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년 한 해 동안 전국에서 발생한 도로교통사고는 125만2433건에 달했으며, 이로 인한 사망자는 2551명, 부상자는 193만9993명에 이르렀다. 한국교통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이 사고들이 초래한 경제적 손실은 약 54조595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같은 해 국내총생산(GDP)의 2.25%에 해당하는 막대한 규모이며, 국방 예산의 80%를 넘는 수치다.
이 중 자산 피해로 추정되는 금액은 24조원, 피해자와 가족의 고통비용은 29조원 수준이다. 특히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이 가해자의 형사처벌을 보험 가입 여부에 따라 면제하면서, 인명 피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과실’로 치환되는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1982년 제정된 이 법은 12대 중과실 및 중상해를 제외한 약 80%의 사고에 대해 형사책임을 배제함으로써, 가해자에게 ‘보상하면 끝’이라는 인식을 고착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현재의 제도는 가해자가 보험사에 책임을 전가하는 구조로 작동하며, 피해자가 겪는 신체적·정신적 고통은 시스템 밖에서 방치된다. 보험 처리 과정이 사실상 형벌의 대체 수단이 되면서, 가해자의 죄책감은 희석되고, 피해자는 사법적 정의를 느끼기 어려운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이로 인해 보험업계는 단순한 손해배상 주체를 넘어, 사회적 갈등의 화약고로 비쳐질 위험도 커지고 있다.
업계 안팎에서는 중상해 기준을 하향 조정하고, 형사처벌 면제 범위를 대폭 축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가해자가 피해자의 치료 과정이나 장애인 재활 시설을 직접 체험하도록 의무화하는 제도적 보완도 논의되고 있다. 보험이 재산적 책임을 완수하는 도구일 뿐이지, 인간적 책임을 감춘다는 비판을 막기 위한 근본적 개편이 필요한 시점이다.
보험의 본질적 기능은 위험 분산이지만, 현재의 제도는 ‘범죄의 사회적 비용’을 보험시장이 일방적으로 부담하게 만든다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법적 책임과 보험 처리 간의 균형을 재정립하지 않는 한, 보험업계는 지속해서 정의와 합리성 사이의 딜레마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교통사고를 다시 ‘범죄’의 영역으로 복원하는 것은, 단순한 제도 개선을 넘어 사회적 책임의 재정의를 의미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