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기업들, 정치 리스크의 중심축이 자국으로 이동

정치적 위험의 발생 지점이 전통적인 고위험 신흥국에서 주요 선진국 시장으로 급속히 이동하고 있다. 윌리스타워스왓슨(WTW)재팬이 지난달 29일 공개한 '정치 리스크 조사 보고서 2026'에 따르면, 글로벌 기업들이 가장 경계하는 리스크의 진원지로 미국, 중국 등 핵심 경제권이 부상했다. 이번 분석은 정치 리스크 전문기관 옥스퍼드 애널리티카와 공동으로 진행됐으며, 유럽과 북미 지역에 본사를 둔 다국적 기업이 전체 응답자의 83%를 차지했다.
WTW브로커재팬의 키리하라 노리아키 수석 컨설턴트는 "정치 리스크가 더 이상 먼 나라의 문제가 아니라 자국 정부와 핵심 시장에서 비롯되는 현상으로 변모했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올해 정치 리스크로 인한 손실이 발생한 상위 국가는 미국, 중국, 러시아, 우크라이나, 인도 순으로 집계됐다. 응답 기업의 39%는 자국 정부의 정책 변화가 오히려 해외 정치 리스크를 키우고 있다고 평가했으며, 32%는 국가 안보를 위해 비용 증가와 경쟁력 하락을 감수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리스크 평가 순위에서 나타났다. 새로운 지정학적 위협으로 '미국 내 소요 및 정치 폭력'을 꼽은 비율이 49%로, 중동 분쟁(46%)을 앞질렀다. 조사 기간이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이 진행 중이던 시점임을 감안하면 더욱 의미 있는 결과다. 키리하라 수석은 "리스크의 중심축이 외부에서 내부로 완전히 이동했다는 방증"이라고 분석했다. 아시아 기업의 응답 비중이 16%에 불과했음에도 '대만해협 리스크'가 32%를 기록한 점은, 대만 유사시 상황이 전 세계 기업의 공동 우려로 확대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기업들이 가장 통제하기 어려운 리스크로 '관세장벽 상승'을 지목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응답 비율이 61%에 달해 국제 무력분쟁(28%)을 크게 상회했다. 공급망 차질은 3년 연속 가장 큰 손실 유형으로 나타났으며, 응답 기업의 약 75%가 정치·지정학적 리스크로 인한 신용손실을 경험했다. 또한 84%는 동·서 진영 간 사업 구조를 분리 운영하는 방안을 이미 시행 중이거나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키리하라 수석은 "정치 리스크가 더 이상 일시적 위기 대응 대상이 아니라 상시적인 경영 거버넌스 과제로 전환되고 있다"며 "여러 지정학적 위험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상황을 전제로 한 대응 체계 구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보험업계에서는 이러한 리스크 환경 변화가 글로벌 보험 상품 설계와 리스크 평가 방식에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