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동차사고 책임 판단, 국민 눈높이와 제도 기준 엇갈려

자동차사고 책임 판단, 국민 눈높이와 제도 기준 엇갈려
자동차사고 과실비율 분쟁 건수가 지속 증가하는 가운데, 그 원인으로 과실비율에 대한 인식 차이가 지목됐다.
보험연구원이 5일 발표한 보고서(‘자동차사고 과실비율에 대한 국민인식’)에 따르면, 국내 자동차사고 과실비율 분쟁 건수는 2024년 15만6812건으로 2014년(3만260건)에 비해 5배 이상 늘었다. 같은 기간 대물배상 수리 건수 대비 분쟁 건수 비율은 5.4%로 10년 전(1.0%)보다 높아졌다.
금융당국은 이 같은 과실비율 분쟁 증가 원인으로 ▲과실비율의 보험금·보험료 할증 영향 ▲차량 블랙박스 보편화로 사고 확인이 용이해져 과실비율 이견 증가 ▲분쟁조정에서 과실비율이나 손해액이 조정되는 편향 등을 지목했다. 보험연구원은 운전자와 보험사 보상직원, 분쟁심의기구 간 과실비율 인식 차이도 분쟁 확대 배경일 수 있다고 보고, 자동차사고 과실비율에 대한 국민인식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보험연구원은 지난 2월 전국 18~69세 성인 남녀 3000명을 대상으로 자동차사고 과실비율 도표의 기본과실에 대해 설문했다. 차대차 사고, 차대인 사고, 차대 자전거 사고 등 10개 사고도표에서 차량 A와 B, 보행자, 자전거의 기본 과실이 몇 %인지를 설문하고 응답자들은 기본 과실을 기입했다. 조사 결과 정확한 기본과실을 맞춘 비중은 사고도표별로 최저 9.3%에서 최고 57.8%로 편차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먼저 사고 경험자들이 체감하는 공정성이 낮았다. 설문 대상자 중 운전하는 응답자는 77.1%(2606명)로, 이 가운데 최근 3년간 사고 경험이 있는 응답자는 24.9%(648명)로 집계됐다. 사고 경험자 10명 중 3.5명(34.9%)은 ‘과실비율이 공정하지 않았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사고 당시 예상한 과실비율과 보험사에서 안내받은 과실비율 간 차이가 있었다’고 한 응답자 중 19.0%는 공정하지 않다고 인식했다. 사고 경험자의 33.2%는 ‘조사가 충분하지 않았다’고 했고, 16.3%는 ‘과실비율에 대한 불만으로 민원이나 분쟁, 소송을 고려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기본과실 수준에 대한 인식도 일부 사고유형에서 크게 엇갈렸다. 신호기가 있는 교차로에서 횡단보도 보행자 신호에 우회전하는 A 차량과 녹색 신호에 직진하는 B 차량이 충돌한 사고는 A 차량의 과실 100%로 정하고 있다. 그러나 설문조사에서 이를 맞춘 응답자들(38.2%)은 차량 B의 과실비율을 평균 22.3%로 인식하고 있었다.
후행 차량(차량 B)이 선행 차량(차량 A)을 추돌한 사고는 차량 B의 기본과실이 무과실(0%)로 정의돼 있지만, 이를 맞춘 응답자들(57.8%)은 차량 B의 과실비율을 평균 16.3%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 같은 조사 결과를 두고 보험연구원은 “사고도표에 반영된 위험 인식과 국민이 체감하는 위험 인식이 서로 다를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우리나라가 채택하고 있는 ‘순수비교과실제도’의 모순적 배상 구조에 대한 문제의식도 분명했다. 순수비교과실제도란 가해자 과실이 99%라도 피해자가 가해자 손해의 1%를 보상하는 제도로, 가해자 차량 수리비가 10억원이면 피해자가 1000만원을 배상하는 구조다.
응답자의 77.4%는 ‘과실비율 10%인 저가 차량과 90%인 고가 차량의 과실비율이 공정하다’는 문항에 동의하지 않았고, 76.2%는 ‘과실비율이 낮은 피해자가 더 많은 보험금을 부담하는 구조가 공정하다’는 문항에 동의하지 않았다. 또 응답자의 85.5%는 ‘과실비율이 높은 상대방에게 더 많은 보험금을 지급하는 경우는 개선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를 통해 보험연구원은 “과실비율이 불공정하다고 인식하는 원인은 인식의 차이와 순수비교과실제도에 내재된 모순적 배상에서 비롯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보고서를 작성한 전용식 선임연구위원은 “자동차사고 과실비율 인정기준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고, 도로교통환경이나 법원 판례 변화를 반영할 수 있도록 과실비율 인정기준 개정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아울러 그는 “고가 차량과 저가 차량 간 사고에서 발생하는 모순적 배상 현상을 개선하기 위한 근본적인 개선책이 필요하다”며 피해자 과실이 일정 수준(49% 혹은 50% 이하)일 때만 배상을 인정하는 ‘수정비교과실제도’ 도입을 검토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