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네 시 십 분, 강변 제방 아래 물이 신발 밑창까지 올라왔다. 밤새 강물이 불어난 것이 아니라 상류 수문에서 일정한 간격으로 물을 내보내는 것 같았다. 민세온은 젖은 원장을 무릎 위에 펴고 가장 먼저 사람 수를 다시 셌다.
민세온, 강태민, 하린, 정윤호, 오도혁. 눈앞에는 다섯 명이었다. 그러나 처치실을 나설 때 세온이 쥔 큰 원장 첫 줄에는 ‘이동조 열두 명’이라고 적혀 있었다. 둘 중 하나가 틀린 것이 아니라면, 다섯이 전부처럼 움직인 지금의 기록 방식이 틀린 것이었다.
초기 아홉 명 가운데 최병호의 이름은 지워진 것이 아니었다. 전날 오전 여덟 시 오십이 분 의료담당 권수진에게 상태표와 함께 인계됐고, 아홉 시 팔 분 서북 임시진료소 도착까지 확인된 행이 별도 의료 원장에 남아 있었다. 지금의 열두 명은 그 안전 인계와 신규 네 명의 합류를 모두 반영한 현재 인원이었다.
“우리는 선발 정찰대 다섯 명입니다.”
세온은 젖은 종이 위에 새 제목을 썼다. 선발 정찰대 다섯 명. 그 아래에는 후속조와 병동 임무 일곱 명이라고 썼다. 강변의 다섯이 이동조 전체가 아니라 먼저 길을 확인하러 나온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말로만 두지 않았다.
일곱 이름도 차례로 적었다. 차유리는 병동 의료 책임, 박미숙과 48번 환자 박무성은 이동 보조가 필요한 환자였다. 이재현, 조성우, 최인서는 후속 들것과 물자 운반을 맡았다. 끝에는 아직 이름 공개를 원하지 않은 여성을 ‘본인 확인 여성’이라고 적고, 본인이 다른 표기를 고르면 즉시 바꾸기로 했다.
하린이 원장을 내려다봤다. “병원을 나올 때는 유리 씨랑 박미숙 씨만 남은 것처럼 셌어요.”
“현장용 명단에 앞줄만 옮긴 겁니다.” 세온이 답했다. “그게 사람을 없앤 결과가 됐어요. 뒤 임무를 같이 말하지 않으면 다섯이 열둘을 대신하게 됩니다.”
첫 안전지대 문턱에서 후발조가 다시 병동으로 돌아간 과정도 적었다. 박선묵이 환자 평가자와 수용 기준을 밝히지 않았고, 도혁이 환자 숫자를 보내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세온은 진입을 멈췄다. 선발과 후발은 병동에 재집결해 환자 릴레이를 새로 꾸렸다.
열두 명은 그때 생긴 이동 원장이었다. 다섯은 수로와 거점 길을 확인하고, 일곱은 환자 상태와 후속 운반을 유지한다. 앞선 사람들이 목적지에 닿으면 뒤의 사람들이 따라 나오는 구조였다. 앞줄만 움직여도 뒤 임무가 끊기지 않는다는 전제였다.
태민이 오도혁 앞에 섰다. “자면서 이쪽은 닫혔다고 했지. 무엇이 닫혔나.”
도혁은 강물 쪽을 보다가 배낭에서 작은 무전 송신기를 꺼냈다. 병원에서 이어폰으로 듣던 장치였다. 박선묵 물류망의 남쪽 출입 채널이 막혔다는 뜻이었다고 말했다. 선묵은 첫 게이트 협상이 깨진 뒤 그 채널을 닫고 북쪽 수로만 열어 두었다.
“왜 우리한테 말하지 않았습니까?” 세온이 물었다.
“북쪽 길을 내가 안내하면 자리는 남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도혁은 변명 없이 말했다. “처음 연락할 때 움직일 수 있는 여섯만 보고했어요. 환자 셋은 뺐고, 나중에는 박선묵한테 선발 다섯이 수로로 간다고 보냈습니다.”
태민의 손이 도혁 옷깃 쪽으로 움직였다가 멈췄다. 하린이 두 사람 사이에 서지 않았다. 대신 도혁이 내놓은 송신기의 일련표를 원장에 적었다. 말보다 물건을 먼저 공동 기록 안에 넣었다.
“당신이 사람 수를 바꿔 보냈기 때문에 문이 환자보다 먼저 닫혔습니다.” 세온이 말했다. “지금부터 이 장치는 혼자 쓰지 않습니다. 길을 아는 책임은 길을 공개하는 데 쓰세요.”
도혁은 송신기를 세온에게 건네지 않았다. 하린 앞 바닥에 내려놓았다. 하린이 배터리와 저장 채널을 확인하되 지우거나 새로 접속하지 않았다. 송신 기록을 먼저 종이에 옮기고 태민이 함께 보도록 화면을 돌렸다.
그때 물이 종이 끝을 적셨다. 상류 쪽에서 낮은 굉음이 한 번 더 났고, 사면 아래 고인 물이 손가락 한 마디만큼 높아졌다. 다섯 사람은 말다툼을 멈추고 배낭을 들었다. 태민은 삼십 미터 위 펌프 점검교를 가리켰다.
점검교로 가는 길은 좁았다. 도혁이 앞장서려 하자 태민이 지도와 실제 표식을 함께 확인한 뒤에만 방향을 맡겼다. 도혁은 오른쪽 사면의 낡은 사다리를 짚었고, 하린은 녹슨 발판을 하나씩 두드려 하중을 확인했다. 윤호는 마지막에 올라오며 원장 방수 주머니를 품에 넣었다.
중간 발판 하나가 떨어져 나갔다. 최하단에 있던 도혁의 발이 허공으로 빠졌고 태민이 손목을 잡았다. 세온과 윤호가 사다리를 벽 쪽으로 눌렀다. 도혁은 매달린 채 왼발을 다시 걸고 올라왔다. 누구도 그를 놓아 책임을 물으려 하지 않았다.
점검교 위에 도착하자 하린은 송신기를 열었다. 저장 채널에는 남동쪽 안전지대 호출과 북서쪽 미확인 신호가 따로 있었다. 그는 두 채널을 합치지 않고 병동에 약속했던 짧은 세 번, 긴 한 번 신호를 먼저 보냈다.
“선발 도착, 조건 미확정.” 하린이 말했다. “그리고 열두 명 원장을 유지한다는 뜻으로 호출 숫자도 붙일게요.”
세온은 반대하지 않았다. 선발 다섯의 좌표, 후속 일곱의 마지막 위치, 수로 수위 상승, 도혁의 단독 연락 중단을 짧게 보냈다. 누구나 들을 수 있는 채널이라 상세 환자 정보와 숨은 경로는 넣지 않았다.
응답은 바로 오지 않았다. 하린은 신호가 닿았다고 단정하지 않았다. 송신 시각과 출력, 사용 채널을 적고 십 분 뒤 한 번만 반복하기로 했다. 배터리를 모두 써 버리면 두 번째 기회가 없었다.
윤호는 자기 배낭에서 별첨 B의 첨부 도면을 꺼냈다. 그동안 존재만 인정하고 보여 주지 않았던 종이였다. 도면에는 펌프 점검교와 북서 통신 중계소, 박선묵 거점으로 이어지는 남동 물류선이 함께 그려져 있었다.
“나도 권한을 쥐고 시간을 골랐습니다.” 윤호가 말했다. “도면이 틀릴까 봐서가 아니라, 이걸 내놓으면 내가 관여한 선별 계획까지 드러날까 봐 미뤘어요.”
세온은 도면을 빼앗지 않았다. 다섯 사람이 보는 바닥에 펼치게 했다. 하린은 현재 물길과 표식을 겹쳐 보고, 태민은 통과 가능한 구간을 표시했다. 도혁은 박선묵이 닫은 문과 아직 쓰는 창고를 다른 색으로 그렸다.
십 분 뒤 무전기에서 짧은 잡음이 왔다. 사람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세 번 짧고 한 번 긴 간격이었다. 하린은 손을 들며 모두를 조용히 시켰다. 같은 간격이 한 번 더 반복됐다.
“누가 들은 건 맞을 가능성이 커요. 병동인지 다른 중계인지 아직 몰라요.”
세온은 ‘일곱 명 응답’이라고 쓰지 않았다. ‘약속 신호 수신, 발신 주체 미확인’이라고 적었다. 확인되지 않은 희망도 사실인 것처럼 부풀리지 않았다.
다섯은 점검교에서 동이 틀 때까지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도면상 가장 가까운 중계 지점까지 이동해 병동 채널을 다시 열고, 후속 일곱의 위치를 확인한다. 도혁은 앞에서 길을 제시하되 태민과 하린이 각각 물리 표식과 신호로 검증하기로 했다.
출발 직전 윤호가 아래 사면에 꽂힌 수위 표식을 발견했다. 마지막 눈금보다 물이 빠르게 오르고 있어 돌아올 길이 먼저 잠길 수 있었다. 태민은 도혁이 가리킨 지름길만 믿지 않고 점검교 기둥에 붉은 천을 두 군데 묶었다. 하린은 그 좌표와 현재 수위를 병동 호출에 덧붙였고, 세온은 십오 분마다 회항 여부를 다섯이 함께 확인한다고 원장에 썼다.
도혁은 자기가 아는 길이면 충분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수문이 한 번 더 열리면 남쪽 사다리는 쓸 수 없고 북쪽 배관로로 돌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윤호의 도면에는 없던 사실이라 ‘도혁 진술, 현장 미확인’이라고 표시했다. 길을 공개한다는 것은 정답을 내놓는 일이 아니라 틀릴 수 있는 부분까지 남기는 일이었다.
떠나기 전 세온은 원장을 소리 내 읽었다. 다섯 이름 뒤에 일곱 이름이 이어졌다. 대답이 없는 사람도 임무와 마지막 확인 시각으로 연결됐다. 그들은 앞에 없다고 사라진 사람들이 아니었다.
강물이 발밑에서 계속 불어났다. 그러나 열두 명 원장은 더는 물에 번진 숫자가 아니었다. 누가 앞에 있고 누가 뒤를 지키는지, 누구의 침묵이 문을 닫았는지까지 적힌 첫 지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