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성지주의 인수 공고는 오전 장이 열리기 전 게시됐다. 계열사 여섯 곳을 세 묶음으로 나누어 공개 매각하고, 지주사는 남은 채무와 공통 기능을 정리한 뒤 해산 가능성을 검토한다는 내용이었다.
공고 부속에는 분할 절차의 순서도 실렸다. 후보 접수, 공통 실사, 계열사별 조건 심사, 책임 승계, 주식 이전이 차례로 적혀 있었다. 어느 단계에서도 남은 지주 책임을 새 회사에 몰래 넘길 수 없게 했다.
본사 로비 화면에 공고가 뜨자 직원들이 멈춰 섰다. 누군가는 주가를 확인했고 누군가는 퇴직금 지급 순서를 검색했다. 판결과 외부 조사 때와 다른 종류의 침묵이었다. 범죄 책임이 아니라 다음 달의 일자리를 묻는 침묵이었다.
윤해진은 긴급 회의를 열었다. 회의 진행은 기존 공동 규칙대로였고 한이겸도 한 표를 가진 조사자 자리에 앉았다. 직원 대표와 협력사 대표, 독립 기록센터가 처음부터 참여했다.
재무 담당자는 공개 매각이 늦어지면 두 계열사의 운전자금이 석 달 안에 부족해진다고 보고했다. 서두를 이유는 분명했지만, 빨리 팔기 위해 고용과 기록을 부속 조건으로 미룰 수도 있었다.
첫 인수 의향서는 북해파트너스라는 사모펀드에서 왔다. 가장 높은 예비 가격과 전 계열사 통합 인수를 제안했다. 조건 목록 끝에는 ‘과거 규제·감사 리스크의 완전 평가를 위한 모든 기록 접근권’이 있었다.
민가온은 ‘모든 기록’이라는 표현에 표시했다. 사건 원본, 제보 진술, 개인 메일 격리 자료까지 포함될 수 있었다. 자산을 사는 사람이 기록의 이용 목적까지 함께 사는 것은 아니었다.
북해파트너스 측은 잠재 소송과 과징금 위험을 계산하려면 원본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공개본만으로는 숨은 부채를 평가할 수 없고, 자료가 없으면 가격을 크게 낮출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이겸은 숨은 책임을 새 주인에게 넘기지 않으려면 충분한 실사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러나 감사 기록 접근권을 인수 가격의 흥정 재료로 주면 과거 협조자의 삶이 다시 자산 목록에 들어갈 수 있었다.
서다온은 법적 위험 자료와 사람 식별 자료를 분리하자고 했다. 진행 중 심리, 확정 채무, 보존 의무, 잠재 소송은 검증된 실사본으로 제공하고 면담 원본과 보호 자료는 독립 기록센터에 남긴다.
펀드 측 변호사는 검증본 작성자가 회사라 믿을 수 없다고 반박했다. 해진은 네 갈래 공개안의 외부 검증 구조를 설명하고, 인수 후보가 추천한 법률가도 이해충돌 심사를 거쳐 검증 과정에 참관할 수 있게 했다.
다만 참관자는 원본을 복제하거나 직원별 위험표를 만들 수 없었다. 필요한 질문은 독립 검증자에게 제출하고 답과 근거 위치를 받는 방식이었다.
북해파트너스는 그 제한을 받아들이는 대신 허위 누락이 발견될 경우 매매대금을 조정하는 조항을 요구했다. 다온은 합리적 조항이라 보았지만 무엇을 누락으로 볼지 정의해야 했다.
가온은 ‘실사 목적의 중대한 법적·재무 위험’으로 범위를 좁혔다. 보호 대상자의 현재 직장이나 무관한 사생활은 가격 조정 근거가 될 수 없다고 명시했다.
직원 대표는 펀드가 감사 기록을 이용해 문제 제기를 많이 한 부서를 폐쇄할 위험을 물었다. 펀드 측은 그런 계획이 없다고 답했지만 계약상 사용 제한에는 처음 동의하지 않았다.
해진은 말보다 조항을 요구했다. 제보·면담 참여와 보호 이력을 인사·폐쇄·보상 판단에 쓰지 않고, 위반 시 독립 감사와 구제 의무를 지는 조건이었다.
펀드 측은 인수 뒤 경영 자율성을 침해한다고 반발했다. 한이겸은 “사건 자료에 접근하지 않으면 그 제한도 필요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더 넓게 보려는 권한에는 더 좁은 이용 목적이 따라야 했다.
두 번째 인수 의향서는 계열사별 분할 인수를 제안했다. 가격은 낮았지만 각 사업의 현금 흐름에 맞는 구조였다. 대신 공통 기록과 채무를 어느 회사가 이어받는지 불명확했다.
다온은 지주사 해산 뒤 기록 책임이 공중에 뜨지 않게 독립 기록센터를 법적 승계인으로 두자고 했다. 인수 회사들은 필요한 법적 자료를 센터를 통해 열람하고 원본 소유권은 갖지 않는다.
재무 담당자는 기록센터 유지비를 누가 낼지 물었다. 계열사 매매대금 중 일정 금액을 신탁해 법정 보존 기간과 외부 감사 비용을 충당하는 안이 나왔다.
인수 후보들은 그 비용을 매각가에서 빼겠다고 했다. 직원 대표는 그 손실을 퇴직금이나 협력사 채권에서 부담하지 않도록 우선순위를 계약에 넣으라고 요구했다.
이겸은 공개 매각 공고 부속 조건에 네 가지를 추가했다. 고용 계획, 협력사 지급, 사건 책임과 채무 승계, 감사 기록의 목적 제한. 최고가만 써내는 입찰이 아니라 어떤 책임을 함께 사는지 평가하게 했다.
이사회 일부는 조건이 많으면 인수자가 떠난다고 반대했다. 회사가 약해진 때 협상력을 과신해서는 안 된다는 말도 맞았다. 해진은 조건마다 양보 가능한 것과 양보할 수 없는 것을 공개 분류하자고 했다.
고용 인원과 기간은 협상할 수 있지만 제보자 불이익 금지와 원본 보존은 최저선으로 정했다. 협력사 대금 지급 일정도 기존 법적 순위 아래로 떨어뜨릴 수 없었다.
가온은 인수 후보에게 같은 데이터 목록을 제공했다. 한 후보에게만 더 자세한 사업장 정보가 가면 가격뿐 아니라 직원들의 운명도 비공개 관계로 결정될 수 있었다. 모든 제공과 질의 응답은 입찰 자료실에 기록됐다.
북해파트너스는 태성 사건의 구체적 인물 목록을 다시 요구했다. 잠재 소송 원고를 확인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다온은 소송 건수와 금액 범위, 절차 상태로 대체하고 이름은 법적 필요가 생길 때 별도 확인하자고 했다.
펀드 측은 불확실성 할인률을 높였다. 예비 가격이 떨어지자 이사회는 감사팀을 비난했다. 이겸은 보호의 비용이 숫자로 나타났다고 인정하면서도 그 비용을 사람의 신원으로 메울 수 없다고 했다.
직원들은 낮아진 가격이 자기 일자리를 줄일까 걱정했다. 해진은 자료 제한이 어떤 재무 영향을 냈는지 숨기지 않고 공개 설명회에서 말했다. 보호 선택의 비용을 추상적인 선의로 감추지 않았다.
한 생산직 직원은 “우리 일자리를 지키려고 누군가 이름을 내야 한다면 그 사람에게 물어는 봤느냐”고 질문했다. 해진은 누구에게도 그런 선택을 요구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인수 협상의 책임을 보호 대상에게 넘기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인수 공고 마감 전 세 번째 후보가 들어왔다. 지역 기업과 장기 투자기관이 만든 연합이었다. 가격은 가장 낮았지만 사업장 유지와 기록센터 신탁 비용을 수용했다.
이사회는 가격만 공개하고 조건표는 비공개하자고 했다. 영업 비밀과 협상 전략 때문이었다. 직원 대표는 최소한 평가 항목과 배점, 이해충돌은 공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네 사람은 입찰 가격 자체는 마감 뒤 공개하고, 고용·채무·기록 조건의 충족 여부는 심사 과정에서 동일한 표로 알리기로 했다. 구체적 기술과 자금 조달 비밀은 독립 위원이 검증했다.
이겸은 과거 장부의 숫자를 쫓을 때 사람 이름이 맨 위에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 인수표의 맨 위에는 가격이 있었고, 그 아래 고용과 채무와 기록이 밀려 있었다. 그는 표의 순서를 바꾸자고 제안했다.
해진은 순서만 바꾸면 상징에 그칠 수 있다고 했다. 최저 조건 미달 후보는 가격 점수를 계산하지 않는 문턱 방식이 필요했다. 이사회는 격론 끝에 제보자 보호와 기록 승계를 필수 문턱으로 받아들였다.
공개 매각 자료실이 열린 날, 북해파트너스의 계정은 사건 원본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대신 법적 위험 검증본과 질문 창구, 독립 기록센터 운영안이 보였다. 펀드는 불편을 기록했고 팀도 그 비용을 기록했다.
태성의 인수 공고는 회사를 구할 영웅을 찾는 문서가 아니었다. 약해진 기업의 자산을 누가 살지, 그 과정에서 누구의 말과 삶을 가격표 밖에 둘지 정하는 첫 계약이었다.
회의 종료 때 해진은 다음 심사 의제로 직원 컨소시엄 제안을 올렸다. 퇴직금을 출자금으로 쓰겠다는 안이 들어와 있었다. 이겸은 ‘직원이 회사를 산다’는 문구보다 담보 목록을 먼저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