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해파트너스가 수정 입찰서와 함께 사업장 폐쇄 순위를 제출했다. 전국 아홉 사업장 중 세 곳을 인수 뒤 삼 년 안에 정리하면 수익성이 회복된다는 점수표였다. 각 공장 옆에는 붉은 숫자가 붙어 있었다.
민가온은 가장 낮은 점수를 받은 동해 공장을 봤다. 생산량, 인건비, 물류 거리, 설비 연식이 입력돼 있었다. 지역 고용과 협력사 의존도, 이전 비용은 계산에서 빠져 있었다.
펀드 측 분석가는 투자자 관점의 운영 효율 모델이라고 설명했다. 지역 정책 비용은 회사가 통제할 수 없고 정확한 자료도 부족해 제외했다고 했다. 빈칸은 영으로 처리돼 있었다.
가온은 모르는 값을 영으로 놓으면 존재하지 않는 비용이 된다고 지적했다. 지역에서 가장 큰 고용주인 공장을 닫을 경우 협력사와 상권, 재취업 기간이 모두 손실인데 점수표에는 한 줄도 없었다.
한이겸은 가온에게 대체 점수표를 만들 수 있느냐고 물었다. 가온은 바로 계산하지 않았다. 자기 모델이 더 인간적이라는 이유로 또 다른 해고 순위를 만들 수 있었다.
윤해진은 폐쇄 후보 직원들에게 데이터 확인권을 주자고 했다. 사업장별 근태·생산성 자료에 오류가 있으면 그곳 사람들이 먼저 이의를 낼 수 있어야 했다. 펀드는 영업 비밀을 이유로 난색을 보였다.
서다온은 입찰 평가에 사용된 핵심 가정과 결과는 고용 조건의 일부라고 보았다. 개인 성과가 아니라 사업장 집계이므로 검증본 공개가 가능하다는 의견을 냈다.
가온은 계산식을 공개하되 원자료의 거래처 이름과 직원 식별 정보는 가렸다. 누구나 숫자를 바꿔 볼 수 있는 표와 자료 한계를 함께 제공했다.
동해 공장 직원들은 설비 연식이 잘못됐다고 이의를 냈다. 주요 생산라인은 최근 교체됐지만 건물 준공연도를 설비 나이로 쓴 것이었다. 점수는 즉시 올라갔다.
남부 물류센터는 운송 거리가 과대 계산됐다. 본사 등록 주소와 실제 출고 지점을 혼동한 오류였다. 펀드 측은 외부 데이터의 한계라고 해명했다.
가온은 오류를 고친 뒤에도 순위를 발표하지 않았다. 수정할수록 다른 사업장이 아래로 내려갈 뿐, 누군가는 항상 꼴찌가 됐다. 상대 순위가 폐쇄의 충분한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됐다.
그는 절대 기준을 제안했다. 현금 손실 규모, 개선 투자 가능성, 대체 고용 계획, 지역 비용, 협력사 채권 영향이 최소 조건을 넘는지 각각 보게 했다. 하나의 합산 점수가 모든 선택을 대신하지 못하게 했다.
펀드 측은 다기준 평가가 결정을 어렵게 만든다고 반발했다. 가온은 어려운 결정을 숫자 하나로 숨기는 것이 더 위험하다고 답했다. 가중치를 누가 정하는지도 정치적 선택이었다.
직원 대표는 노동자에게 유리한 가중치를 쓰자고 요구했다. 가온은 직원 대표·인수 후보·지역 전문가·채권자 대표가 각각 제안하고 차이를 공개하자고 했다. 합의되지 않은 가치 판단을 객관 점수처럼 포장하지 않았다.
첫 공개 토론에서 펀드는 수익성에 절반의 가중치를 줬다. 직원 대표는 고용에 절반을 줬고, 협력사 대표는 납품망 연속성을 가장 높게 봤다. 같은 자료로 세 개의 다른 순위가 나왔다.
가온은 세 순위를 대형 화면에 동시에 띄웠다. 한 공장이 첫 표에서는 폐쇄 1순위, 둘째에서는 개선 3순위, 셋째에서는 공급망 핵심으로 나타났다. 숫자가 바뀐 것이 아니라 중요하다고 고른 가치가 달랐다.
그는 참석자에게 자기 가중치를 익명으로 입력해 보게 했다. 결과는 수십 가지였고 단 하나의 공통 꼴찌도 없었다. 모델이 이미 정답을 알고 있다는 인상은 그 자리에서 무너졌다.
한 공장장이 가온에게 어느 순위가 맞느냐고 물었다. 그는 모두 입력한 가치에 따라 맞고, 그래서 어느 것도 진실 그 자체가 아니라고 답했다. 최종 선택자는 가중치와 손실을 공개해야 했다.
지역 대학 연구진은 공장 폐쇄의 지역 비용을 추정했다. 실업 기간, 지방세 감소, 협력사 도산 가능성, 재교육 비용을 범위로 제시했다. 불확실성은 넓었지만 영보다 현실적이었다.
북해파트너스는 회사가 부담하지 않는 사회 비용까지 넣으면 모든 폐쇄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겸은 비용을 본다고 반드시 회사가 전액 부담하는 것은 아니지만, 존재하지 않는 척 결정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다온은 계약에 지역 전환 기금을 넣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폐쇄가 불가피할 때 인수자가 일정 금액을 부담하고 지방자치단체·직원 대표와 대체 사업 계획을 만들게 한다.
펀드는 인수 가격을 낮추는 조건으로 수용 가능하다고 했다. 재무 담당자는 또 가격이 줄어든다고 우려했다. 직원 대표는 가격과 사람이 잃는 비용을 같은 표에 놓으라고 했다.
가온은 사업장별 개선 시나리오도 계산했다. 설비 투자, 교대조 조정, 물류 통합으로 폐쇄 없이 손실을 줄일 수 있는 경우가 두 곳 있었다. 초기 비용은 들지만 장기 합계는 폐쇄와 비슷했다.
동해 공장은 지역 기업과 공동 생산을 제안했다. 폐쇄 점수표에 없던 매출 가능성이 생겼다. 모델은 과거 데이터만 보고 새로운 계약 가능성을 영으로 두고 있었다.
가온은 낙관적 가능성을 그대로 수익으로 넣지 않았다. 계약 의향서, 자금 조달, 실행 기한을 확인하고 조건부 시나리오로 분리했다. 희망도 숫자처럼 검증받아야 했다.
남부 물류센터는 일부 기능을 다른 사업장과 통합하되 직원 전환 배치를 제안했다. 통근 거리와 돌봄 부담을 조사하자 전환이 사실상 퇴사를 강요할 수 있는 직원들이 있었다.
해진은 전환 동의와 지원을 고용 유지 숫자에 포함하자고 했다. 명부상 해고가 없다고 실제 일자리가 유지되는 것은 아니었다. 이사 비용과 유연 근무, 거부 시 보상도 계약 조건이 됐다.
펀드 측 분석가는 모델 목적이 예비 위험 식별이었다고 한발 물러섰다. 폐쇄 결정이 아니라 질문을 정하는 도구로 쓰겠다고 했다. 가온은 화면 제목을 ‘폐쇄 순위’에서 ‘추가 실사 필요 항목’으로 바꾸게 했다.
가온의 점수표도 독립 감사 대상이 됐다. 지역 비용 추정에 사용한 표본이 대도시 중심이라 농촌 공장의 재취업 기간을 낮게 잡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는 즉시 범위를 수정하고 오류를 공개했다.
자기 모델의 따뜻함을 자랑할 수 없었다. 빠진 사람을 넣으려 만든 계산에도 또 다른 사람이 빠질 수 있었다. 가온은 점수마다 자료 공백과 이의 상태를 표시했다.
최종 입찰 평가에서는 사업장 폐쇄 순위가 점수로 직접 사용되지 않았다. 후보가 각 사업장의 개선·통합·폐쇄 시나리오와 비용 부담 계획을 제출하고, 독립 위원이 조건 충족 여부를 판단했다.
북해파트너스는 세 곳 폐쇄안을 한 곳 개선, 한 곳 조건부 통합, 한 곳 재검토로 바꿨다. 완전한 고용 보장은 아니었지만 처음의 붉은 숫자 세 개가 자동 결론이 되는 일은 막혔다.
공장 직원들은 여전히 불안했다. 가온은 모델을 고쳤으니 안심하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자료와 선택권이 늘었을 뿐 폐쇄 위험이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이겸은 가온에게 숫자가 사람을 살릴 수 있느냐고 물었다. 가온은 “숫자가 자르는 척하지 못하게 할 수는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결정하는 사람의 가치와 비용을 표 밖에 숨기지 않는 것이 분석의 역할이었다.
수정 점수표의 마지막 열에는 ‘결정 아님’이라는 문구가 붙었다. 사업장 폐쇄 순위는 질문 목록으로 바뀌었고, 지역 비용과 직원 선택은 계약 본문으로 들어갔다.
가온은 서버에서 옛 순위를 삭제하지 않고 오류 이력으로 보존했다. 사람을 자를 뻔한 숫자가 어떤 가정을 빼고 있었는지 다음 분석자가 읽게 했다. 더 정교한 점수보다, 점수가 결정권자인 척하지 못하는 구조가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