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위원회 면담실 세 곳의 시계는 모두 오전 아홉 시를 가리켰다. 강승표, 퇴직자 박재현, 감사팀장 강인호는 서로 만나지 않은 채 각각 다른 층에서 질문을 받았다. 윤해진은 세 진술이 섞이기 전에 질문 순서와 제시 자료를 봉인했다.
한이겸은 강승표 면담에 들어가기 전 자기 수첩을 사물함에 넣었다. 먼저 아는 이름을 표정으로 알려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테이블 위에는 강승표가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출입 기록과 문서 이동표만 놓였다.
강승표는 첫 질문에 바로 답하지 못했다. 손등을 문지르다가 자신이 박시우에게 봉투를 건넸고, C07 문서를 세 차례 옮겼으며, 윤해진 명의처럼 보이는 메일을 공용 계정에서 보냈다고 말했다. 어느 행위도 남이 자기 손을 잡아 한 일은 아니라고 했다.
“지시는 누가 했습니까?”
“장승민 상무였습니다. 처음에는 자료 보관 위치만 바꾸라고 했어요. 거부하니까 제 배우자가 있는 계열사 인사표를 보여 줬습니다. 나중에는 박재현 선배 계정으로 들어가 발신자 이름을 윤 대리로 바꾸라고 했습니다.”
강승표는 협박받았다는 사실로 자기 행동을 없애 달라고 하지 않았다. 대신 장승민의 지시가 적힌 주간 업무표와 음성 메모가 어디에 있는지 밝혔다. 원본은 연수원에 끌려가기 전 잠금 캐비닛 뒤판에 붙여 두었다고 했다. 감사위원회 현장 담당자가 입회 아래 그것을 회수했다.
다른 층에서 박재현은 퇴직 뒤에도 자기 계정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진술했다. 장승민이 인수인계 기간이라는 이유로 비밀번호 변경을 막았고, 박재현은 문제를 제기하는 대신 서초구의 외부 포렌식 사무실 전화로 이겸에게 두 차례 연락했다. 말을 꺼내지 못하고 끊은 번호가 이겸 수첩에 남은 그 서초구 번호였다.
민가온은 그 사무실의 당시 공동 전화 사용 기록을 제출했다. 첫 통화는 박재현의 방문 시각과 일치했고, 두 번째 통화 뒤 그가 남긴 암호화 저장장치가 민가온에게 전달됐다. 가온이 처음부터 보고서 전체를 내지 않은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박재현의 동의와 원본 보존이 확보되기 전에 이름부터 공개하면 그가 먼저 잘릴 것을 우려했다.
“제가 자료 순서를 통제한 것도 사실이에요.” 가온이 말했다. “보호를 위한 판단이었지만, 팀에는 보유 범위부터 밝혔어야 했습니다.”
해진은 그 말을 사건철에 그대로 적었다. 가온의 동기는 보호였고, 자료 보유 사실을 늦게 알린 절차상 문제는 별도로 남겼다. 좋은 의도가 기록 없는 독점의 면허가 되지는 않았다.
강인호 면담에서는 승인 카드가 쟁점이었다. 그는 공용 계정 유지와 ‘전략실 지원 문서’ 이동을 포괄 승인한 사실을 인정했다. 카드가 실제 사용된 오후에는 외부 회의 중이었지만, 카드를 잠그지 않은 채 비서 서랍에 두었고 다음 날 사용 사실을 알고도 신고하지 않았다.
세 면담이 끝난 뒤 조사관들은 답을 섞기 전에 시간표부터 합쳤다. 박재현 계정이 초기화된 시각, 강인호 카드가 찍힌 시각, 강승표가 캐비닛을 연 시각, 박시우에게 봉투가 넘어간 시각이 분 단위로 이어졌다. 누구의 기억이 틀려도 기계 기록이 순서를 붙들도록 했다.
강승표의 첫 진술에는 카드 사용이 메일 발송 뒤라고 적혀 있었지만 단말 기록은 반대였다. 해진이 차이를 묻자 그는 긴장해서 순서를 바꿔 말했다고 인정하고 진술서를 고쳤다. 작은 오류를 숨기지 않자 나머지 진술과의 일치 범위도 더 분명해졌다.
박재현은 자기 계정에서 직접 메일을 보내지 않았다는 원격 접속 기록을 제출했다. 그날 그는 서초구 사무실에 있었고, 로그인은 태성 내부 단말에서 이뤄졌다. 이 자료는 그의 방치 책임을 없애지는 않았지만 위조 발신 행위의 주체를 강승표 단말로 좁혔다.
강인호의 비서는 카드 보관 서랍을 강승표에게 열어 준 사실을 밝혔다. 전략실 지원 건은 강 팀장 승인이 났다는 말을 믿었다고 했다. 조사팀은 그 진술을 새로운 공모로 확대하지 않고, 카드 대여를 가능하게 한 구두 승인 관행과 잠금 부재를 통제 결함으로 별도 기록했다.
“메일 발송 지시는 하지 않았습니다.” 강인호가 말했다. “하지만 장 상무가 감사를 방해한다는 걸 의심하면서도 팀을 지키겠다는 이유로 덮었습니다. 그게 승인과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해진은 고개를 들었다. “행위자는 아닐 수 있어도, 권한 보유자로서 묵인한 책임은 남습니다.”
카드 단말 로그와 복도 영상은 강승표가 강인호의 카드를 사용한 사실을 뒷받침했다. 강인호가 직접 메일을 보냈다는 증거는 없었다. 반대로 그가 다음 날 카드 사용 알림을 열람하고도 사고 신고를 하지 않은 기록은 분명했다. 팀은 발신 행위, 포괄 승인, 사후 묵인을 세 칸으로 나눴다.
오후 면담에서 박시우는 봉투를 열지 않았고 목적지도 몰랐다는 점이 확인됐다. 출입 영상과 봉투 봉인 상태가 그의 진술과 맞았다. 시우는 지시를 따른 전달자였지만 위조나 삭제에 참여한 증거가 없었다. 감사위원회는 그에게 조사 협조 외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고 서면 통지했다.
잠금 캐비닛에서 나온 음성 메모에는 장승민의 목소리와 날짜가 담겨 있었다. ‘박재현 이름을 그대로 두라’, ‘해진 쪽에서 보낸 모양이면 된다’, ‘강 팀장 카드로 지원 건을 닫아라’라는 지시가 순서대로 녹음돼 있었다. 음성 감정 전에는 참고 자료였고, 감정 결과와 원본 기기 정보가 일치한 뒤 정식 증거 목록에 들어갔다.
이겸은 장승민의 목소리를 듣는 동안 주먹을 쥐지 않았다. 원래 생에서 들은 마지막 목소리와 같다고 말하는 대신, 현재 녹음의 발화자 검증 결과를 기다렸다. 이제 그의 기억은 증거 목록 바깥에 서 있을 수 있었다.
세 진술과 네 종류의 로그가 합쳐지자 감사 전달 사슬이 한 줄로 이어졌다. 퇴직 뒤 남겨 둔 박재현 명의 계정, 강인호의 포괄 승인과 방치된 카드, 강승표의 계정 사용과 문서 이동, 박시우를 통한 봉투 전달, 그리고 장승민의 구체적 지시였다.
다만 책임의 무게는 같지 않았다. 박시우에게는 가담 근거가 없었다. 박재현은 계정 방치를 알면서 늦게 알린 책임과 뒤늦은 제보가 함께 적혔다. 강승표는 압박 아래 실행했지만 위조와 이동 행위를 인정했다. 강인호는 권한 보유자로서 묵인했다. 장승민은 사람과 권한을 배치해 사슬을 움직였다.
강승표는 진술서 마지막 장에 서명하기 전에 문장을 하나 고쳤다. ‘자발적 교육 참석’이라는 표현을 지우고 ‘전략실 요청에 따른 비자발적 격리’라고 썼다. 조사관은 수정 이유와 시각을 함께 남겼다. 누구도 그의 서명을 재촉하지 않았다.
해진은 위조 메일 원본을 바라보다가 자기 이름 옆에 ‘실제 발신자 아님’이라는 조사 결론을 붙였다. 처음부터 따라오던 이름 도용이 공식 문장으로 끝났다. 민가온의 보류 보고서도 전부 제출됐고, 그 안의 박재현과 강인호는 각자의 확인된 역할로 분리됐다.
저녁 여섯 시, 감사위원회는 전달 사슬 중간보고를 의결했다. 장승민의 업무 접근을 즉시 정지하고, 강인호의 감사 지휘 권한을 회수하며, 강승표와 박재현의 진술 보호를 유지했다. 징계와 형사 책임의 최종 판단은 별도 절차로 넘겼지만 누가 무엇을 했는지는 더 이상 빈칸이 아니었다.
이겸은 사물함에서 수첩을 꺼냈다. 오래전 적어 둔 ‘배신자’라는 단어를 한 줄로 지웠다. 전달자들은 한 얼굴이 아니었다. 겁먹은 사람, 묵인한 사람, 이용당한 사람, 지시한 사람이 서로 다른 자리에 있었다. 그 차이를 기록한 뒤에야 복수장부는 사람을 세는 명부가 아니라 책임을 묻는 장부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