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묵은 자기 이름이 적힌 관찰소 계약 부속 문서를 먼저 읽겠다고 하지 않았다. 세 거점 입회자가 봉인을 풀고 공개 가능한 사본을 만든 뒤, 그도 주민들과 같은 자리에서 화면을 보았다.
문서 첫 장에는 시설 목적이 ‘긴급 대응 관찰과 자원 분류 지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폭발 실험이나 공업지대 사고를 계획한다는 문장은 없었다. 그러나 일반 대피소가 아니라 관찰 자료와 연결된 시설이라는 사실은 분명했다.
민세온은 선묵이 언제 그 목적을 알았는지 물었다. 그는 도시가 닫히기 석 달 전 장비 설치를 맡으며 관찰 연계를 알았다고 답했다. 어떤 처치가 시험 단계였는지, 공업지대의 물질이 무엇인지는 듣지 못했다고 했다.
장비 작업 로그에는 그의 계정으로 분류 표가 두 번 수정된 기록이 있었다. 첫 수정은 ‘보호 가능’ 표시가 있는 사람을 안쪽 구역에 우선 배치했고, 두 번째 수정은 보행이 어려운 사람의 대기 시간을 늘리는 결과를 냈다.
선묵은 자리가 부족해 빠르게 정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차유리는 빠른 판단이 필요했다는 사실과 의료 상태를 직접 보지 않은 기준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함께 적었다. 속도는 선택의 조건이지 결과를 없애는 말이 아니었다.
정윤호가 보낸 축약 지침에는 표본 부족 주석이 없었다. 하지만 관찰소 서버에는 원자료 요약을 요청해 받은 흔적이 있었다. 파일은 열렸고, 읽은 시각도 남아 있었다.
박선묵은 작은 글씨까지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하린은 기억을 대신 판정하지 않고 화면 열람 시간과 이후 수정 시각을 나란히 놓았다. 그가 파일을 열었다는 사실과 내용을 이해했다는 정도는 다를 수 있었다.
관찰소에서 일했던 주민 한 명은 선묵이 ‘이 표가 완전하지 않다’고 말한 것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다른 사람은 그런 말을 들은 적 없다고 했다. 두 진술은 서로 지우지 않고 당시 근무 구역과 시간을 붙여 보관했다.
임수아는 자신의 줄이 왜 바깥 대기로 분류됐는지 물었다. 수정 로그에는 처치 확인 칸이 비어 있고 보행 가능으로 표시된 사람을 후순위로 보낸 규칙이 적용돼 있었다. 개인을 싫어해서 내린 결정이라는 증거는 없었다.
선묵은 그때 수아를 직접 보지 못했다고 했다. 바로 그 사실이 문제의 일부였다. 사람을 보지 않고 불완전한 표의 빈칸과 걸을 수 있다는 표시만으로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이라 정했다.
공개석에서 누군가는 선묵이 처음부터 모든 일을 꾸몄다고 부르려 했다. 세온은 확인된 계약 목적과 폭발 원인 지식을 구분했다. 그가 관찰소의 역할을 알고 분류를 좁힌 책임은 검토할 수 있지만, 공업지대 폭발을 알았다는 자료는 없었다.
반대편에서는 선묵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는 말이 나왔다. 윤호의 문서가 불완전했어도 선묵은 현장 규칙을 더 좁게 만든 기록이 있었다. 아무것도 고를 수 없던 사람으로 만드는 것도 사실과 달랐다.
강태민은 관찰소 출입 통제와 검문소 봉쇄가 어떻게 연결됐는지 물었다. 통신 기록에는 관찰소가 서쪽 초소에 우선 대상 수를 알려 준 흔적이 있었지만, 사람의 이름은 없었다. 구체적 이동 차단 명단까지 공유됐는지는 미확인이었다.
오도혁은 사설 차량 두 대가 관찰소 물자를 먼저 옮겼다는 배차 쪽지를 내놓았다. 선묵은 긴급 필터와 물이라고 기억했지만 화물 검수표가 없었다. 생존 물자였는지 관찰 장비였는지 더 확인해야 했다.
박선묵이 알고 있던 범위는 세 층으로 정리됐다. 관찰소 연계는 확인, 분류 표의 불완전성 인지는 여러 자료가 뒷받침, 폭발 성분과 원인은 확인되지 않음이었다. 층마다 근거와 반대 자료가 붙었다.
세온은 그 표를 판결문이라 부르지 않았다. 현재 공동체가 역할과 정보 접근을 정하기 위한 책임표였다. 미래에 더 나은 조사 기관이 생기면 원본과 진술을 넘길 수 있게 보존했다.
선묵은 기술 작업을 계속할 수 있었지만 사람 분류와 출입 기준을 만들 수 없었다. 장비를 고칠 때도 공개 작업표와 동료 입회가 필요했다. 이미 끝난 예순 날 배제 기간이 자동 신뢰로 바뀌지 않는다는 기존 원칙을 유지했다.
그는 불만을 숨기지 않았다. 누구보다 시설 구조를 아는데 결정에서 빠지면 느려진다고 말했다. 은별은 느려진 시간과 사람이 빠져 생기는 시간을 함께 재야 한다고 답했다.
차유리는 관찰소 옛 대기자 기록의 재검토를 제안했다. 모든 이름을 공개하지 않고, 분류 규칙 때문에 의료·물·대피 접근이 늦어진 사례를 찾기로 했다. 당사자는 참여와 공개 범위를 고를 수 있었다.
첫 재검토에서 세 건의 지연이 확인됐다. 하나는 이후 다른 의료소로 인계됐고, 하나는 스스로 떠났으며, 하나는 결과 기록이 없었다. 빈 결과를 생환이나 사망으로 채우지 않았다.
선묵은 결과 기록이 없는 줄을 오래 바라봤다. 자신이 그 사람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변명이 될 수도 있었지만, 동시에 기록을 남기지 않은 운영의 문제를 보여 줬다.
그는 당시 수정 이유를 새 설명서로 작성했다. 인원 압박, 상급 지침, 장비 수, 자신이 택한 간소화, 놓친 의료 예외를 항목별로 썼다. 마지막에는 지금도 확신하지 못하는 부분을 따로 남겼다.
하린은 작성 시각과 변경 이력을 공개했다. 선묵이 나중에 문장을 고치면 이전본이 사라지지 않았다. 자기 진술을 정정할 권리와 정정 사실을 숨길 수 없는 규칙이 함께 적용됐다.
주민 회의는 그에게 사과를 강요하지 않았다. 임수아는 사과를 듣는 것보다 자신의 기록을 바로잡고 같은 표가 다시 쓰이지 않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다른 피해자는 나중에 직접 질문할 권리를 남겼다.
그 요구에 따라 관찰소 옛 대기자 세 명의 접근 기록이 먼저 고쳐졌다. 한 사람에게는 북서 의료소 재상담을 연결했고, 한 사람은 연락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남겼으며, 결과를 찾지 못한 줄은 계속 미확인으로 두었다. 선묵은 연락 대상 선정에 참여하지 않고 장비 로그 위치만 설명했다. 책임 검토가 다시 당사자의 선택을 빼앗지 않게 한 조치였다.
기술조는 선묵 없이도 기기를 멈출 수 있는 중단표를 만들었다. 보정 값이 벗어나거나 해석자가 한 명뿐이면 결과 공개를 미루는 규칙이었다. 그의 지식은 훈련 자료로 남았지만 최종 판단은 두 거점 환경 담당이 교차 확인했다.
저녁 기술 작업에서 선묵은 분진 분석기의 보정표를 꺼냈다. 예전 같으면 결과 숫자부터 말했겠지만, 그날은 기기의 검출 한계와 오래된 표준 시료부터 읽었다. 역할 제한이 기술을 없애지 않고 기술의 경계를 드러냈다.
간이 분석은 북서 결과와 일부 맞고 일부 달랐다. 그는 자기 기계가 더 가깝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습기와 표면 조건, 보정 시기가 달라 생긴 차이를 목록에 적고 두 환경 담당에게 해석을 넘겼다.
밤 방송에서 세온은 선묵의 책임표를 짧게 설명했다. 알고 있었던 것, 알았을 가능성이 큰 것, 확인되지 않은 것을 섞지 않았다. 주민이 분노할 권리와 사실 범위를 지킬 책임은 동시에 존재했다.
박선묵은 방송 뒤 관찰소 문표를 떼어 공동 기록실에 보냈다. 그 표가 있었던 사실을 없애지 않고, 더 이상 사람을 가르는 도구로 쓰지 않게 한 것이다. 빈 자리에 현재 상태와 도움 요청 안내가 붙었다.
그가 모든 것을 알았다는 결론은 쉽고, 아무것도 몰랐다는 결론도 쉬웠다. 공동체가 택한 것은 더 불편한 중간이었다. 알고 있던 범위 안에서 한 선택을 책임지고, 모르는 범위는 다음 증거가 올 때까지 열어 두는 일이었다.
다음 날 북서 의료소는 공업지대에서 빠져나온 안전 연구원이 있다는 연락을 보냈다. 세온은 그 사람의 설명을 선묵의 빈칸에 곧바로 넣지 않았다. 신원과 기록을 따로 확인한 뒤 같은 표 앞에서 대조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