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역뒤에 남은 마지막 벽은 붉은 벽돌로 쌓여 있었다. 새벽 집행 때도, 법률 이의가 끝난 뒤에도 그 벽만은 서 있었다.
건물 전체가 보존된 것은 아니었다. 뒤쪽 두 칸은 이미 위험판정으로 비워졌고 앞방 한 칸만 임시 지지대에 기대고 있었다.
최종 구조검사는 보강비와 잔존수명을 함께 냈다. 벽을 남기려면 기초를 거의 새로 만들어야 했고 인접 통로를 오래 막아야 했다.
최명숙은 보존이 불가능하다는 말을 사업자 결론으로만 받지 않았다. 주민 추천 기술자와 공공 안전검토자가 각각 계산했다.
두 보고서는 방법과 단가에 차이가 있었지만 장기 사용은 안전하지 않다는 판단이 같았다. 반대 의견도 부록에 남았다.
그 건물 마지막 거주자는 장선자였다. 임시 숙소에서 공공 임대 주거로 옮길 조건을 두 달 동안 확인했다.
새집은 엘리베이터가 있고 시장까지 버스로 두 정거장이었다. 선자는 걸어서 가던 거리와 달라졌다고 말했다.
이주지원은 열쇠만 주지 않았다. 버스비, 시장 배달과 익숙한 의원까지 이동을 한 달 시험했다.
첫 집은 햇빛이 적어 선자가 거절했다. 두 번째 집은 더 멀지만 남향이었고 이웃 두 명과 함께 방문했다.
선자는 두 번째를 골랐다. 선택을 빨리 받으려고 첫 집 보증금 지원을 조건으로 묶지 않았다.
합의된 이주 문서에는 임시 대피와 최종 이전이 구분됐다. 선자는 철거 동의 범위와 남은 이의권을 유급 법률상담에서 확인했다.
건물 소유자도 서명했다. 보상액, 잔존 물품과 철거 뒤 토지 사용은 별도 칸으로 나뉘었다.
마지막 물건 확인은 이주 전날 열렸다. 선자는 벽장 안 낡은 재봉상자와 문틀 뒤 키 표시를 찾고 싶다고 했다.
마틴과 유급 이동담당이 안전모를 쓰고 들어갔다. 선자가 위험 건물 안으로 다시 들어가게 하지 않았다.
재봉상자는 사진에 있던 선반에서 나왔다. 안에는 실타래와 고장 난 가위, 오래된 사진 두 장이 있었다.
담당자는 상자를 열어 정리하지 않았다. 선자에게 봉인 상태로 건네고 수령을 확인했다.
문틀의 키 표시는 떼어 갈 수 없었다. 선자는 나무조각 전체를 원하지 않고 표시 부분만 사진으로 남겨 달라고 했다.
하늘은 그 사진을 기사에 쓰지 않았다. 가족 기억이자 개인 물건이므로 선자가 보관 범위를 정했다.
남은 가구 가운데 장롱 하나는 주인을 찾지 못했다. 과거 봉인 기록과 공고를 대조해 별도 창고로 옮겼다.
물건 없음 확인을 한 사람이 혼자 서명하지 않았다. 장선자 대리, 소유자, 이동담당과 감사자가 목록을 함께 봤다.
철거일은 이주 뒤 일주일로 정했다. 새집 난방과 수도, 주소 변경 지원이 작동하는지 확인할 시간이 필요했다.
선자는 첫밤 보일러가 멈춰 임시 숙소로 돌아갔다. 관리자가 다음 날 부품을 바꾸고 이틀 더 시험했다.
그 고장 때문에 철거도 이틀 미뤄졌다. 사업자는 장비 대기비를 냈고 지원계약의 생활확인 조건을 따랐다.
대기비를 선자에게 청구하지 않았다. 철거에 동의했어도 실제 거주가 가능한지 확인하기 전 옛 공간을 없애지 않는 조건이었다.
새집 셋째 날, 선자는 시장 배달을 받아 냉장고에 넣었다. 주민담당이 동의 여부를 다시 확인했고 선자는 철거일을 승인했다.
철거 전 회의에는 축사나 현수막이 없었다. 작업자들은 석면, 먼지, 통행과 비상중지선을 확인했다.
철거업체 하청명단을 펼치자 마틴의 손이 한 줄에서 멈췄다. 계약에는 열두 명, 출입문 앞에는 열네 명이 있었다. 끝의 두 사람은 새벽에 연락을 받고 왔지만 원청 명단에도 교육표에도 이름이 없었다.
“은평에서도 처음엔 두 명뿐이었어요.”
마틴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예전 사고를 지금 노동자의 불길한 예고로 만들지도 않았다. 그는 출입문을 가리키며 지금 확인할 수 있는 것부터 말했다. 누가 불렀는지, 어느 하청 소속인지, 오늘 임금을 누가 지급하는지, 중지 신호를 어디서 듣는지였다.
작업반장은 일손이 비어 협력업체에서 급히 보냈다고 했다. 두 사람은 회사 이름은 들었지만 계약서를 보지 못했고, 한 사람은 보호장비를 자기 돈으로 사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마틴은 대신 대답하지 않고 두 사람이 원하는 공개 범위를 먼저 물었다.
한 사람은 이름 공개를 거부했고 다른 한 사람은 업체명까지만 허락했다. 그 선택을 적은 뒤 해당 구간의 출입이 멈췄다. 전체 철거를 영웅적으로 봉쇄한 것이 아니라, 확인되지 않은 노동자가 들어갈 문 하나만 닫았다.
원청과 하청 담당자가 도착해 직접 계약, 당일 임금과 귀가비를 서면으로 확인했다. 이미 기다린 시간도 노동시간에 포함됐다. 보호장비와 유급 교육을 마친 뒤 두 사람은 원·하청 양쪽 명부에 같은 이름과 같은 시각으로 등록됐다.
마틴은 새 명부를 혼자 승인하지 않았다. 작업자 본인, 현장 책임자와 독립 확인자가 차례로 읽고 서명했다. 예전에 자기가 본 일을 이제야 말한 사람이 새 문지기가 되는 결말을 원하지 않았다.
등록을 마친 작업자 한 명이 왜 공사가 멈췄느냐고 물었다. 마틴은 민재의 이름을 교훈처럼 들이밀지 않았다.
“당신이 여기 있었다는 걸, 나중에 아무도 없었다고 못 하게 하려고요.”
두 사람은 일을 계속할지 다시 선택했다. 한 사람은 들어갔고 다른 한 사람은 계약조건이 맞지 않아 그날 일을 거절했다. 거절한 사람에게도 대기임금과 귀가비가 지급됐다. 명부에 이름을 올리는 일은 작업을 강요하는 서명이 아니었다.
인접 어린이 돌봄시설은 철거 시간 변경을 요청했다. 낮잠 시간과 먼지 측정을 고려해 큰 장비 작업을 오전으로 당기고 통지표를 다시 보냈다.
시간 변경으로 야간조 운전자의 근무가 바뀌었다. 업체는 교대표와 수당을 고치고 기존 운전자에게 취소임금을 지급했다.
최명숙은 현장 울타리 밖 주민 질문창구를 맡았다. 직접 답할 수 없는 소유·보상 질문은 담당과 회신일을 적어 넘겼다.
한 주민은 벽돌 하나를 가져가고 싶다고 했다. 철거 중 임의 반출은 위험해 회수·검사 뒤 선택 가능한 벽돌을 공개 장소에 놓기로 했다.
검사 통과한 벽돌 가운데 여섯 개는 주민들이 가져갔다. 가져간 사람 이름을 기념명단으로 만들지 않고 수량과 안전확인만 기록했다.
새 현장 책임자 윤재성은 화양2 경험을 바탕으로 경고망을 점검했다. 산수역뒤 현장 책임자가 최종 승인권을 가졌다.
인접 점포 두 곳은 오전 영업을 늦췄다. 휴업비와 청소비는 철거계약에 따라 지급됐다.
노점 이동도 하루 전에 통지됐다. 임시 자리가 배송통로와 겹쳐 십 미터 옮긴 뒤 당사자가 확인했다.
장하늘은 마지막 벽이라는 제목을 생각했지만 카메라 위치부터 주민에게 물었다. 선자의 얼굴과 새집 주소는 찍지 않았다.
오전 아홉 시, 작업반장이 중지선과 대피 완료를 읽었다. 장비 운전자는 무전 수신을 되풀이해 확인했다.
첫 벽돌이 떨어졌을 때 박수는 없었다. 먼지가 예상보다 많이 나와 윤재성이 손을 들었고 작업이 즉시 멈췄다.
살수장치 노즐 하나가 막혀 있었다. 유급 정비자가 교체하고 인접 통로 먼지를 측정한 뒤 재개했다.
중지시간 노동자 임금은 깎이지 않았다. 작업반장은 일정을 맞추려고 속도를 올리지 않고 공정표를 삼십 분 늦췄다.
벽 안쪽에서 작은 금속상자가 나왔다. 모두가 숨은 비밀처럼 둘러서지 않고 공사를 멈춰 목록 담당을 불렀다.
상자에는 오래된 수도 부품과 영수증이 있었다. 소유자와 장선자에게 사진을 보내 확인한 뒤 폐자재와 분리했다.
선자는 상자를 원하지 않았다. 소유자는 영수증 한 장을 보관하고 나머지 부품은 재활용에 동의했다.
오후가 되자 벽은 허리 높이만 남았다. 마틴은 회수 가능한 벽돌을 골라 새 공공 통로의 낮은 화단에 쓰자고 제안했다.
재사용 비용과 안전검사를 계산했다. 새 벽돌보다 비싸지는 일부만 기념용으로 남기고 나머지는 재활용 업체에 보냈다.
모든 벽돌을 남기지 않았다고 기억을 배신한 것은 아니었다. 쓸 수 있는 만큼과 비용을 정직하게 선택했다.
철거가 끝난 뒤 감사자는 사진보다 먼저 사람·물품·임금·먼지와 통지표를 확인했다. 미완 항목은 인접 통로 포장 한 건이었다.
사업자는 그날 공정을 완료 처리하려 했다. 감사자는 통로가 열리기 전에는 완료가 아니라고 반려했다.
다음 날 포장이 끝나고 노점·점포가 실제로 통과해 봤다. 휠체어 바퀴가 한 모서리에 걸려 다시 다듬었다.
장선자는 새집에서 재봉상자를 열었다. 사진 두 장은 서랍에 넣고 고장 난 가위는 조민석 수선점에 맡겼다.
조민석은 수리가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선자는 새것으로 바꾸지 말고 손잡이만 쓸 수 있으면 된다고 했다.
하늘의 기사에는 벽이 무너지는 연속사진이 없었다. 이주 확인, 먼지 중지, 마지막 물건과 통로 검수의 순서가 표로 실렸다.
어떤 댓글은 결국 다 허물었다고 비웃었다. 최명숙은 위험한 벽을 남기는 것이 골목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라고 답했다.
합의된 철거는 패배의 다른 이름이 아니었다. 사람이 먼저 옮기고 물건과 임금, 통로를 확인한 뒤 위험을 없애는 지역의 선택이었다.
마지막 벽 자리에는 높은 기념비를 세우지 않았다. 낮은 화단과 넓어진 길, 선자가 시장으로 가는 버스시간표가 작은 안내판에 함께 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