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재단의 행사비 원장은 비가 오는 오후에 도착했다. 상자 안에는 영수증과 좌석표, 초청장, 회의 자료가 연도별로 묶여 있었다. 독립 조사관은 가장 먼저 태성 신고 보류 사흘 전의 저녁 식사 봉투를 꺼냈다.
봉투 표지에는 ‘산업 경쟁력 자문 만찬’이라고 적혀 있었다. 참석자는 재단 이사 둘, 태성 대외협력 임원 한 명, 감독기관 정책담당자 셋, 국회 보좌진 둘, 대학 연구자 넷이었다. 이미 공개된 행사였지만 좌석 배치는 처음 확인됐다.
한이겸은 감독기관 담당자와 태성 임원이 같은 탁자에 앉은 표시를 보았다. 첫 생의 자신이었다면 그 원 하나로 연결선을 그었을 것이다. 그는 펜을 내려놓고 비용 정산서부터 펼쳤다.
식사비는 재단이 전액 냈고, 1인 비용은 기관 행동강령의 상한보다 낮았다. 교통비와 숙박비 지원은 없었다. 선물 목록에는 재단 보고서 한 권만 적혀 있었다.
“그럼 문제없는 행사입니까?” 위원회 실무자가 물었다.
서다온을 대신한 외부 변호사는 답을 미뤘다. “비용 한도는 한 기준입니다. 무엇을 논의했고 그 뒤 공적 결정이 바뀌었는지는 다른 기준입니다.”
윤해진은 공식 안건을 읽었다. 중소기업 자금조달, 지주사 규제, 해외 투자 활성화. 태성의 이상 거래 신고나 현장 검사 일정은 문서에 없었다. 다만 마지막 자유 토론 삼십 분은 발언 기록이 남지 않았다.
조사팀은 그 자리의 정책 자문이 공식 안건 안에서 이뤄졌는지, 자유 토론에서 특정 기업 사안으로 넘어갔는지를 별도 질문으로 나눴다. 합법적인 의견 교환과 기록되지 않은 영향력을 한 문장에 섞지 않기 위해서였다.
재단 사무국장은 관행상 자유 토론을 기록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조사관은 그 시간을 비밀 회의로 표현하려 했지만 해진이 고쳤다. “기록되지 않은 시간입니다. 비밀이었다는 증거는 아직 없어요.”
좌석표에는 연필로 두 자리가 바뀐 흔적이 있었다. 감독기관 정책담당자와 태성 임원이 원래 다른 탁자였는데 현장에서 같은 탁자로 옮겼다. 사무국장은 늦게 온 연구자의 자리를 만들기 위한 조정이었다고 설명했다.
가온은 행사장 예약 변경 메일과 참석 확인 문자를 대조했다. 연구자가 기차 지연으로 늦는다는 연락, 빈 자리를 다시 배치한 직원의 메모가 있었다. 좌석 변경 자체는 설명됐다.
그러나 만찬 다음 날 오전 감독기관에서 지주사 현장 검사 일정이 한 주 미뤄졌다. 이겸은 시간표 위에 두 사건을 나란히 놓았다. 해진은 결정 문서의 작성자가 만찬 참석자와 다른 부서라는 점을 표시했다.
정책담당자는 현장 검사 부서에 전화를 건 기록이 있었다. 통화는 만찬 당일 오후, 행사 전이었다. 내용은 새 지주사 규제안의 일정 조정을 알리는 것이었다고 했다. 통화 뒤 검사 보류를 요청했다는 문서는 없었다.
조사팀은 검사 부서 책임자를 면담했다. 그는 인력 부족과 국회 보고 준비 때문에 일정을 조정했다고 진술했다. 만찬 참석 사실은 나중에 알았다고 했다. 배치표와 일정 메일은 그 설명 일부를 뒷받침했다.
이겸은 질문을 바꿨다. “태성 측에서 정책 일정과 현장 검사를 함께 언급한 적이 있습니까?”
책임자는 한참 생각했다. “공식적으로는 없습니다. 다만 대외협력 임원이 규제가 겹치면 시장 충격이 크다고 여러 자리에서 말했습니다.”
그 ‘여러 자리’ 중 하나가 만찬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조사팀은 기억을 압박하지 않고 임원의 발표 자료와 재단 연구 보고서를 요청했다. 같은 표현이 공개 세미나 자료에도 반복돼 있었다.
가온은 문구의 최초 작성 시각을 추적했다. ‘시장 충격’ 표현은 만찬보다 두 달 전 재단 연구 초안에 있었다. 태성 임원이 비밀로 심은 말이 아니라 정책 논쟁에서 이미 쓰이던 말이었다.
그렇다고 이해충돌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감독기관 정책담당자가 감독 대상 기업의 후원 재단 행사에 반복 참석하면서 사전 신고를 하지 않은 사실이 확인됐다. 비용이 상한 이하여도 관계의 누적은 별도 공개 대상이었다.
정책담당자는 첫 두 행사는 공개 초청이라 신고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세 번째부터는 재단 직원이 개인 번호로 좌석을 확인했지만, 업무 관계가 이미 형성됐다는 자각이 없었다고 했다. 조사팀은 진술과 연락 기록을 함께 남겼다.
해진은 행사 직후 담당자가 작성한 정책 검토안의 변경 이력도 대조했다. 단계 시행 문구가 추가됐지만 근거 각주에는 재단 보고서뿐 아니라 세 개 산업단체와 두 연구기관 의견이 인용돼 있었다. 재단만의 요구가 결정문에 숨겨진 흔적은 없었다.
대신 연락 기록을 담당 부서 누구도 볼 수 없었다. 개인 번호로 이어진 관계는 담당자가 자리를 옮겨도 인계되지 않았고 사후 감사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비용보다 관계의 비가시성이 더 큰 통제 문제로 남았다.
해진은 참석 횟수와 후속 업무를 표로 만들었다. 다섯 차례 행사 중 두 차례 뒤에는 태성 관련 정책 검토가 있었고, 세 차례는 무관한 연구 발표였다. 모든 만남을 같은 의미로 묶지 않았다.
정책담당자는 당시 신고 의무가 모호했다고 주장했다. 규정은 금품 수수와 외부 강의만 명시했고, 비공개 토론 참석은 부서장 판단에 맡겼다. 부서장은 구두 승인을 했다고 했지만 기록은 없었다.
외부 변호사는 행위 당시 규정으로 징계 가능성을 따지고, 조사팀은 그 규정의 빈틈을 따로 적었다. 현재 기준을 과거 사람에게 소급하지 않으면서도 앞으로 같은 관계가 숨지 않도록 해야 했다.
식당 영수증 뒷면에는 작은 수기 메모가 있었다. ‘후속 자료 전달: 지주 규제 비교표.’ 재단 직원은 참석자 모두에게 보낸 자료라고 했다. 발송 목록에는 태성 임원과 기관 담당자뿐 아니라 연구자와 보좌진도 포함돼 있었다.
비교표 안에는 현장 검사 중단 요구가 없었다. 다만 규제 시행을 반년 유예하자는 재단 의견이 들어 있었다. 기관은 두 달 뒤 유예 대신 단계 시행을 채택했다. 그 결정 과정에는 공개 의견 수렴 자료 수십 건이 함께 있었다.
이겸은 재단 의견 하나가 정책을 샀다고 결론 내리고 싶지 않았다. 가온이 의견 반영표를 분석하니 재단 제안 중 세 항목은 거부되고 한 항목만 일부 반영됐다. 다른 산업 단체도 같은 단계 시행을 요구했다.
독립 조사관은 “대가성 입증 곤란”이라고 쓰려 했다. 해진은 그 표현도 고쳤다. 곤란하다는 말은 혐의가 있는데 증거만 부족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었다. “확인된 비용·안건·후속 결정에서 구체적 대가 약속은 발견되지 않음”이라고 적었다.
동시에 미신고 반복 접촉과 자유 토론 기록 부재는 시정 대상으로 남겼다. 재단은 공공기관 참석자가 있는 행사에서 공식 안건과 비용 부담, 후속 자료를 공개하기로 했다. 기관은 감독 대상 후원 단체 행사 참석을 사전 신고하도록 규정을 고쳤다.
기자 회견에서 한 기자가 물었다. “결국 깨끗한 저녁이었다는 겁니까?”
이겸은 고개를 저었다. “깨끗함과 범죄 사이에 기록해야 할 행위가 많습니다. 식사비 한도를 지킨 사실, 접촉을 신고하지 않은 사실, 대가 약속이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각각 말씀드리는 겁니다.”
행사에 참석했던 대학 연구자는 자기 이름이 로비 명단처럼 퍼진 데 항의했다. 조사팀은 공개 자료에서 정책 결정 권한이 없는 참석자의 이름을 직군으로 바꾸고, 이미 배포된 표에 정정 표시를 붙였다.
그 조치는 투명성을 후퇴시킨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해진은 권한과 행위를 보여 주는 데 필요하지 않은 이름까지 남기는 것은 공개가 아니라 낙인이라고 설명했다. 독립 검토자도 같은 판단을 확인했다.
밤에 원장 상자를 닫으며 가온은 식사 영수증을 원래 봉투에 돌려놓았다. 영수증은 뇌물의 증거도 결백의 증서도 아니었다. 누가 비용을 냈고 무엇이 없었는지를 말해 주는 한 조각이었다.
이겸은 벽의 날짜표에서 저녁 식사 옆에 두 표지를 붙였다. ‘미신고 접촉 확인’, ‘구체적 대가 연결 미확인.’ 서로 다른 두 결론이 같은 칸에 남았다. 문을 통과한 사람을 모두 범인으로 세지 않았기에, 실제 규정 위반이 흐려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