매안심재산관리서비스' 시범사업을 본격적으로 실시한다고 밝혔다. 이 서비스는 치매나 경도인지장애 등으로 판단 능력이 저하된 어르신의 재산을 국민연금공단이 수탁받아 안전하게 관리하고 보호하는 공공신탁 기반의 재산관리 지원 사업이다.
국내 65세 이상 치매 환자가 보유한 자산 규모는 약 154조 원(2023년 기준)에 달한다. 판단 능력이 떨어진 치매 환자는 사기나 재산 갈취 등 경제적 학대에 매우 취약하다. 최근에는 요양원 입소 환자의 재산을 임의로 사용하는 사례나 재가 치매 노인의 임대료 체납 등 사회적 문제가 잇따르면서 제도 도입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번 시범사업의 주요 대상은 치매, 경도인지장애 등으로 재산관리에 어려움이 있거나 어려움이 예상되는 기초연금수급자다. 기초연금을 받지 않는 65세 이상 어르신도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지만, 위탁재산의 연 0.5%에 해당하는 이용료를 부담해야 한다. 65세 미만 조기발병 치매 환자 중 저소득층(차상위계층, 기초생활수급자 등)은 재산관리 위험도를 고려해 예외적으로 무료 지원받을 수 있다.
위탁 가능한 재산은 현금, 임대차보증금 반환채권 같은 지명채권, 주택연금 등 현금성 자산으로 한정된다. 위탁재산 상한액은 민간 신탁시장을 고려해 10억 원으로 제한했다. 보건복지부는 시범사업 추이와 결과를 토대로 지원 대상과 재산 범위, 상한액을 단계적으로 확대하거나 조정할 계획이다.
서비스 이용 절차는 크게 6단계로 나뉜다. 먼저 본인이나 가족이 국민연금공단 지사에 방문해 신청하거나, 요양시설이나 치매안심센터 같은 치매 유관기관의 의뢰를 통해 서비스가 시작된다. 서비스가 접수되면 국민연금공단 지역본부 담당자가 대상자 여부를 판단하고, 우선 지원 대상자를 선별한다.
이후 담당자가 대상자 자택 등 희망 장소를 방문해 의료 필요도, 가치관, 보유 자산 등을 파악하는 상담을 진행한다. 상담 결과를 바탕으로 대상자에게 맞는 개인별 재정지원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토대로 신탁계약서를 작성한다. 계약서는 국민연금공단 본부의 적합성 심의를 거친 후 승인되며, 이후 대상자와 공단 간 계약이 체결된다.
계약이 체결되면 신탁이 개시되고, 지역본부는 수립된 재정지원계획에 따라 생활비, 요양비, 용돈 등을 월별로 배분한다. 지급은 계좌이체 형태로 이루어진다. 계획에 없는 특별지출이나 계약 해지 요청이 있을 경우, 대상자의 이익 침해 가능성을 고려해 외부 전문가가 과반수로 참여하는 치매안심재산관리위원회의 엄격한 심의를 거쳐 승인 여부가 결정된다.
대상자가 사망한 후 잔여재산은 배우자 등 법적 상속인에게 지급된다. 무연고 등으로 상속인이 없는 경우에는 민법에 따른 상속인 부존재 처리 절차를 진행한다.
국민연금공단은 배분금 집행 결과를 확인하는 등 월별 집행 내역을 주기적으로 감독한다. 반기별 1회 이상 대상자를 방문해 상태를 파악하고, 지출 내역을 확인하는 상시 모니터링도 실시한다. 이상 징후가 확인되면 불시 점검을 통해 안전한 재산 관리를 도모할 예정이다. 투명한 관리를 위해 재산 모니터링 결과와 재산 내역은 대상자 등에게 정기적으로 통보된다.
대상자가 추가 복지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담당자가 치매안심센터나 통합돌봄 전담부서에 의뢰해 추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연계한다.
치매 환자가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원칙적으로 후견인 선임이 필요하다. 치매 환자는 인지 능력 저하로 신탁계약 체결이 어렵고, 계약의 유효성을 둘러싼 법적 분쟁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일반적인 치매공공후견보다 간이한 절차가 진행될 수 있도록 검토 중이다. 후견인은 계약 체결 대리권을 가지며, 치매안심센터의 협력을 통해 선임된다.
이 서비스가 도입되면 여러 가지 긍정적 변화가 예상된다. 첫째, 어르신 본인의 재산이 자신을 위해 안전하고 계획적으로 사용된다. 건강 상태와 생활환경에 맞춘 개인별 재정지원계획에 따라 월별 자금 지출이 체계적으로 관리된다. 둘째, 가족이 홀로 감당하던 재산관리 부담이 덜어진다. 공공기관이 수탁자가 되어 복잡한 재산 관리를 지원하고, 정기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경제적 학대 위험을 예방해 가족의 부담을 완화한다. 셋째, 지역사회 재산관리 안전망이 강화된다. 취약계층 보호체계가 단순 돌봄을 넘어 재산 보호 영역까지 확장되며, 치매 환자의 재산 소실로 인한 빈곤층 전락 위험을 선제적으로 막아 국가 재정 건전성 확보에도 기여할 수 있다.
보건복지부는 이번 시범사업을 시작으로 2년 간의 점검을 거쳐 2028년 본사업을 도입할 계획이다. 올해 하반기에는 시범사업 평가를 착수하고, 본사업 도입을 위한 '치매관리법' 개정도 추진할 예정이다. 향후 대상자와 지원 재산 범위를 단계적으로 확대하고, 서비스 신청 및 관리 절차 개선도 함께 추진한다.
서비스 신청을 원하는 어르신이나 가족은 인근 국민연금공단 지사에 방문하면 된다. 문의 사항은 국민연금공단(1355) 또는 치매상담콜센터(1899-9988)로 연락하면 자세한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시범사업은 국민연금공단 7개 지역본부에서 진행된다. 서울북부본부는 서울 강북, 경기 북부(김포, 양평 포함), 인천 강화, 강원 철원을 관할한다. 서울남부본부는 서울 강남, 경기 하남·가평, 강원(철원 제외)을 맡는다. 경인본부는 경기(서울북부·서울남부 관할 제외)와 인천(강화 제외)을, 대전세종본부는 대전, 세종, 충북, 충남을 담당한다. 광주본부는 광주, 전북, 전남, 제주를, 대구본부는 대구, 경북을, 부산본부는 부산, 울산, 경남을 각각 관할한다.
임을기 보건복지부 노인정책관은 "치매안심재산관리서비스는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웠던 치매 어르신의 재산 관리를 국가가 함께 동행하며 지켜드리는 든든한 보호막이 될 것"이라며 "어르신들이 본인의 재산을 자신의 안전하고 건강한 노후를 위해 온전히 사용할 수 있도록 제도 정착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