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 정전은 오후 네 시 십칠 분에 시작됐다. 로비 화면이 꺼지고 엘리베이터가 층 사이에 멈췄다. 서버실 비상등은 켜졌지만 냉각 장치 일부가 작동하지 않았다.
윤해진은 가장 먼저 시설 안전 책임자에게 지휘권을 넘겼다. 감사팀이 원인을 조사하기 전에 사람을 대피시키는 일이 먼저였다. 한이겸도 현장 판단에 끼어들지 않았다.
비상 방송은 처음 삼 분 동안 나오지 않았다. 외주 전환 과정에서 방송 시스템 담당자가 누구인지 인계표가 비어 있었다. 시설 직원이 수동 방송을 켜 층별 대피를 안내했다.
엘리베이터 두 대에 여섯 명이 갇혀 있었다. 구조대가 도착할 때까지 통신을 유지하고 건강 상태를 확인했다. 누구도 서버실 자료를 먼저 구하러 가지 않았다.
민가온은 원격으로 서버를 안전 종료했다. 이전 중인 파일은 복제 상태였고 원본은 독립 센터에 있었지만, 냉각 중단이 장비 화재로 이어질 수 있었다. 데이터 무결성보다 사람과 시설 안전을 우선했다.
서다온은 건물 밖 임시 지휘소에서 출입 명단을 확인했다. 퇴직 예정자와 외주 인력이 섞여 있어 최신 명단이 맞지 않았다. 부서별 확인과 실제 출입 기록을 대조했다.
한 청소 노동자의 이름이 직원 명단에 없었다. 외주 업체는 그가 이미 나갔다고 했지만 출입 기록은 건물 안을 가리켰다. 시설팀이 층을 다시 확인해 계단실에서 그를 찾았다.
그는 비상 방송을 듣지 못하고 물품 창고를 정리하고 있었다. 외주 전환 뒤 개인 호출기가 지급되지 않았고 교육도 받지 못했다. 대피 누락은 한 사람의 실수가 아니라 인계 실패였다.
모든 사람이 건물 밖에 나온 뒤에야 원인 조사가 시작됐다. 전원 철거 업체가 비사용 배전반을 끄는 작업 중 본사 공통 전원을 잘못 차단했다. 도면에는 두 회선이 분리돼 있다고 표시돼 있었다.
실제 배선은 과거 증축 때 하나로 묶였지만 수정 도면이 시설팀 개인 서랍에만 있었다. 담당자는 직무 종료 뒤 떠났고 인계 파일에는 구형 도면이 남았다.
이겸은 누군가 서버 자료를 없애려 정전을 만들었는지 묻지 않았다. 접근 로그와 작업 지시에는 고의 흔적이 없었다. 안전 인계 실패만으로 충분히 심각했다.
철거 업체는 본사 시설팀이 승인한 작업이라고 했다. 시설팀은 업체가 실제 회선을 시험했어야 한다고 반박했다. 계약과 작업허가서를 대조하니 양쪽 확인 칸이 모두 형식적으로 서명돼 있었다.
해진은 책임을 한쪽에 몰지 않았다. 본사는 최신 도면을 제공하지 않았고, 업체는 차단 전 전압 시험을 생략했으며, 해산 관리인은 서버 이전과 전원 철거 일정을 겹치게 했다.
해산 관리인은 일정이 늦어져 작업을 병행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가 받는 성과급에는 건물 반환 기한이 포함돼 있었지만 안전 인계 지표는 없었다.
다온은 작업 중지와 계약 재검토를 권고했다. 건물 반환이 늦어질 임대 비용은 들지만 최신 도면과 인력 확인 없이는 전원 철거를 재개할 수 없었다.
이사회는 정전이 짧았고 부상자가 없으니 과도하다고 했다. 해진은 청소 노동자가 누락됐고 엘리베이터에 사람이 갇혔다는 사실을 읽었다. 피해가 작았던 것은 구조가 빨랐기 때문이지 절차가 안전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갇혔던 직원 중 한 명은 공황 증상을 호소했다. 회사는 병원 방문과 유급 휴식을 제공했다. 조사 면담은 회복 뒤 본인이 원하는 방식으로만 진행했다.
외주 청소 노동자에게도 같은 지원이 적용됐다. 계약상 다른 회사 직원이라는 이유로 제외하지 않았다. 건물 안전 책임은 고용 형태에 따라 달라지지 않았다.
가온은 서버 이전 무결성을 확인했다. 전송 중단 파일 네 건은 자동 복구됐고 해시값이 맞았다. 그는 그 결과를 안전 사고의 무해함을 증명하는 자료로 쓰지 않았다.
서버는 살았지만 사람은 위험했다. 기술 복구 성공과 대피 실패를 같은 완료 보고서에 섞지 않았다.
시설팀은 전체 배선 현황을 다시 조사했다. 퇴직자에게 비공식 전화로 묻지 않고 현장 측정과 외부 기술 검증으로 최신 도면을 만들었다. 떠난 사람의 기억에 안전을 맡기지 않았다.
직원 대표는 모든 외주 인력을 포함한 출입·대피 명단을 매일 갱신하라고 요구했다. 개인정보는 비상 연락 목적에 한해 보관하고 건물 철수 뒤 삭제했다.
해진은 전원 철거와 서버 이전, 엘리베이터 운영의 일정표를 한 화면에 합쳤다. 하나의 작업이 다른 안전 설비에 미치는 영향을 공동 승인 없이 진행할 수 없게 했다.
해산 관리인의 성과급 산식도 바뀌었다. 반환 기한만 맞추면 받는 보상에서 안전 인계와 사고 시정 완료를 함께 보게 했다. 정전을 비용으로만 줄이려는 유인을 고쳤다.
철거 업체는 작업자 교육과 회선 시험을 다시 실시했다. 본사 시설 담당과 외부 안전자가 동시에 확인한 뒤에만 차단 권한이 열렸다.
재개일에는 해진이 현장 책임자가 아니었다. 전문 안전관리자가 지휘하고 해진은 감사 관찰자로 기록만 했다. 조사자가 작업을 통제하는 사람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첫 회선 차단 전 모든 엘리베이터는 대피층에 멈췄고, 서버는 임시 전원으로 옮겨졌다. 외주 인력까지 인원 확인이 끝난 뒤 시험이 시작됐다.
전원은 계획대로 꺼졌다가 켜졌다. 아무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다. 직원들은 박수치지 않았다. 정상 작업은 영웅적 장면이 아니라 지켜야 할 기준이었다.
이겸은 첫 정전 당시 어두워진 복도에서 주차장을 떠올리지 않았다. 과거의 죽음과 연결하면 또 다른 음모를 찾고 싶어질 수 있었다. 현재 도면과 작업허가서만으로 책임은 충분히 보였다.
해진은 사고 보고서 제목을 ‘본사 정전 및 안전 인계 실패’로 정했다. 서버 무결성 회복보다 대피 방송, 명단, 배선 도면, 일정 충돌을 앞에 놓았다.
갇혔던 직원은 면담 대신 서면 의견을 냈다. “누가 일부러 그랬는지보다 다시 갇히지 않게 해 달라.” 팀은 그 문장을 홍보하지 않고 시정 항목으로 바꿨다.
본사 건물 반환은 열흘 늦어졌다. 임대 비용과 서버 임시 전원 비용이 공개됐다. 안전을 선택한 비용을 감추지 않았고 직원 임금이나 협력사 지급에서 빼지 않았다.
사흘 뒤 같은 시간대에 대피 훈련을 다시 했다. 청소 노동자와 회선 기사까지 출입 명단에 올렸고, 각 층 확인자는 빈 화장실과 창고 문을 직접 열어 확인했다. 이번에는 마지막 사람이 로비에 도착할 때까지 누구도 완료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휠체어를 쓰는 계약 직원은 정전 때 비상 승강 설비 위치를 몰랐다고 말했다. 시설팀은 피난 의자와 배터리 조명을 설치하고 두 교대가 실제 이동을 연습했다. 그의 동선을 다른 사람이 대신 정하지 않고 당사자가 가장 안전한 경로를 골랐다.
외주 전기반장은 원청 확인 없이 차단기를 내리지 않겠다는 작업중지권을 계약 부속서에 넣었다. 지연 책임을 혼자 뒤집어쓸까 두려워했던 그는 공동 서명이 없으면 작업을 시작하지 않았다. 다음 철거에서는 급한 전화 한 통이 현장 명령으로 바뀌지 않았다.
갇혔던 직원은 재훈련 날 비상 계단 확인자로 참여했다. 그는 사고를 떠올리게 하는 역할을 강요받지 않았고, 자기가 원한 구역만 살폈다. 훈련 종료 뒤 명단에 자기 이름과 퇴실 시간이 함께 찍힌 것을 보고서야 굳었던 손을 폈다.
마지막 전원 철거 일정표에는 사람 대피, 서버 종료, 엘리베이터 정지, 회선 시험, 외주 확인이 순서대로 적혔다. 어느 한 칸도 ‘담당자 알아서’로 남지 않았다.
본사 정전은 비밀 공격의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대신 급한 해산과 외주 전환 사이에서 안전 책임이 어떻게 빠졌는지를 드러냈다. 팀은 어둠 속 범인을 찾는 대신 불이 다시 꺼져도 누구 하나 명단 밖에 남지 않을 절차를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