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 연결은 한 번에 성공하지 않았다. 이재현이 정비열차의 끊긴 케이블을 잇자 잡음이 먼저 커졌고, 역 대피소의 환기 팬이 돌 때마다 목소리가 묻혔다. 하린은 들린 단어를 추측해 채우지 않았다.
세 번째 시험에서 낮고 쉰 목소리가 유지기지 이름을 말했다. 자신들이 스물일곱 명이라고 했고 전력은 이틀 단위로 나눠 쓰고 있다고 했다. 숫자는 되묻고 두 사람이 같은 답을 기록했다.
기지 쪽 대표는 이수경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사고 전 유지 설비 조정 업무를 했고 현재는 물·전력 회의를 맡지만 혼자 결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첫 대답부터 구조 요청과 통로 개방을 같은 것으로 만들지 않았다.
민세온은 통신 목적을 읽었다. 인원과 즉시 위험, 환기·전력·물, 이동이 어려운 사람, 기지의 선택, 통로 상태를 확인하는 순서였다. 가족 확인은 공개 질문 뒤 별도 동의로 진행하기로 했다.
이수경은 스물일곱 명 가운데 네 명이 긴 거리를 걷기 어렵고, 한 명은 지속적인 호흡 관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물은 조절하면 며칠 더 버틸 수 있지만 배수 펌프 전력이 불안했다.
차유리는 진단명 대신 현재 상태와 필요한 보조를 물었다. 들것 가능 폭과 통로 경사, 중간 휴식 장소를 설명하며 누구를 지금 옮기는 것이 더 나은지 기지 돌봄 담당과 비교했다.
하린은 가족 질문 순서가 오자 공개 마이크에서 물러났다. 기지 쪽 사람이 별도 선으로 가족 신호를 확인할 수 있는지 물었다. 이수경은 당사자가 대화에 동의하면 연결하겠다고 답했다.
긴 몇 분 뒤 다른 목소리가 별 둘과 강 하나를 말했다. 하린은 그 다음 사적인 응답을 공개하지 않았다. 둘만 아는 마지막 단어가 맞았고, 세 기록자가 ‘신원 확인’만 표시했다.
오빠는 살아 있었다. 다만 봉쇄 첫날 열차가 기울 때 다리를 다쳤고 제대로 붙지 않아 긴 이동이 어려웠다. 그는 기지의 다른 이동 어려운 사람보다 먼저 데려가 달라고 말하지 않았다.
하린은 안으로 가겠다고 하지 않았다. 목소리를 들은 뒤 손이 떨려 기록을 내려놓고 두 번째 통신 담당에게 넘겼다. 가족을 확인한 기쁨이 구조 조건을 지우지 않게 했다.
오빠는 마지막 운행표의 사람들을 기지로 옮긴 것이 자신 혼자 한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송미경의 역 대피소 인력과 기지 사람들이 중간에서 들것을 받아 이어 갔다. 차량을 버리자는 결정도 세 사람이 함께 내렸다.
이수경은 기지 문을 지금 열 수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안쪽 압력문을 열면 환기 구역 둘이 연결되고 전력 부족 때 공기 흐름이 흔들릴 수 있었다. 사람을 내보내는 시간과 팬 가동을 맞춰야 했다.
정윤호의 옛 도면은 기지 문이 중앙 통제 신호와 연결돼 있음을 보여 줬다. 이수경은 자동 잠금이 두 번 작동해 수동 해제를 유지 중이라고 했다. 외부에서 전원을 잘못 넣으면 다시 잠길 수 있었다.
기술조는 전력을 보내기 전 기지 회로와 전압을 맞췄다. 필요한 것은 문을 강제로 여는 큰 전력이 아니라 통신과 환기, 배수의 안정이었다. 구조를 서두르려다 기지 전체를 어둡게 하지 않았다.
이수경은 스물일곱 명 모두가 나가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지상 분진과 공동체 규칙을 믿지 못하는 사람, 기지 설비를 지키려는 사람, 가족과 함께 이동하고 싶은 사람이 달랐다.
세온은 ‘구조 대상’이라는 이름부터 수정했다. 기지 주민, 이동 희망, 잔류 희망, 결정 보류로 구분하고 언제든 바꿀 수 있게 했다. 바깥 공동체가 사람의 의사를 대신 정하지 않았다.
차유리는 네 명의 이동 어려운 사람에게 개별 선택과 의료 위험 설명이 필요하다고 했다. 기지 돌봄 담당이 사생활을 가린 채 상태를 전달하고, 실제 이동 전 당사자와 직접 확인하기로 했다.
하린 오빠는 자신이 다리를 다쳤지만 기지에서 정비 기록과 통신을 맡을 수 있다고 말했다. 나가면 치료 가능성이 늘 수 있으나 이동 중 통증과 다른 사람의 운송 부담도 있었다. 그는 결정을 하루 미뤘다.
하린은 그 선택에 동의한다고 대신 말하지 않았다. 오빠가 판단할 시간을 갖게 하고 다음 통신 때 다시 묻기로 했다. 가족 재회는 상대의 거주와 치료 선택을 빼앗는 권리가 아니었다.
통신을 마친 뒤 기지 주민들에게도 같은 재질문 시간이 보장됐다. 첫 대화의 흥분 속에서 나가겠다고 말한 사람은 하루 뒤 보류로 바꿀 수 있었고, 남겠다고 했던 사람도 이동 상담을 요청할 수 있었다. 이수경은 변경을 변덕으로 기록하지 않고 새 선택 시각과 필요한 조건을 덧붙였다.
작은 학교는 기지에 아이가 있는지 물었다. 이수경은 미성년자가 두 명 있지만 위치와 상태는 공개하지 않았고, 둘 모두 보호자와 함께 있다고 했다. 학교 이전이 자동 답이 되지 않았다.
역 대피소는 기지 주민이 자기 구간을 지나갈 때 필요한 물과 환기 부담을 계산했다. 스물일곱 명을 한 번에 옮길 수 없고 여러 차례 나누면 기지와 역 모두의 전력을 관리해야 했다.
첫 이동 창은 두 명의 의료 위험자와 장비 확인조만 검토됐다. 누구인지 공개하지 않고 당사자 동의와 기지 내 대체 돌봄, 통로 조건을 확인하기로 했다. 오빠의 이름은 그 목록에 자동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이수경은 바깥 조례를 기지 안에 적용하라는 요구인지 물었다. 세온은 아니라고 답했다. 통로를 함께 쓸 때의 안전 규칙만 합의하고, 기지 내부 생활과 재산·역할은 그들의 회의가 정한다고 했다.
통신이 길어지자 기지 전압이 떨어졌다. 약속한 중단 시각이 오자 하린은 더 묻지 않고 선을 끊었다. 다시 들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어도 상대의 전력을 다 쓰지 않는 선택이었다.
종료 뒤 기지의 요구 목록을 공개했다. 환기 필터, 배수 부품, 통신 전력, 이동 선택별 계획이었다. 사람 수보다 물자를 먼저 요구했다는 비난이 나오지 않도록 각 항목이 생존에 어떻게 연결되는지 설명했다.
오도혁은 부품을 지상 창고에서 찾을 수 있다고 했다. 그가 아는 비공개 창고를 혼자 열지 않고 역 대피소·기지 기술자의 규격 확인을 먼저 받았다. 맞지 않는 부품을 영웅적으로 가져오지 않았다.
북서 의료소는 이동 환자를 받을 수 있는 시간을 제한적으로 제시했다. 전문 진료와 처치를 보장하지 않고 상태 평가와 가능한 지원을 약속했다. 기지 주민은 그 조건을 들은 뒤 이동 여부를 다시 고를 수 있었다.
저녁에 하린은 오빠에게 짧은 개인 메시지를 보냈다. ‘살아 있어 다행’과 ‘네가 고를 때 기다리겠다’ 두 문장이었다. 구조 계획이나 순번을 약속하지 않았다.
오빠의 답은 다음 통신 창에 왔다. 그는 하린을 보고 싶지만 첫 운송에는 더 급한 두 사람을 보내고 싶다고 했다. 그 뜻이 의료 기준을 대신 결정하지 않도록 기지 돌봄 담당과 당사자에게 다시 확인하기로 했다.
세 공동체는 첫 이동 전날까지 문을 열지 않았다. 들것 모서리와 누전 구간, 환기 창, 기지 압력문 수동 해제를 각각 시험했다. 닫힌 기지의 대답을 들었다고 길이 열린 것은 아니었다.
밤 공개판에는 ‘생존 확인’과 함께 ‘스물일곱 사람의 서로 다른 선택’이 적혔다. 하린 오빠는 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공동체는 한 가족의 결말을 위해 기지 전체를 배경으로 만들지 않았다.
새벽 팬 가동음이 유선을 타고 들렸다. 기지와 바깥이 같은 소리를 듣고 각자의 측정값을 읽었다. 그 일치가 첫 이동 창을 열 조건 하나가 됐고, 나머지 조건은 여전히 사람들의 동의와 퇴로에 달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