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재단의 후속 자료 목록에는 매달 같은 이름이 나타났다. 전직 금융위원 박준명. 직함은 자문위원, 특별고문, 연구협력자처럼 문서마다 달랐다. 공식 로비 등록부에는 그의 이름이 없었다.
독립 조사팀은 그를 곧바로 소환하지 않았다. 한이겸은 먼저 계약서와 지급 원장, 업무 결과물을 요구했다. 이름보다 어떤 일을 맡고 무엇을 받았는지가 등록 의무의 출발점이었다.
계약서에는 ‘정책 자문 및 대외 환경 분석’이라고만 적혀 있었다. 월 보수는 일정했고 성과 보수 조항은 없었다. 제출된 결과물은 짧은 정책 동향 메모 여섯 건이었다.
윤해진은 메모의 작성 속성을 확인했다. 절반은 재단 직원이 초안을 만들고 박준명이 수정한 문서였다. 나머지는 그의 개인 사무실에서 작성됐다. 내용은 공개 정책 자료를 요약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일정표에는 ‘담당 국장 통화’, ‘법무 라인 설명’, ‘보좌관 오찬’ 같은 항목이 반복됐다. 계약 결과물에는 그 접촉 내용이 한 줄도 없었다. 고문이라는 이름 아래 대외 접촉이 따로 움직이고 있었다.
외부 변호사는 당시 법령을 펼쳤다. 특정 정책 결정에 영향을 주기 위해 보수를 받고 공직자와 접촉하면 등록 대상이 될 수 있었지만, 일반 자문과 법률 의견 전달은 예외가 많았다. 명칭만으로 판단할 수 없었다.
박준명은 면담실에 들어오며 변호인 없이 답하겠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로비스트가 아니라 업계 경험을 제공한 고문이라고 강조했다. 모든 접촉은 공개 정책 논의였다고 말했다.
해진은 첫 통화 기록을 내밀었다. 감독기관 국장과 십이 분 통화한 날, 현장 검사 일정이 조정돼 있었다. “무슨 말을 전달했습니까?”
“시장 불안을 우려한다는 재단 보고서 내용을 설명했습니다. 특정 사건을 멈추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태성 신고가 검토 중인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까?”
박준명은 잠시 침묵했다. “업계에서 소문은 들었습니다. 공식 정보는 없었습니다.”
조사팀은 소문의 출처를 캐묻기보다 그의 통화 전후 메일을 확인했다. 재단 임원에게서 ‘검사와 규제가 겹치지 않게 전달 부탁’이라는 문장이 온 사실이 발견됐다. 박준명은 그것을 일정 조율에 관한 의견으로 이해했다고 했다.
이겸은 문장을 세 부분으로 나눴다. 검사, 규제, 겹치지 않게. 그중 ‘검사’가 태성 현장 검사를 뜻했는지 확인해야 했다. 재단 임원은 일반적인 업계 검사 일정이라고 진술했지만 첨부 문서에는 태성 계열사 이름이 있었다.
박준명은 첨부 문서를 자세히 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가온이 파일 열람 기록을 확인하니 그의 계정에서 문서가 삼 분 동안 열려 있었다. 읽었다는 증거는 아니지만 받지 않았다는 주장은 무너졌다.
“당신은 국장에게 태성 이름을 말했습니까?” 해진이 물었다.
“기억나지 않습니다.”
해진은 같은 질문을 반복하지 않았다. 통화 상대의 업무 메모, 그날 국장실 일정, 뒤따른 정책 문서를 확보하겠다고 고지했다. 기억의 빈칸을 압박으로 채우지 않고 기록으로 돌아갔다.
국장의 업무 메모에는 ‘박 고문, 태성 검사·정책 일정 충돌 우려’라고 적혀 있었다. 그 아래에는 ‘검사부서와 협의’라는 지시가 있었다. 구체적으로 멈추라는 말은 없었지만, 태성 건을 특정한 영향력 행사가 확인됐다.
검사부서 책임자는 국장에게서 일정 검토 요청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명령으로 느끼지는 않았으나 상급자의 관심 사안이라 우선순위를 다시 봤다고 했다. 결국 일정은 한 주 밀렸다.
외부 변호사는 행위를 네 칸으로 나눴다. 재단 보고서 작성은 합법 자문, 공개 토론 참석은 신고 권고, 태성 검사 일정 특정 전달은 등록 검토 대상, 접촉과 보수를 결과물에서 누락한 것은 계약 위반 가능성이었다.
박준명은 자신이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이겸은 그 말에 동의했다. “결정 책임은 국장과 검사부서에 있습니다. 하지만 영향을 주기 위한 접촉을 기록하지 않은 책임은 별개입니다.”
재단은 고문 계약에 대외 접촉 기록 의무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조사팀은 없던 의무를 소급해 징계할 수는 없다고 적었다. 다만 법정 등록 의무와 비용 정산의 정확성은 계약 문구와 별도로 판단했다.
박준명의 교통비 원장에서는 국장 면담 날 차량 비용이 재단에 청구돼 있었다. 목적은 ‘정책 자료 전달’이었다. 보수와 비용을 받고 특정 기업 검사 일정을 언급한 접촉이라는 조합이 완성됐다.
등록 감독 부서는 그 접촉이 당시 기준상 신고 대상일 가능성이 높다는 예비 의견을 냈다. 최종 위반 판단은 별도 절차로 넘겼다. 조사팀은 ‘불법 로비스트 확정’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박준명은 예비 의견을 받은 뒤 과거 일정 일부가 개인 수첩에만 남아 있다고 알렸다. 그는 수첩을 통째로 제출하겠다고 했지만 가족 약속과 건강 기록도 섞여 있었다. 조사팀은 독립 심사관이 공직 접촉 날짜만 추출하게 했다.
추출된 일정 세 건 중 하나는 등록부에 없던 국회 보좌진 만남이었다. 카페 영수증과 재단 교통비 청구가 같은 날 존재했지만 대화 내용은 남지 않았다. 조사팀은 내용 불명 접촉으로 추가하고 추측선을 긋지 않았다.
보좌진은 공개 연구 보고서를 받았을 뿐이라고 서면 답했다. 전달 파일의 해시값이 재단 홈페이지 공개본과 같아 비공개 정보 제공 정황은 없었다. 이 접촉은 신고 누락 검토에는 남았지만 청탁 판단에서는 빠졌다.
박준명은 자기 일정이 이렇게 잘게 나뉘는 것이 부당하다고 말했다. 해진은 사람 전체를 로비스트라고 부르는 것보다 각 만남의 목적과 근거를 나누는 편이 오히려 낙인을 줄인다고 설명했다. 그는 완전히 납득하지 않았지만 진술서에 그 설명을 들었다고 적었다.
대신 박준명의 모든 접촉을 행위별로 공개했다. 일반 자문 스물세 건, 정책 설명 일곱 건, 특정 태성 사안 언급 두 건, 내용 확인 불가 세 건. 보수와 비용의 연결 여부도 각각 표시했다.
언론은 ‘등록되지 않은 자문’이라는 제목으로 그를 비난했다. 박준명의 변호사는 명예 훼손을 주장했다. 해진은 공개표에서 판단이 끝나지 않은 두 건에 예비 표시가 분명한지 다시 확인했다.
한이겸은 박준명이 과거 권력을 팔았다는 말로 회견을 끝내고 싶지 않았다. 개인을 처벌해도 고문 계약에 접촉 기록이 남지 않는 구조가 계속되면 같은 일이 반복될 수 있었다.
재단은 모든 유급 고문의 공직자 접촉을 일주일 안에 등록하고, 공식 안건과 비용을 분기별로 공개하는 규칙을 채택했다. 기관도 전직 관료의 연락을 개인 친분 통화가 아니라 외부 접촉 기록으로 남기기로 했다.
박준명은 마지막 진술서에서 ‘나는 조언했을 뿐’이라는 문장을 지우지 않았다. 그 아래 조사관이 ‘특정 검사 일정 언급 및 비용 수령 확인, 결정 권한 없음’이라고 덧붙였다. 자기 이해와 확인된 행위가 같은 종이에 남았다.
다온은 회피 상태에서 공개된 결과만 읽었다. 박준명은 그의 옛 상급자와도 가까운 사람이었지만 다온은 추가 설명을 보내지 않았다. 공식 기록이 개인 인맥보다 먼저 완성되도록 기다렸다.
해진은 사건철에 두 개의 표지를 붙였다. ‘등록 위반 판단 이관’과 ‘기관 접촉 기록 개선 완료.’ 한 사람의 처분과 제도의 수정이 서로를 대신하지 않게 나눈 것이었다.
밤이 깊자 이겸은 벽의 이름들을 지우고 행위만 남긴 복사본을 만들었다. 고문, 전직 관료, 국장이라는 직함보다 누가 무엇을 전달했고 누가 어떤 결정을 했는지가 더 오래 남아야 했다.
등록부의 빈칸은 더 이상 비밀 인물의 자리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 칸에는 합법 자문과 영향력 행사 사이의 경계를 기록하지 않았던 제도의 책임이 있었다. 조사팀은 사람 하나를 문밖으로 내보내는 대신, 앞으로 모든 접촉이 지나가야 할 문턱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