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문 아래 사다리를 내려가자 낮은 진동음이 발바닥으로 전해졌다. 오래 멈춘 도시의 지하에서 전기가 남은 선로가 있다는 사실은 희망보다 먼저 위험이었다. 이재현은 금속 난간을 잡기 전 비접촉 측정기를 댔다.
측정기는 첫 계단에서는 조용했고 바닥 가까이에서 약하게 울렸다. 바닥 물과 케이블 덮개 사이 거리가 좁았다. 점검조는 한 줄로 건너지 않고 마른 발판을 놓아 각자 같은 경로를 밟았다.
송미경이 보낸 역 대피소 기술자는 이 구간의 전력이 본선이 아니라 환기 팬과 배수 펌프를 위한 보조선일 수 있다고 했다. 도면은 오래됐고 사고 뒤 임시 연결이 있었을 가능성도 있었다.
강태민은 전원을 모두 끄자고 하지 않았다. 배수와 환기까지 멈추면 다른 위험이 커질 수 있었다. 어느 회로가 무엇을 살리는지 확인한 뒤 구간 차단을 해야 했다.
하린은 바깥 통신석에서 도면 번호와 현장 표찰을 읽어 줬다. 전력실 표찰 두 개가 문서와 바뀌어 있었다. 누군가 사고 뒤 임시로 회로를 돌린 흔적이라면 종이 도면만 믿을 수 없었다.
점검조는 첫 분기함 앞에서 멈췄다. 녹색 등 하나는 켜져 있었고 붉은 등은 깨져 있었다. 불이 꺼졌다는 이유로 전력이 없다고 보지 않고 각 출력선을 따로 측정했다.
한 선에서는 예상보다 높은 값이 나왔다. 바닥 물과 맞닿은 케이블 외피에도 미약한 누전 반응이 있었다. 중단 신호가 올라오자 모두가 마른 발판 쪽으로 돌아갔다.
누구도 측정기를 든 기술자에게 혼자 다시 가 보라고 하지 않았다. 역 대피소와 북서 환경 담당이 바깥에서 수치를 비교했고, 분기함 위쪽의 기계식 차단기를 확인할 방법을 찾았다.
송미경은 자기 거점 환기 시간이 곧 시작되므로 주회로를 끌 수 없다고 알렸다. 안전지대의 통행 필요가 안쪽 사람의 공기를 빼앗아서는 안 됐다. 작업은 환기 주기가 끝난 뒤 짧은 구간에 맞췄다.
차단 전에는 역 대피소 내부에 시간을 두 번 알렸다. 의료 장비나 조명이 영향을 받는지 각 구역이 확인했다. 한 구역에서 배수 소리가 달라질 수 있다는 응답이 와 예비 수동 펌프를 배치했다.
세 공동체 기록자가 차단 번호를 함께 읽었다. 이재현이 손잡이를 내리고 다른 기술자가 전압이 사라졌는지 확인했다. 차단했다는 동작과 실제 무전압 상태를 같은 것으로 보지 않았다.
분기함 아래 누전 구간은 즉시 수리하지 않았다. 케이블 외피가 물속에서 손상된 위치를 찾지 못한 상태였다. 접근 금지 띠와 우회 발판을 설치하고, 회로를 잠가 재가동 조건을 적었다.
잠금 열쇠는 한 사람이 갖지 않았다. 역 대피소와 안전지대가 서로 다른 봉인표를 붙여 둘 다 확인해야 풀 수 있게 했다. 긴급 상황에는 개방 이유와 사후 확인 시각을 남기는 절차가 있었다.
전력 차단 뒤 환기 수치는 조금 떨어졌다. 주회로와 별개라고 생각한 보조 팬 하나가 영향을 받은 것이다. 점검조는 수치가 경보선에 닿기 전 계획한 거리의 절반에서 돌아왔다.
첫 점검의 목표였던 빈 들것 운반은 아직 하지 못했다. 학교 기록자는 실패라고 쓰지 않았다. 누전 구간과 회로 연결을 확인했고, 통행 가능 폭과 환기 변화를 얻었다.
오후에는 역 대피소가 보낸 예비 케이블 다리와 절연 발판을 설치했다. 설치자는 자기 장비가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매번 물 높이와 표면 손상을 다시 봐야 했다.
나루는 바닥 표식을 색만으로 만들지 않았다. 높게 솟은 삼각 촉감 표지는 마른 통로, 두 줄 거친 띠는 접근 금지였다. 어두운 곳과 시각이 불편한 사람도 발로 구분할 수 있었다.
은별은 들것 폭을 실제로 재었다. 가장 좁은 케이블 모서리에서 손이 벽에 닿았고, 방향을 틀 공간이 부족했다. 들것 환자를 옮기려면 모서리 보호와 중간 휴식대가 필요했다.
차유리는 모형 무게를 실은 빈 들것으로 먼저 시험하자고 했다. 사람을 태운 뒤 문제를 발견하지 않기 위해 물통을 묶어 실제 하중과 비슷하게 만들었다. 운반조도 교대 위치를 미리 정했다.
두 번째 진입에서는 절연 발판 전후 수치를 다시 쟀다. 누전 반응은 차단 상태에서 사라졌지만 바닥 물은 조금 높아졌다. 배수 펌프 한 대가 전력 작업 동안 멈춘 결과였다.
송미경은 통행을 위해 펌프를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 기술조는 누전 회로와 배수 회로를 분리할 임시 연결안을 냈다. 박선묵은 도면 검토만 돕고 혼자 배선에 손대지 않았다.
임시 연결은 두 기술자와 역 대피소 입회 아래 시행됐다. 연결 뒤 환기와 배수, 선로 전압을 차례로 확인했다. 한 장비가 돌아왔다고 다른 장비도 정상이라 추정하지 않았다.
물 높이가 안정되자 빈 들것이 첫 구간을 통과했다. 좁은 모서리에서 예정대로 멈추고 손잡이를 바꿨다. 이동 시간은 지상보다 훨씬 길었고 긴급 환자에게 항상 좋은 경로가 아니라는 결과가 나왔다.
하린은 통신 지연도 기록했다. 분기함 뒤에서는 음성이 두 번 끊겼고 유선 신호가 더 안정적이었다. 향후 이동에는 무전과 유선을 함께 쓰되, 유선이 끊기면 어떤 표식까지 돌아올지 정했다.
강태민은 선로를 걷는 사람의 앞뒤를 지휘하지 않았다. 각 구간 책임자가 다음 표식을 확인하고, 뒤쪽 확인자가 인원과 장비를 세었다. 빨리 가는 사람의 속도에 행렬을 맞추지 않았다.
저녁 공개판에는 ‘통행 가능’ 대신 구간별 조건이 적혔다. 첫 철문부터 분기함까지는 발판과 차단 확인 필요, 그 뒤는 환기 수치와 유선 연결 필요, 들것은 모서리에서 교대였다.
학교는 지하가 지상보다 무조건 안전하다는 안내를 취소했다. 분진 바람이 강한 때는 도움이 될 수 있으나 누전과 침수, 느린 이동 때문에 다른 날에는 지상 퇴로가 나을 수 있었다.
실제 첫 통행을 마친 점검자들의 장비도 곧바로 재사용하지 않았다. 절연 발판에 묻은 물과 케이블 가루를 분리해 닦고, 측정기 배터리와 기준값을 확인했다. 장비가 통과했다는 사실이 다음 사람의 안전 확인을 대신하지 않았다.
역 대피소 주민 한 명은 전력 작업 동안 자기 방 조명이 두 번 꺼졌다고 이의를 냈다. 기술조는 비상 조명 회로가 완전히 분리되지 않은 사실을 인정하고, 다음 구간 차단 전에 방별 영향표를 읽기로 했다. 통로를 넓히는 편익이 안쪽 생활의 작은 손실을 보이지 않게 만들지 않았다.
다음 시험에서는 조명 영향을 받는 방에 휴대등과 안내자를 먼저 배치했다. 전력을 다루는 사람은 차단 성공만 기록하지 않고 어느 방이 어두워졌고 누가 불편을 말했는지까지 남겼다. 그 결과 전력 창은 더 짧아졌지만 기지 주민도 중단 시점을 예측할 수 있었다.
역 대피소는 전력 사용표를 공유했다. 사람 이동 시간에는 팬과 펌프 부하가 바뀌므로 하루 두 차례 짧은 창만 열 수 있었다. 안전지대는 더 긴 시간을 요구하지 않고 실제 이동 후 다시 계산하기로 했다.
밤에 보조 회로가 한 번 흔들리자 자동 경보가 울렸다. 잠금 봉인은 그대로였고 임시 연결의 접점 온도가 올라간 것이 원인이었다. 기술조는 전력을 낮추고 다음 날 연결부를 교체하기로 했다.
전기가 남은 선로는 폐허 속 기적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환기와 배수를 살리는 동시에 젖은 바닥을 위험하게 만드는 제한된 자원이었다. 공동체는 빛이 켜졌다는 이유로 길을 열지 않고, 무엇을 끄면 누가 숨쉬기 어려워지는지까지 기록했다.
새벽 점검표 끝에는 다음 목표가 적혔다. 분기기 너머 정비열차의 마지막 위치를 찾되, 전력 창과 환기 중단선을 넘지 않을 것. 길은 조금 늘었지만 멈출 조건도 그만큼 더 분명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