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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흡의 종횡무진 세계사] 역사의 아이러니, 이스라엘과 이란

 송영흡의 종횡무진 세계사  역사의 아이러니, 이스라엘과 이란

송영흡의 종횡무진 세계사 역사의 아이러니, 이스라엘과 이란

2026년 2월 말,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른바 ‘에픽 퓨리(Epic Fury)’로 불린 정밀 타격 작전을 통해 이란의 핵심 군사 시설과 지휘 체계를 공격했고, 최고지도부 인사의 사망 소식까지 전해지면서 중동의 긴장은 급격히 높아졌다. 호르무즈 해협을 사이에 둔 군사적 대치 속에서 충돌은 국지전을 넘어 지역 전체의 불안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이란은 미사일과 드론 공격으로 대응했고, 충돌은 시리아와 레바논, 홍해와 페르시아만 일대까지 번지고 있다. 미국 항공모함 전단이 중동에 집결하면서 긴장은 더욱 고조되었고, 해협 봉쇄 가능성이 거론되자 국제 유가는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 급등했다. 이번 사태는 중동 분쟁을 넘어 세계 경제와 국제 질서를 흔들 수 있는 위기로 평가되고 있다.

오늘날 국제정치에서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두 나라를 꼽으라면 이스라엘과 이란을 빼놓을 수 없다. 핵 문제와 종교 갈등, 그리고 중동 패권을 둘러싼 경쟁까지 두 나라는 서로를 가장 위험한 상대로 인식하며 긴장 상태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이 관계는 전혀 다른 모습에서 출발한다. 지금의 적대 관계만 보고 있으면 상상하기 어렵지만, 고대에는 오히려 페르시아가 이스라엘 민족의 회복을 가능하게 만든 나라였다. 오늘의 이란, 곧 고대의 페르시아는 한때 유대 민족의 생존과 재건을 결정적으로 도운 제국이었으며, 바로 이 점에서 두 나라의 관계는 역사의 가장 극적인 아이러니 가운데 하나로 남는다.

기원전 6세기, 유대 민족은 바벨론 제국에 의해 나라를 잃고 포로로 끌려갔다. 예루살렘 성전은 파괴됐고 정치적 독립뿐 아니라 종교적 중심도 무너졌다. 성경은 이 시기를 단순한 패전이 아니라 민족의 정체성이 흔들린 시대로 기록한다.

바로 이때 역사의 방향을 바꾼 인물이 등장한다. 페르시아의 왕 키루스, 성경의 표현으로는 ‘바사의 왕 고레스’다.

키루스는 아케메네스 왕조를 세우고 기원전 539년 바벨론을 정복하며 서아시아 전체를 지배하게 된다. 아케메네스 왕조(기원전 550~330년)는 이집트에서 인도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를 통치한 고대 최대 규모의 제국으로, 최초의 페르시아 제국이자 최초의 이란 중심 국가라고 할 수 있다.

당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있던 유대인들에 대하여 제국의 지배자였던 키루스는 이전의 정복자들과 전혀 다른 선택을 했다. 그는 정복한 민족을 강제로 동화시키지 않았고, 종교와 전통을 존중했으며, 각 민족이 자기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허용했다. 유대인에게 내려진 명령이 바로 역사와 성경에 기록된 ‘고레스 칙령’이다.

이 명령으로 유대인들은 포로 생활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수 있었고, 무너졌던 성전도 다시 세워지게 됐다. 성경은 이방 왕이었던 고레스를 단순한 정복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로 기록하며, 이사야서에서는 그를 두고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고까지 표현한다. 이는 유대인의 왕도 아니고 같은 신을 믿는 사람도 아니었던 페르시아의 통치자가 역사 속에서 특별한 역할을 했음을 보여 주는 매우 이례적인 장면이다.

이렇게 보면 고대 페르시아는 유대 민족에게 결정적인 도움을 준 나라였다. 그런데 오늘날 국제정치를 보면 가장 강하게 대립하는 두 나라 역시 이스라엘과 이란이다. 한때 은인이었던 나라가 오늘날 가장 두려운 적이 된 것이다.

이 변화는 오래된 역사가 아니라 비교적 최근에 시작됐다.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되었을 때만 해도 이란은 적대국이 아니었다. 당시 이란은 팔레비 왕조가 통치하던 세속 국가였고 미국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란은 중동에서 비교적 이른 시기에 이스라엘을 인정한 나라 가운데 하나였으며 정보와 군사, 경제 분야에서 협력도 이루어졌다. 지금의 관계만 보면 믿기 어려운 모습이다.

전환점은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이었다. 팔레비 왕조가 무너지고 호메이니가 이끄는 이슬람 공화국이 들어서면서 국가 정체성은 완전히 바뀌었다. 새로운 체제는 자신을 서방 제국주의에 맞서는 혁명 국가로 규정했고, 미국과 이스라엘을 그 상징적인 적으로 설정했다.

이후 이란은 헤즈볼라, 하마스, 시리아, 이라크 민병대 등 친이란 세력을 통해 이스라엘을 압박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보면 이란은 멀리 떨어진 적이 아니라 언제든 주변에서 움직이는 적이 됐다. 직접 전면전을 벌이지 않으면서도 여러 지역에서 동시에 압박을 가하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여기에 핵 개발 문제가 더해지면서 갈등은 단순한 외교 문제가 아니라 국가 생존의 문제로 확대됐고, 이스라엘은 이를 존립을 위협하는 위험으로 간주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상황이다. 동맹과 적대는 결코 영원하지 않다. 제국의 기억이 바뀌고, 혁명의 이념이 달라지고, 안보를 둘러싼 구조가 변하면 국가의 관계도 함께 달라진다.

고대에는 페르시아가 유대 민족의 회복을 가능하게 만든 나라였고, 오늘날에는 이란이 이스라엘을 가장 강하게 위협하는 나라가 됐다. 국가의 관계는 감정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역사는 언제나 힘의 구조와 질서 속에서 방향을 바꾸며, 그 변화는 인간의 기대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국제정치는 늘 냉정하고, 역사는 언제나 아이러니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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