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갈래 공개안 시행 규칙 마지막 장에는 오래된 문장 하나가 남아 있었다. ‘중대 사건 자료의 최종 공개 여부는 감사팀장이 승인한다.’ 한이겸은 자기 직함이 적힌 줄을 한참 바라봤다.
윤해진은 그 문장이 통합안과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외부 검증자와 독립 위원이 있어도 팀장이 마지막에 멈출 수 있다면, 개인 거부권은 그대로였다. 공개를 넓히는 권한도 같은 사람에게 있었다.
서다온은 규정의 역사부터 확인했다. 과거 장승민 체제에서 민감 자료 유출을 막는다는 이유로 만든 조항이었고, 특별감사 뒤에도 긴급 결정을 위해 남겨 뒀다. 한이겸은 몇 차례 보호를 위해 그 권한을 실제로 썼다.
민가온은 사용 기록을 가져왔다. 이겸은 공개 보류 세 번, 공개 확대 두 번을 단독 승인했다. 모두 사후 공동 검토를 거쳤지만 최초 결정은 한 사람의 계정에서 나왔다.
“위험할 때는 누군가 바로 멈춰야 합니다.” 이겸이 말했다. “위원회를 기다리는 동안 자료가 퍼질 수 있어요.”
해진은 긴급 중지와 최종 결정을 분리하자고 했다. 누구나 위험을 발견하면 짧게 멈출 수 있지만, 계속 막거나 공개하려면 복수 승인과 독립 검토가 필요했다.
이겸은 자기 권한을 지키려는 마음이 원칙인지 두려움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첫 생에서 장부를 혼자 지켰고, 이번 생에서는 자신의 승인 아래 원본을 세 갈래로 나눴다. 열쇠를 놓으면 다시 누군가 빼앗을 것 같았다.
그는 미래 기억 편향 메모에 새 항목을 추가했다. ‘개인 통제 상실을 사건 재발 위험으로 과대평가할 가능성.’ 독립 위원에게 공개 토론 전 검토를 요청했다.
직원 대표는 팀장 권한을 없애도 임원이나 인수자가 독립 위원을 장악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권한 분산만으로 외부 권력의 개입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다온은 위원 임기, 추천 주체, 해임 요건을 함께 고치자고 했다. 노동자·시민·법률·기록 분야가 각각 추천하고, 인수 뒤에도 임기를 보장하며, 이해충돌이 있을 때만 공개 절차로 교체하는 구조였다.
가온은 시스템 권한표를 만들었다. 긴급 중지는 조사자·보호담당자·데이터 책임자 누구나 할 수 있고 네 시간 동안 유효했다. 연장에는 두 분야 승인과 외부 위원 확인이 필요했다.
공개 확대는 더 엄격했다. 검증 필요성, 대체 자료 부족, 재식별 영향평가, 당사자 이의 기회를 모두 통과해야 했다. 팀장 서명 하나로 건너뛸 수 없었다.
이겸은 의사 결정이 너무 느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가온은 모의 시험을 돌렸다. 긴급 중지는 삼 분 안에 가능했고, 최종 결정은 평균 하루 반이 걸렸다.
언론은 하루 반의 지연도 은폐라고 비판할 수 있었다. 해진은 지연 사유와 결정 예정 시각을 공개해 기다리는 책임을 보이자고 했다. 속도보다 되돌릴 수 없는 피해를 줄이는 편을 택했다.
독립 위원은 한이겸에게 직접 물었다. “당신이 반대해도 공개할 수 있는 제도에 동의합니까?”
이겸은 바로 답하지 않았다. 자신이 가장 잘 안다고 믿던 사건에서 이미 결론을 앞당겼고 해진의 반대로 고쳤다. 권한이 남아 있었다면 빈 서명란을 억지로 채웠을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었다.
“동의합니다.” 그가 말했다. “대신 내가 반대한 이유도 기록해 주십시오.”
해진은 모든 소수 의견을 결정문에 붙이는 조항을 넣었다. 개인 거부권이 사라져도 경고까지 지워지지 않게 했다. 나중에 피해가 생기면 누가 무엇을 예상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이겸의 최종 승인권을 삭제하는 전자 규정 변경에는 네 번의 확인이 필요했다. 법률 검토, 직원 대표, 독립 위원, 시스템 관리자. 이겸은 마지막 승인자가 아니라 변경 대상 권한의 당사자로 의견만 제출했다.
시스템 관리자는 관리자 계정으로 그의 권한을 낮추려 했다. 가온은 한 사람이 변경하지 못하게 두 관리자가 동시에 작업하고 외부 기록관리인이 로그를 확인하게 했다. 권한 분산을 만드는 과정도 분산돼야 했다.
화면에서 ‘최종 승인’ 버튼이 사라졌다. 대신 이겸 계정에는 ‘의견 제출’, ‘긴급 중지 요청’, ‘공동 표결’ 세 버튼이 남았다. 그는 마우스를 움직여 빈 자리를 확인했다.
그날 바로 첫 시험이 왔다. 시민검증자가 국장실 결정 문장의 추가 공개를 요구했고, 이겸은 공익이 크다고 찬성했다. 해진은 재식별 위험 검토가 부족하다고 긴급 중지를 걸었다.
예전 규정이라면 이겸이 최종 승인으로 공개할 수 있었다. 새 규정에서는 가온의 영향평가와 다온의 법적 검토, 외부 위원 확인을 기다려야 했다. 이겸은 기다리는 동안 결재창을 열지 않았다.
평가 결과 고위자 발언은 공개하되 회의 배석자의 직무 이동은 가리는 안이 나왔다. 이겸의 목적과 해진의 위험이 모두 일부 반영됐다. 결정은 공동 운영표에 네 표와 유보 의견으로 남았다.
공개 직전 외부 기록관리인은 네 승인 중 하나의 시각이 시스템 로그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단순 표기 오류였지만 팀은 배포를 삼십 분 미뤘다. 최종 승인권이 사라진 뒤에도 검증자가 실제로 멈출 수 있다는 첫 증명이었다.
가온은 시각을 바로잡고 변경 전후 값을 함께 남겼다. 이겸은 작은 오류 때문에 공개를 미룬 결정을 지지했다. 예전의 빠른 단독 승인이 없어진 비용을 자기 앞에서 처음 감수했다.
이겸은 자기 찬성표가 다른 표와 같은 크기로 표시된 것을 보았다. 팀장이라는 강조도, 회귀한 사람이라는 표지도 없었다. 한 표가 되자 책임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설명해야 할 이유가 더 선명해졌다.
회사 감사위원 일부는 리더십 공백을 우려했다. 위기 때 최종 책임자가 누구냐고 물었다. 다온은 절차 책임자는 단계별로 존재하고, 결과 책임은 의결자와 운영자가 나눠 진다고 답했다.
“나눠 가지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것 아닙니까?”
해진은 반대로 모두의 선택과 서명이 남는다고 설명했다. 한 사람 뒤에 숨을 수 없고, 반대한 사람도 위험을 알린 의무를 다했는지 검토받았다.
직원 대표는 새 규칙을 세 달 시범 운영한 뒤 실제 지연과 오류를 공개하라는 조건을 붙였다. 권한을 없앤 상징에 취하지 않고 운영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이겸은 자신의 옛 승인 기록 다섯 건을 외부 감사에 넘겼다. 당시 결정이 타당했는지보다, 개인 권한 때문에 다른 의견이 눌렸는지 보게 했다. 과거의 선의도 검증 면제 사유가 아니었다.
감사 결과 두 건에서 해진과 가온의 반대가 최종 문서에 충분히 남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결정 자체는 뒤집히지 않았지만 이겸은 기록 누락 책임을 인정했다.
그는 서면 시정문을 운영 기록철에 넣었다. 자신의 승인으로 좋은 결과가 났다는 이유로 반대 과정의 손실을 지우지 않았다. 후임자는 성공과 결함을 함께 읽게 됐다.
밤에 이겸은 예전 ‘최종 승인’ 도장이 찍힌 종이 결재판을 서랍에서 꺼냈다. 버리지 않고 역사 기록으로 넘겼다. 더 이상 효력은 없다는 붉은 표시가 붙었다.
해진은 그에게 홀가분하냐고 묻지 않았다. 권한을 내려놓는 일이 반드시 아름답거나 편안할 필요는 없었다. 이겸은 빈 서랍을 닫으며 자신이 불안하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다음 날 공동 표결 알림이 왔다. 이겸은 세 사람의 검토가 끝나기 전에 먼저 결론을 쓰지 않았다. 자기 의견 칸에 근거와 유보 조건을 적고 저장했다.
장부가 자기보다 오래 살아남기를 바랐던 날, 이겸은 원본을 세 갈래로 나눴다. 이제 공동 규칙은 결정 권한마저 여러 사람에게 나눴다. 통제력 상실은 패배가 아니라, 장부가 더 이상 한 사람의 생존과 판단에 매달리지 않는 완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