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린은 죽어 있던 채널에서 자기 어린 시절의 문장을 들었다. ‘별 둘, 강 하나, 집으로.’ 짧은 여섯 음 뒤에 잡음이 이어졌고, 중계기는 다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문장은 구조 부호가 아니었다. 하린과 오빠가 초등학교 때 길을 잃으면 쓰기로 한 가족 확인 부호였다. 별 모양 가로등 두 개를 지나 강 쪽으로 한 블록, 집으로 돌아오라는 뜻이었다.
하린은 재생 버튼에서 손을 뗐다. 통신실에 함께 있던 교대 당번이 무슨 뜻인지 물었지만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화면에는 실시간 수신이 아니라 지하철 유지망에서 옮겨 온 오래된 묶음 파일이라는 표시가 떠 있었다.
작은 학교 기술자가 물 교환에 쓸 중계 시간을 맞추다가 보관 신호를 발견했다. 파일은 여러 자동 점검음 사이에 끼어 있었고 생성 날짜도 장치 시계가 맞다는 전제에서만 믿을 수 있었다.
민세온은 소리를 듣자 하린의 얼굴부터 보지 않았다. 원본 저장 위치, 복사 과정, 장치 시각의 오차를 먼저 확인했다. 가족의 목소리라는 기대가 기술 기록을 사실보다 앞질러 가지 않게 하려는 태도였다.
강태민은 유지망 도면을 가져왔다. 송신 식별자는 동부 유지선 삼번 분기 중계기였고, 수신된 날짜는 봉쇄 나흘째로 표시돼 있었다. 그러나 중계기는 다른 곳의 신호를 받아 다시 보냈을 수도 있었다.
“목소리는 오빠가 맞아요?” 은별이 조용히 물었다.
하린은 세 번 들은 뒤 고개를 저었다. 음성은 변조와 잡음 때문에 구분할 수 없었다. 확인되는 것은 가족 확인 부호가 정확하다는 사실뿐이었다. 오빠가 직접 말했는지, 그 부호를 아는 다른 사람이 보냈는지 알 수 없었다.
정윤호는 지하철 재난망 배포표를 찾았다. 유지선 삼번 분기는 봉쇄 첫날 군 이동 제한선 안에 있었고, 나흘째부터 공식 접속 기록이 끊겼다. 정부 문건의 끊김이 사람의 사망을 뜻하지는 않았다.
오도혁은 지하 물류를 다니던 사람들이 가족 부호를 거래 표식으로 베끼기도 했다고 말했다. 하린이 날카롭게 쳐다보자 그는 자기가 그 문장을 들어 본 적은 없다고 덧붙였다. 가능성을 말하되 아는 척하지 않았다.
하린은 파일의 파형을 확대했다. 첫 여섯 음 앞에 아주 짧은 기계음이 있었고 뒤에는 자동 위치값이 붙었다. 현재 장비로 읽을 수 있는 것은 삼번 분기, 하부 전원실, 수신 강도 약함 정도였다.
태블릿이 모든 잠금을 풀어 주지는 않았다. 유지망 원본 서버는 연결이 끊겼고 공개 키도 일부만 남아 있었다. 하린은 읽히지 않는 영역을 복구한 척하지 않고, 원본 사본을 북서 중계소와 학교 통신실에 나눠 보냈다.
하린은 당장 삼번 분기로 가겠다고 말했다. 말이 끝나자마자 자기 배낭을 찾으려 했지만 태민이 길을 막지 않았다. 대신 현재 지상 분진, 유지선 전력, 환기와 퇴로가 모두 미확인이라는 목록을 읽었다.
“못 간다는 말이 아니야.” 태민이 말했다. “지금 들어가면 네가 찾을 수 있는 기록까지 같이 잃을 수 있다는 말이다.”
하린은 그것이 지휘자의 금지인지 물었다. 태민은 자기가 중단을 요구하는 확인자이며, 하린이 반론할 수 있다고 답했다. 가족을 찾는 사람을 어린애로 취급하지 않되 위험 기준을 생략하지 않았다.
세온은 자신이 가진 공업지대 로그를 떠올렸다. 마지막 신고가 저장됐다는 이유만으로 신고자가 살아 있거나 죽었다고 말할 수 없었다. 기록은 누군가 그때 무엇을 보냈다는 증거이고 그 이후의 삶은 별도 확인이었다.
“우리가 지금 확정할 수 있는 끝은 어디까지지?” 세온이 물었다.
하린은 이를 악문 채 화면을 읽었다. 가족 확인 부호 일치. 동부 유지선 삼번 분기 중계 기록. 장치 기준 봉쇄 나흘째. 발신자와 생존 상태 미확인. 그는 네 문장을 직접 원장에 썼다.
은별은 공개 방송에 가족 관계까지 말할지 하린에게 물었다. 부호를 널리 알리면 응답자가 나타날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이 그 문장을 흉내 내 하린을 끌어낼 수도 있었다.
하린은 부호 전체를 방송하지 않기로 했다. 공동 채널에는 유지선 삼번 분기의 과거 접속과 확인 요청, 응답할 때 원본에 없는 두 번째 확인값을 요구한다는 내용만 보냈다. 두 번째 값은 은별과 하린만 봉인해 보관했다.
박선묵은 지하 유지선 전원 일부가 공공 펌프와 연결돼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과거 시설 도면에서 본 기억이었다. 윤호의 문서에는 같은 연결이 없었다. 두 진술은 지도에 서로 다른 점선으로 남았다.
이재현은 유지선에 들어가기 전 환기와 누전부터 시험할 장비 목록을 만들었다. 학교에는 절연 장갑, 북서 급수장에는 공기 측정기가 있었다. 세 곳의 다음 물 교환 때 장비도 함께 모을 수 있었다.
하린은 그 준비가 자기 오빠를 찾는 일을 공동 자원으로 빼앗는 것 같아 불편하다고 말했다. 세온은 찾으러 갈지 말지의 선택은 하린에게 남지만, 다른 사람이 같은 위험에 들어가면 경로와 중단 기준은 함께 정해야 한다고 답했다.
오후 공개 회의에서 하린은 로그를 직접 설명했다. 목소리가 떨렸지만 가족 재회를 약속하는 말은 하지 않았다. 주민 한 명이 살아 있다는 신호 아니냐고 묻자, 하린은 “살아 있었을 가능성을 닫지 않는 기록”이라고 고쳤다.
차유리는 봉쇄 나흘째라는 시간이 맞아도 현재 상태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당시 부상, 노출, 이동 여부를 추정하지 않았다. 향후 응답자가 나타나도 목소리와 가족 부호 하나만으로 신원을 확정하지 않기로 했다.
그날 저녁 동부 유지선 쪽에서 짧은 잡음이 한 번 잡혔다. 통신실 사람들은 모두 하린을 봤다. 하린은 바로 송신하지 않고 주파수와 시작 시각, 반복 여부를 기록했다.
잡음은 다시 오지 않았다. 오래된 중계기의 자동 점검일 수도 있고, 누군가의 송신 끝일 수도 있었다. 하린은 화면 옆에 물음표를 붙였다. 지난 평범한 교대에서 익힌 그 작은 표시가 이번에는 견디기 어려울 만큼 컸다.
밤 교대 시간이 되자 하린은 자리를 넘기지 않으려 했다. 혹시 신호가 돌아오면 놓칠 수 있었다. 은별은 같은 원본과 확인 절차를 읽어 보인 뒤 교대를 요구했다. 한 사람의 가족이 걸린 일이라고 한 사람이 밤새 독점할 수는 없었다.
하린은 이어폰을 벗었다. 교대 당번에게 첫 확인값과 공개할 수 없는 두 번째 값의 봉인 위치를 알려 줬다. 응답이 오면 혼자 깨우지 말고 은별과 통신 당번을 함께 부르라고 했다.
잠자리로 가기 전 그는 지도 앞에 멈췄다. 안전지대와 북서 급수장, 작은 학교 사이에는 물길이 실선으로 이어져 있었다. 동부 유지선 삼번 분기에는 아직 점 하나만 있었다.
하린은 그 점을 집 모양이나 무덤 모양으로 그리지 않았다. 날짜와 위치를 쓰고 옆에 작은 물음표를 남겼다. 오빠를 포기한 표시도, 찾았다는 표시도 아니었다.
세온은 하린에게 위로가 될 결론을 건네지 않았다. 대신 유지선 사전 점검 명단을 내일 공개 회의에 올렸고, 하린에게 참여 여부를 다시 선택할 시간을 남겼다.
새벽 통신 기록에는 응답 없음이라고 적혔다. 그러나 가족 확인 부호는 세 곳의 사본에 보존됐고, 유지선으로 들어갈 준비는 한 사람의 충동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장비와 퇴로 점검으로 바뀌었다.
하린은 잠들기 전 은별에게 말했다. “찾은 게 아니라, 마지막으로 있었던 자리를 잃지 않은 거야.” 은별은 그 문장을 원장에 쓰지 않았다. 그것은 증거가 아니라 하린이 그 밤을 견디기 위해 고른 말이었기 때문이다.
동부 유지선의 물음표는 다음 날에도 지워지지 않았다. 도시가 연결되기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되찾은 것은 사람이 아니라, 언젠가 사람에게 닿을 수 있는 정확한 마지막 위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