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츠하이머병의 진행 위험을 6단계로 예측할 수 있는 기준이 마련됐다. 질병관리청 국립보건연구원은 국내 노인성 치매환자 코호트 자료를 활용해 혈액검사, 뇌영상, 임상정보를 통합 분석한 결과, 기존의 인지상태 중심 3단계 분류보다 더 세밀하게 질병 진행 위험을 구분할 수 있는 6단계 예후 체계를 개발했다고 22일 밝혔다.
알츠하이머병은 치매의 가장 흔한 원인 질환으로, 기억력에 문제가 없는 인지정상 상태에서 경도인지장애, 치매로 이어지는 연속적인 경과를 보인다. 하지만 같은 인지 단계에 있더라도 실제 질병의 진행 속도와 악화 위험은 개인마다 크게 다를 수 있다. 최근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도입과 조기 개입 연구가 확대되면서, 진행 위험이 높은 환자를 보다 정밀하게 구분하고 장기 경과를 예측할 수 있는 근거 마련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었다.
연구진은 국내 노인성 치매환자 코호트 참여자 1263명의 인지기능 검사 결과, 혈액검사, 뇌영상 검사, 나이 등 다양한 정보를 분석했다. 분석 결과, 단계가 높을수록 인지기능과 일상기능 저하가 더 뚜렷하게 나타났다. 특히 기존의 인지상태 분류만으로는 구분하기 어려웠던 진행 속도의 차이를 다양한 정보를 통합해 단계적으로 설명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이번 연구는 알츠하이머병의 현재 상태를 평가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향후 질병 경과를 예측하기 위한 연구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향후 진행 위험이 높은 대상자에 대한 조기 선별, 추적관찰 및 상담, 조기 개입 연구의 우선순위 설정, 예후 예측 모델 개발 등에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이번 예후 체계는 치료 여부를 직접 결정하는 임상 도구가 아니라, 알츠하이머병 진행 위험을 연구 목적으로 구분하기 위한 예측 체계다. 실제 치료제 사용 여부는 아밀로이드 병리 확인, 치료 적합성 평가, 안전성 평가 등 별도의 임상적 판단이 필요하다.
연구진은 "알츠하이머병은 같은 인지 단계에서도 진행 양상이 다양하기 때문에, 장기 추적 코호트에서 축적된 여러 정보를 함께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번 연구를 토대로 한국인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질병 경과를 보다 정밀하게 이해하고, 예후 예측 연구를 고도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국립보건연구원 만성질환융복합연구부 김원호 부장은 "이번 성과는 치매 코호트에 축적된 임상정보와 영상, 혈액 바이오마커 자료를 연계 분석해 도출한 결과"라며 "앞으로 유전체와 생체자원, 생활습관 정보 등을 추가로 연계해 치매 진행 예측 모델을 고도화하고, 맞춤형 예방·관리 전략 개발로 이어질 수 있도록 후속 연구를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질병관리청 임승관 청장은 "치매는 고령사회에서 국민 부담이 큰 대표적인 뇌질환으로, 조기 발견뿐 아니라 진행을 늦추기 위한 과학적 근거 마련이 중요하다"며 "질병관리청은 한국인 특성을 반영한 치매 연구자원을 지속적으로 축적·개방해 치매 극복과 국민 건강증진에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게재됐다. 연구는 질병관리청 국립보건연구원이 주관하는 뇌질환 연구기반 조성 연구사업을 통해 구축·활용 중인 한국형 치매 코호트 자료를 기반으로 수행됐다. 이 사업은 뇌질환의 정확한 진단·예방·치료를 위해 4개 뇌질환 코호트를 중심으로 임상·영상·유전체 등 다양한 연구자원을 통합하고, 연구자가 활용할 수 있도록 구축·개방하는 국가 연구 인프라 사업이다.
연구 대상은 치매환자 코호트 참여자 1263명으로, 인지정상 224명, 경도인지장애 779명, 치매 260명이 포함됐다. 외부 검증을 위해 ADNI 코호트 290명의 자료도 활용했다. 분석에 사용된 정보는 연령, 성별, 교육연수, APOE ε4 보유 여부, 고혈압, 당뇨 등 임상정보와 혈액 바이오마커(Aβ42/40, pTau181, pTau217, pTau231, GFAP, NfL), 뇌 MRI 해마용적, 아밀로이드 PET 양성 여부 등이다.
연구진은 인지정상군, 경도인지장애군, 치매군을 각각 분석해 질병 진행 위험을 구분하는 주요 요인을 확인하고, 생존 예측 모형을 활용해 각 인지 단계 내 예후 위험군을 도출했다. 이를 바탕으로 최종적으로 Stage 0부터 Stage IVB까지 알츠하이머병 전 주기를 아우르는 6단계 예후 병기 체계를 제시했다.
병기가 높아질수록 CDR-SB 점수는 증가하고 MMSE 점수는 감소해, 인지기능 및 일상기능 저하가 단계적으로 악화되는 경향을 확인했다. 인지정상군에서는 혈액 GFAP와 pTau217, 경도인지장애군에서는 MRI 해마용적과 pTau217, 치매군에서는 연령과 pTau217이 예후 위험군 구분에 주요하게 활용됐다. 특히 혈액 pTau217은 인지정상, 경도인지장애, 치매 전 단계에서 지속적으로 예후 예측에 기여하는 지표로 확인됐다.
외부 검증 코호트인 ADNI 290명에서도 초기 및 중간 단계에서 병기가 높아질수록 예후가 나빠지는 일관된 경향을 확인했다. 다만 후기 단계에서는 ADNI 코호트 내 대상자 수와 사건 수가 제한적이어서 추가 검증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연구는 혈액 바이오마커 하나로 치매 진행을 예측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인지상태, 혈액 바이오마커, 뇌영상, 임상정보를 함께 활용하면 같은 인지 단계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질병 진행 위험을 보다 정밀하게 구분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