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해진은 별도 보고서 첫 장에 한이겸의 이름을 쓰지 않았다. 특정 사람을 반대하는 문서가 아니라 보호 중심 공개안을 독립적으로 설명하는 문서여야 했다. 제목은 ‘후속 공개에서 당사자 선택과 대체 검증의 기준’이었다.
그는 밤늦게까지 박시우 가림 오류, 강승표의 조건부 동의, 박재현의 거부를 사건명이 아닌 절차 사례로 정리했다. 누구인지 추정할 조합 정보는 빼고, 어떤 권리가 어떻게 행사됐는지만 남겼다.
이겸은 초안을 보여 달라고 하지 않았다. 상급자인 자신이 미리 읽고 고치면 별도 보고서의 독립성이 약해질 수 있었다. 제출 뒤 공개본과 같은 시각에 처음 읽겠다고 했다.
회사 법무실은 팀장 결재 없는 보고서를 외부 위원회에 제출할 수 없다고 막았다. 기존 문서 규정에는 감사팀장이 최종 승인하도록 돼 있었다. 해진은 바로 그 조항이 이번 갈등의 대상이라고 답했다.
서다온은 회피가 끝난 뒤 일반 법률 의견만 제공했다. 내부 규정상 결재가 필요하지만 독립 조사 기구의 위촉 조사관은 별도 의견을 낼 권리가 있었다. 어느 지위로 제출하는지 표지에 분명히 적으면 됐다.
해진은 회사 감사팀 문서가 아니라 독립 조사관 의견서로 경로를 바꿨다. 회사 서버를 통하지 않고 외부 기구 접수함에 원본을 보냈다. 접수 시각과 해시값은 공동 사건철에 연결됐다.
민가온은 데이터 인용 부분을 검토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는 수치의 출처와 익명성만 확인하고 보호 정책 결론에는 서명하지 않았다. 역할이 섞이지 않도록 검증 범위를 보고서에 표시했다.
보고서의 첫 주장은 간단했다. 공개로 얻는 공익은 자료량이 아니라 권한과 결정의 검증 가능성으로 측정해야 한다. 사람의 사적 맥락을 더 많이 보는 것이 권력 감시를 자동으로 강화하지는 않는다.
두 번째 주장은 당사자 선택이었다. 과거 협조 동의를 새 목적으로 재사용하지 않고, 거부했을 때 대체 원본을 먼저 찾는다. 대체 원본이 없으면 공익과 위험을 독립 심사하되 당사자에게 이의 기회를 준다.
세 번째는 보호 종료 뒤의 권리였다. 법적 보호 기간이 끝났다고 재식별 위험과 직장 불이익이 끝나지 않는다. 행정 상태가 ‘종료’인 것과 삶의 위험이 사라진 것은 다른 문제였다.
해진은 보호를 절대 금지로 쓰지 않았다. 고위자의 권한 행사, 공적 자금 결정, 감사팀 자체 오류처럼 사람의 신원 없이도 공개할 수 있는 내용은 넓게 공개하자고 했다.
독립 열람실에는 외부 시민검증자 좌석을 두고 선정 과정과 이해충돌을 공개하자고 제안했다. 감사팀이 고른 전문가만 들어갈 수 있다는 비판을 줄이기 위해 시민단체·학계·노동자 대표가 후보를 추천하게 했다.
그 대신 열람자는 원본을 복제하지 않고, 필요한 인용은 재식별 검토 뒤 공개하도록 했다. 열람 기록과 인용 거부 사유도 외부 위원이 감사했다.
보고서에는 비용표가 있었다. 별도 동의 연락, 독립 심사, 열람실 운영, 정정 대응에 드는 시간과 돈. 보호를 좋은 마음으로만 약속하지 않고 조직이 실제 부담해야 할 비용으로 만들었다.
직원 대표는 보호 비용에 무관한 직원의 이의 처리 시간을 추가해 달라고 했다. 해진은 반영했다. 제보자뿐 아니라 사건 자료에 우연히 포함된 사람도 자기 정보의 이용 목적을 물을 수 있어야 했다.
시민감시단은 초안을 읽고 고위자 면담까지 보호 논리로 가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해진은 권한자 발언과 사적 맥락을 분리한 법원 검증본 사례를 넣었다. 보호 대상은 직급이 아니라 정보 종류와 위험으로 정했다.
보고서 제출 전날 회사 감사위원 한 명이 비공식으로 연락했다. 이겸과 대립하면 승진과 향후 조사 배치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충고였다. 해진은 통화 내용을 이해충돌·압력 기록에 남기고 공식 회신을 요구했다.
감사위원은 개인적 조언이었다며 문서화를 거부했다. 해진은 더 설득하지 않고 통화 시각과 자신이 들은 내용을 독립 위원에게 신고했다. 확인되지 않은 압력으로 단정하지 않았지만 숨기지도 않았다.
이겸은 그 사실을 제출 뒤 알았다. 그는 감사위원에게 항의하겠다고 했지만 해진이 막았다. 독립 기구가 조사할 사안에 팀장이 개입하면 또 다른 압력으로 보일 수 있었다.
“당신을 보호하려는 겁니다.” 이겸이 말했다.
“그 말 때문에 이 보고서를 썼어요.” 해진이 답했다. “보호는 당사자가 원하는 방식과 절차로 해야 합니다.”
독립 위원회 공개 심사 날, 해진은 이겸 옆이 아니라 별도 제출자 자리에 앉았다. 이겸은 참관석에서 보고서를 처음부터 읽었다. 문장 어디에도 자신을 공격하는 표현은 없었다.
위원은 보호안이 진실을 가리는 결과를 낳으면 누가 책임지느냐고 물었다. 해진은 독립 심사 결정, 대체 원본 부족, 공개 재검토 기한을 모두 기록하고 자신도 정기 외부 감사를 받겠다고 답했다.
또 다른 위원은 당사자가 공익 공개를 거부할 절대 권리가 있느냐고 물었다. 해진은 없다고 답했다. 다만 거부를 무시하려면 구체적 공익과 대체 불가능성, 최소 공개 범위를 독립적으로 입증해야 한다고 했다.
이겸은 그 답에서 자기 안과 만나는 지점을 찾았다. 권한과 오류의 외부 검증은 유지되지만, 원본 접근의 범위를 감사팀이 혼자 정하지 않는다. 차이는 공개를 기본으로 볼지 보호를 기본으로 볼지였다.
위원회는 해진 보고서를 정식 대안으로 채택했다. 검증 우선안과 보호 우선안을 동등한 문서로 놓고 통합안을 만들기로 했다. 상급자의 부속 의견이 아니라 독립 제출안으로 번호가 붙었다.
회사 감사위원의 비공식 통화는 별도 윤리 심사로 넘어갔다. 해진은 자기 승진 자료나 인사 기록을 조사팀이 열람하지 않게 했다. 압력 여부 확인에 필요한 통화와 직무 배치 규정만 외부 위원이 봤다.
언론은 ‘해진, 이겸에 반기’라고 썼다. 해진은 기사 제목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 보고서 요약과 접수 번호, 심사 영상을 공개해 누구나 실제 내용을 보게 했다.
직원 게시판에는 해진이 팀장이 되는 것이냐는 질문이 올라왔다. 그는 직함 문제가 아니라고 답했다. 독립 조사관은 상급자 허락 없이 근거 있는 다른 결론을 제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보고서의 일부였다.
가온은 보고서 데이터 검증란에 자기 확인 범위만 서명했다. 다온도 법률 경로에만 서명했다. 이겸의 서명란은 애초에 없었다. 문서가 그 부재를 결함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이겸은 보고서를 다 읽고 해진에게 한 가지 수정 의견을 보냈다. 원본 공개의 공익 사례에 감사팀 자체 징계 결정문을 추가하자는 내용이었다. 해진은 타당하다고 판단해 독립 위원 변경 절차로 반영했다.
그 수정은 팀장 지시가 아니라 공개 의견 수용으로 기록됐다. 해진은 받아들인 이유를 쓰고, 다른 두 의견은 거부 사유와 함께 남겼다. 독립은 모든 조언을 거부하는 고립이 아니었다.
최종 별도 보고서가 게시되자 박재현 대리인은 연락 거부 선택이 정확히 반영됐다는 짧은 확인을 보냈다. 해진은 그 문장을 홍보 자료로 쓰지 않았다. 당사자의 확인은 절차 기록에만 남겼다.
회의실 책상에 보고서 두 권이 나란히 놓였다. 한 권은 이겸의 검증 우선안, 다른 한 권은 해진의 보호 중심안이었다. 어느 쪽도 부록으로 밀리지 않았다.
해진은 자기 보고서 표지의 독립 번호를 손끝으로 확인했다. 누군가를 이기기 위해 쓴 문서가 아니었다. 보호받던 후배의 자리를 벗어나, 다른 사람의 위험과 자기 판단에 직접 서명한 독립 조사관의 첫 결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