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완전히 넘어가는 데는 두 시간이 더 걸렸다. 강변 제방 아래 콘크리트 사면에 등을 기댄 채, 이동조 다섯 명은 각자 자기 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세온은 장화를 다시 신고 나서도 젖은 양말 안쪽의 냉기가 가시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 그냥 내버려 뒀다. 지금 당장 양말을 바꿀 여유가 없었다. 아니, 여유라는 단어 자체가 어울리지 않는 상황이었다.
강물 소리가 제방 너머에서 낮게 흘렀다. 물 냄새가 섞인 바람이 사면을 타고 내려왔는데, 그 안에 뭔가 썩은 것의 기운이 희미하게 섞여 있었다. 세온은 코를 막지 않았다. 막아봤자 달라지는 건 없었다. 하린이 무릎을 끌어안은 채 발끝을 내려다보고 있었고, 태민은 팔짱을 낀 채 제방 위쪽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아무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 침묵이 오히려 무거웠다.
도혁이 배낭 옆 주머니를 열면서 분위기가 처음으로 흔들렸다. 손이 닿은 건 에너지바 두 개와 구겨진 과자 봉지 하나였다. 그가 아무 말 없이 그것들을 무릎 위에 올려놓자 태민이 시선을 고정했다. 세온도 봤다. 윤호는 눈을 들지 않았다.
"다섯이서 저걸 어떻게 나눠요."
하린이 먼저 말했다. 목소리에 감정이 없었다. 그냥 사실을 말한 것처럼 들렸지만, 그 말이 공기를 바꿨다. 도혁은 과자 봉지를 들어 흔들었다. 쩔그럭 소리가 났다. 반쯤 남아 있었다.
"반씩 쪼개면 되지. 사람이 죽는 양은 아니야."
"에너지바는요."
"두 개는 오늘 밤 당직 서는 사람 거야. 나머지는 내일 아침."
태민이 그 말에 고개를 돌렸다. 정확히 도혁의 얼굴 쪽으로.
"당직 배정을 네가 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도혁은 태민을 봤다가 세온을 봤다. 세온은 그 시선을 받으면서 배낭을 열었다. 자기 배낭 안에 남은 게 뭔지 확인하는 척하면서 잠깐 시간을 벌었다. 압축 비스킷 두 봉지, 1리터 생수 하나 반. 유리가 나눠준 거즈 예비분. 세온이 꺼낼 수 있는 건 비스킷이었다.
"오늘 밤은 2인 1조로 두 시간씩. 나랑 하린이 먼저, 태민이랑 윤호 씨 다음. 도혁 씨는 지금 두 시간 자요. 배낭 내용물은 내가 정리할 테니 먹을 거 전부 꺼내놔요, 각자."
침묵이 짧게 왔다. 그리고 도혁이 웃었다. 피곤한 웃음이었다.
"그렇게 합시다."
그 말 한 마디가 동의인지 체념인지 세온은 구분하지 않기로 했다.
식량은 비스킷 네 봉지, 에너지바 두 개, 과자 반 봉지, 물 3리터 조금 못 됐다. 하린이 스마트폰 계산기를 열어 칼로리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세온은 그 모습을 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린이 그걸 해낸다면 말을 보태는 것보다 그냥 두는 쪽이 나았다. 윤호는 자기 배낭에서 물 500밀리리터 두 개를 꺼냈다. 그게 전부였다. 식량이 없었다. 세온은 그 사실을 메모하지 않았다. 대신 윤호가 배낭을 닫는 손 모양을 눈으로 따라갔다. 두꺼운 면 소재 파우치가 배낭 안쪽 깊이 들어간 게 보였다. 도면은 거기 있었다.
"윤호 씨."
세온이 부르자 윤호가 손을 멈췄다.
"별첨 B에 분기 두 개가 있다고 했잖아요. 북쪽이 군 검문소, 남쪽이 민간. 거리 추정이 도면에 있어요?"
윤호가 잠깐 숨을 참는 것 같았다. 그러다 말했다.
"도면을 꺼내기 전에 먼저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요."
세온이 기다렸다.
"군 검문소가 지금도 운영 중인지. 도면이 몇 달 전 문건이라면 루트 자체가 바뀌었을 수 있거든요. 틀린 지도를 들고 가는 것보다 없이 가는 게 나을 때가 있어요."
태민이 끼어들었다.
"그게 꺼내지 않는 이유가 돼요?"
목소리가 낮았다. 낮을수록 더 날이 서 있다는 걸 세온은 알고 있었다. 윤호가 태민을 봤다. 두 사람의 시선이 부딪혔다가 갈라졌다.
"저는 지금 판단하고 있는 거예요. 드리지 않겠다는 게 아니라."
세온이 손을 들어 태민 쪽을 막았다. 막는 동작이 아니라 일단 멈추자는 신호였다. 태민은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표정은 다물지 않았다.
도혁이 먼저 누웠다. 배낭을 베개처럼 받치고, 팔을 이마 위에 얹은 채 눈을 감았다. 너무 자연스러운 동작이라 오히려 이상했다. 세온은 그 자연스러움이 이 사람이 야외에서 잠을 자는 게 익숙하다는 뜻이라는 걸 알면서도, 어느 상황에서 익숙해진 건지가 걸렸다. 훈련인지, 도주인지, 아니면 그 둘 다인지.
하린이 계산기 화면을 뒤집어 보여줬다.
"지금 상태로는 오늘 하루치도 안 돼요. 한 끼 기준으로 나누면 내일 저녁 전에 바닥나요."
세온이 짧게 말했다.
"알아."
하린이 스마트폰을 닫았다. 그 소리가 유난히 작게 들렸다.
밤이 내려앉는 속도는 생각보다 빨랐다. 세온과 하린은 제방 위쪽에 자리를 잡고 교대로 사면 아래를 내려다봤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었지만 계속 봐야 했다.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한 번 났다가 끊겼다. 그 뒤로는 강물 소리만 남았다. 하린이 무릎을 세우고 팔을 그 위에 얹었다.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았다. 세온은 그 옆에서 어둠을 보면서, 이 아이가 언제부터 이렇게 됐는지를 생각했다. 처음 만났을 때 하린은 손이 떨렸다. 지금은 떨지 않았다.
자정이 넘어서였다. 하린이 세온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속삭였다.
"저 사람, 아까 뭐라고 했어요."
세온이 고개를 돌렸다.
"도혁 씨요?"
하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 전에 혼잣말로. 잘 못 들었는데... '이쪽은 닫혔는데'라고 한 것 같아요.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어서." 세온은 잠시 그 말을 머릿속에서 돌렸다. 이쪽은 닫혔는데. 루트를 말하는 건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를 말하는 건지. 자다가 중얼거린 말이라면 흘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도혁이 잠들기 전에 한 말이라면, 그건 반쯤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나온 말이었다. "기억해 둬." 세온이 말했다. 하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더 묻지 않았다.
태민과 교대하고 나서 세온은 배낭에 등을 기댄 채 눈을 감으려 했다. 잠이 오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도혁의 말이 계속 맴돌았다. 이쪽은 닫혔는데. 닫혀 있다는 걸 안다면, 열려 있는 쪽도 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걸 아직 말하지 않았다는 건, 아직 꺼낼 때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누가 그 판단을 허락했는지는 별개의 문제였다.
강물 소리는 밤새 같은 높이로 흘렀다. 달이 없는 하늘이었다. 세온은 그 어둠을 올려다보다가 눈을 감았다. 내일 도혁이 먼저 말을 꺼낼지, 아니면 자신이 먼저 물어야 할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 정하기 전에 하린이 들은 그 말의 뜻을 좀 더 생각해 봐야 했다. 닫혔다는 건 누가 닫았다는 건지, 아니면 원래부터 없었다는 건지. 그 차이가 이동조의 다음 방향을 통째로 바꿀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차이를 도혁이 알고 있다면, 그가 침묵을 선택하는 이유도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