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가온이 처음 발견한 것은 같은 금액 두 줄이었다. 국회의원 후원회에 들어간 합법 후원과 정책재단이 외부 연구자에게 지급한 자문 용역비가 정확히 일치했다. 지급일도 사흘밖에 차이 나지 않았다.
조사실 화면에 두 줄이 나란히 뜨자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졌다. 독립 조사관 한 명은 자금 세탁 가능성을 언급했다. 한이겸도 숫자의 대칭에서 오래된 장부의 냄새를 느꼈다.
윤해진은 먼저 계정을 분리했다. 정치 후원은 태성 임원이 개인 자금으로 냈고 선거관리 기록에 신고돼 있었다. 재단 용역비는 재단 법인 계좌에서 연구소로 갔다. 출발점부터 달랐다.
“개인 자금이 회사에서 보전됐을 수 있습니다.” 조사관이 말했다.
가온은 임원의 급여·비용 정산·가수금 원장을 확인했다. 후원 전후 같은 금액이 회사에서 나간 흔적은 없었다. 개인 계좌 전체를 보는 대신 관련 기간의 출처 확인서를 독립 심사로 받았다.
후원금은 법정 한도 안이었고 영수증도 공개돼 있었다. 후원받은 의원은 당시 태성 관련 상임위원회 소속이 아니었다. 다만 그의 보좌관이 정책재단 만찬에 참석한 사실은 확인됐다.
해진은 후원과 참석을 한 선으로 잇지 않았다. 보좌관이 어떤 안건을 다뤘고 의원에게 무엇을 보고했는지 문서를 요청했다. 업무 보고에는 지주사 규제안과 중소기업 지원이 적혀 있었고 태성 검사 사건은 없었다.
의원실은 보좌관 개인 기억까지 조사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반발했다. 조사팀은 면담을 강제하지 않고 공식 업무 기록과 공개 의정 활동으로 범위를 좁혔다. 후원 자체를 의심의 근거로 계속 쓰지 않았다.
반면 재단 용역비는 문제가 달랐다. 계약서 날짜가 결과 보고서 작성 뒤로 돼 있었고, 보고서의 절반은 다른 기관 공개 자료를 그대로 옮긴 수준이었다. 연구자는 계약 전에 구두로 일을 시작했다고 해명했다.
가온은 파일 생성 시각을 확인했다. 보고서 초안은 계약 한 달 전 만들어졌고 최종 수정은 대금 지급 다음 날이었다. 실제 용역의 시작과 계약 절차가 뒤섞여 있었다.
연구자는 정책재단 고문 박준명의 소개로 일을 맡았다고 말했다. 자문 용역비 중 일부를 누구에게 돌려준 적은 없다고 했다. 계좌에는 즉시 현금 인출이나 재단 관계자 송금이 없었다.
그러나 연구자가 같은 달 감독기관 정책담당자에게 비공개 의견서를 전달한 사실이 나왔다. 의견서는 태성 현장 검사와 규제 발표가 겹치면 시장 혼란이 생긴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연구자는 재단 요청이 아니라 학술적 판단이었다고 주장했다. 메일에는 박준명이 의견서 전달 대상을 추천한 기록이 있었다. 대가가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조사할 구체적 이유가 생겼다.
이겸은 같은 금액 두 줄 중 이제 한 줄만 의심 비용으로 표시했다. 정치 후원은 확인된 합법 후원으로, 용역비는 계약·업무 대가성 추가 검토로 분리됐다. 금액이 같다는 최초 단서는 결론에서 빠졌다.
조사 대시보드는 해당 용역비를 ‘대가성 의심 비용’으로 표시하되, 의심의 근거가 사후 계약과 미기록 접촉이라는 설명을 바로 옆에 붙였다. 같은 금액의 정치 후원은 그 표지에서 완전히 제외됐다.
언론은 그 선택을 정치권 봐주기라고 비판했다. 이겸은 기자들에게 후원금 영수증과 출처 검증 범위를 공개했다. 확인되지 않은 연계를 남겨 두는 것이 더 용감해 보일 수 있어도 정확하지는 않았다.
독립 조사팀은 용역 결과물을 평가할 외부 연구자 둘을 선임했다. 그들은 보고서의 독창성과 시장 분석 가치를 따로 보았다. 공개 자료 요약이 많았지만 일부 계산은 독자적이었고, 지급액 전체가 허위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그 평가로 용역비가 깨끗해진 것도 아니었다. 계약이 사후 작성됐고, 공직자 접촉 업무가 결과물과 비용 정산에 누락돼 있었다. 조사팀은 연구 가치와 접촉 대가를 다시 나눴다.
연구자는 비용 중 일정 부분이 의견서 작성과 전달을 포함했다고 결국 인정했다. 다만 누구도 특정 결정을 약속하지 않았고, 그는 정책 설득이 불법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외부 변호사는 정책 의견 전달 자체는 합법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감독 대상 기업 후원 재단의 비용으로 특정 기관에 영향을 주려 하면서 계약과 접촉 기록을 숨긴 부분이었다. 등록·공개 의무 위반을 검토할 사안이었다.
보좌관은 자발적으로 서면 답변을 냈다. 만찬 뒤 재단 자료를 의원에게 전달했지만 후원 사실과 별개였고, 의원은 관련 정책 발의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했다. 의회 기록도 그 설명과 맞았다.
가온은 후원금과 용역비를 연결한 화살표를 화면에서 삭제했다. 대신 각각의 출처와 후속 행위를 독립된 줄로 남겼다. 최초 의심을 지우는 변경 기록도 공개했다.
한 조사관이 물었다. “나중에 둘이 연결됐다는 증거가 나오면 지금 판단이 약점이 되지 않겠습니까?”
해진은 답했다. “새 증거가 나오면 바꾸면 됩니다. 나올지 모르는 증거 때문에 지금 확인된 합법 행위를 범죄처럼 붙잡아 둘 수는 없어요.”
정치 후원자는 후원 사실 때문에 회사 내부에서 불이익을 받을까 걱정했다. 직원 대표는 합법적 정치 참여를 조사 명목으로 평가하지 않는다는 보호 조항을 요구했다. 감사팀은 소속과 성향을 기록 대상에서 제외했다.
반대로 재단 이사회는 사후 계약을 관행이라고 주장했다. 다른 용역 스무 건을 표본 점검하니 여덟 건이 같은 방식이었다. 개인 한 명의 예외가 아니라 재단의 계약 통제 문제로 확대됐다.
표본 중 두 건은 실제 연구가 끝난 뒤 금액을 맞추기 위해 계약 범위를 바꾼 정황이 있었다. 태성 사안과 직접 관련은 없었지만 재단 비용 심사의 신뢰를 떨어뜨렸다. 별도 회계 감사로 이관하고 현재 로비 판단에는 섞지 않았다.
연구소 직원은 용역비가 늦게 지급돼 급여를 개인 카드로 막았다고 진술했다. 조사팀은 연구자를 재단의 공범처럼만 보지 않고 사후 계약 관행이 약한 연구자에게 떠넘긴 생계 비용도 기록했다.
이겸은 환수액을 최대화하자는 의견에 반대했다. 실제 수행된 연구 가치와 미기록 접촉 업무를 나눠야 했다. 전액 환수는 화려한 숫자를 만들지만 정당한 노동까지 무가치하게 만들 수 있었다.
이사회는 앞으로 사전 계약, 결과물 검수, 공직 접촉 별도 공개를 의무화했다. 과거 용역 중 실제 업무가 확인되지 않는 건은 환수 심사에 넘겼다. 연구자의 해당 비용도 접촉 업무 부분을 산정해 별도 판단하기로 했다.
이겸은 조사 결과 초안 제목을 고쳤다. ‘정치 후원 연계 의혹’이 아니라 ‘재단 자문 비용과 미기록 정책 접촉’이라고 썼다. 정치인의 이름을 앞세우면 실제 문제인 사후 계약과 영향력 행사 기록이 가려질 수 있었다.
공개 회의에서 시민감시단 대표는 합법 후원을 굳이 보고서에 남길 필요가 있느냐고 물었다. 가온은 최초 의심과 배제 과정까지 보여 줘야 조사팀이 유리한 숫자만 골랐다는 오해를 막을 수 있다고 답했다.
최종 표에는 ‘합법 후원, 대가 연결 없음’과 ‘용역비, 접촉 업무 누락 및 등록 검토’가 서로 다른 색이 아닌 다른 문장으로 적혔다. 흑백으로 복사해도 판단이 섞이지 않았다.
연구자는 용역비 일부를 재단에 자진 반환하겠다고 했다. 조사팀은 반환이 위반 판단이나 면책을 대신하지 않는다고 고지했다. 돈이 돌아온 사실과 행위 책임을 별개로 기록했다.
밤이 되어 가온은 두 숫자가 처음 나란히 떴던 화면을 닫았다. 같은 금액은 좋은 단서였지만 나쁜 결론이 될 수 있었다. 숫자는 질문을 열었고, 출처와 계약과 후속 행위가 서로 다른 답을 만들었다.
이겸은 정치인의 후원금이 아닌 것을 정치 후원처럼 포장해 쫓지 않기로 했다. 대신 재단 비용으로 기록 없이 전달된 정책 의견을 정확히 남겼다. 분리한 덕분에 아무 죄 없는 참여는 풀려났고, 실제 미신고 접촉은 더 좁고 단단한 조사선 위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