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아침 현장에는 굴착기 대신 철제 지지대와 목재 받침이 들어왔다. 독립 점검자가 허용한 일은 바깥에서 벽을 받칠 준비와 접근 금지선 확대였다.
윤태식은 작업 전 허용 목록을 소리 내어 읽었다. 벽돌 제거, 비계 해체, 장비 진동은 금지됐고 자재를 벽에서 세 미터 밖에 내려놓는 일만 가능했다.
정호진은 전날 퇴근표를 그대로 제출했다. 대기시간 지급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기록을 한 줄로 줄이지 않았다.
오전 아홉 시 이십 분, 동쪽 외벽 위에서 손바닥만 한 벽돌 조각이 떨어졌다. 아무도 다치지 않았고 금지선 안 바닥에 부딪혀 부서졌다.
태식은 호루라기를 불고 전 구간을 비웠다. 낙하 위치와 사람들의 이동을 확인한 뒤 인접 점포 대피를 요청했다.
세탁소 임대인은 전날 밤 등기 문자와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실제 가게를 쓰는 세입자 임소라의 이웃은 아침 손님을 받다가 현장 직원에게 들었다.
건물 등기 명부에 적힌 사람에게는 `안전 확인 전 출입 제한`이라는 정식 문서가 갔다. 세입자에게는 `잠시 나와 달라`는 짧은 말만 전달됐다.
점포 안에서 일하던 재봉 노동자 두 명은 누구에게도 직접 통지를 받지 못했다. 사장이 서둘러 나가라고 해서 가위와 작업물을 두고 나왔다.
마틴은 펜스 밖 임시 집결지에서 사람을 세지 않았다. 점포별로 마지막으로 본 사람과 평소 작업시간을 적어 빠진 사람이 없는지 확인했다.
야간 청소를 마치고 창고에서 쉬던 노동자 한 명이 뒤늦게 나왔다. 공식 점유 명부에는 주소도 계약도 없어 첫 통지 대상에서 빠져 있었다.
소라는 그 사람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고 접수번호를 붙였다. 대피 확인에는 필요하지만 건물주에게 체류 사정 전체를 알릴 이유는 없었다.
경찰과 소방 인력이 현장 외곽을 넓혔다. 주민들은 구조가 끝났다는 식의 사진을 찍지 않고 출입선과 점포별 확인표를 유지했다.
임대인 한 명은 건물이 자기 소유이니 먼저 들어가 귀중품을 꺼내겠다고 했다. 태식은 소유권과 현장 안전 출입 승인은 다른 문제라며 막았다.
세입자는 오늘 납품할 원단이 안에 있어 계약 위약이 생긴다고 항의했다. 임대인은 자기 건물 손상부터 확인해야 한다고 맞섰다.
미라는 전화 회의에서 두 요구를 순서로 나눴다. 구조 점검 뒤 짧은 동행 출입, 생계 물품과 위험 자료 우선, 소유 상태 확인은 그다음이었다.
독립 점검자는 점포마다 십 분씩 두 명이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한 명은 점검자, 한 명은 실제 사용자였고 임대인은 세입자와 같은 순서를 기다렸다.
첫 동행에서 재봉 노동자는 원단과 주문표를 꺼냈다. 사장이 대신 들어가겠다고 했지만 어떤 작업이 급한지는 노동자가 더 정확히 알았다.
세탁소는 손님 옷을 담은 봉투만 꺼내고 기계는 두고 나왔다. 기계 이동은 진동을 만들 수 있어 별도 계획이 필요했다.
야간 창고 사용자는 개인 가방과 약을 챙겼다. 그의 출입은 대피 기록에 남았지만 기사나 공개 명부에는 업종과 이용 시간만 적혔다.
도담도시개발은 인접 점포에 이틀치 임시 영업비와 숙소를 제안했다. 문서는 임대인 수령란만 있어 세입자와 노동자 비용이 섞여 있었다.
소라는 임대인, 세입자, 노동자 세 칸으로 나누라고 요구했다. 건물 사용 손실, 점포 휴업, 당일 임금이 서로 다른 책임이기 때문이었다.
회사는 즉시 금액을 확정하지 못했다. 주민들은 돈이 정해질 때까지 대피를 거부하지 않고 먼저 최소 식사·교통·임시 공간 비용을 지급하게 했다.
지급 창구에는 조합 도장이 아니라 도담도시개발 접수번호가 붙었다. 동화4 조합이 선지급하고 나중에 받아내는 구조를 만들지 않았다.
정호진과 동료들은 오후 작업이 취소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하청 반장은 현장에 들어가지 않았으니 반일만 계산하겠다고 말했다.
태식은 오전 조회와 대피, 자재 이동 시간까지 작업일지로 확인했다. 중지 때문에 생긴 대기도 실제로 현장에 묶인 노동이라고 원청에 제출했다.
한규철은 원청이 지급을 보장하면 하청도 전일을 인정하겠다고 했다. 책임이 아래로만 밀리지 않도록 원청과 하청의 답변 시각을 나란히 적었다.
오후 두 시 임시 대피소로 쓰는 주민센터 회의실이 열렸다. 침상은 없었고 가게 장부와 납품 전화가 뒤엉켰다.
오복순은 떡을 보내려 했지만 미라는 식사 예산이 이미 잡혔는지 확인했다. 음식 선물은 할 수 있어도 대피자의 기본 식사를 호의로 메우지 않기로 했다.
박도경 인수팀 직원이 현장을 찾았다. 그는 새 조례가 통과되면 이런 통지가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지만 주민들은 오늘 적용할 임시 합의부터 서명해 달라고 했다.
구청 안전부서는 대피 명령 범위와 귀가 조건을 문서로 보냈다. 임대인에게만 보낸 최초 연락은 잘못이었다고 인정하고 실제 사용자 연락망을 받았다.
연락망은 선거 때 만든 생활권 표를 그대로 공개하지 않았다. 점포별 담당자가 통지 수령 여부만 회신하고 개인 번호는 구청과 현장 책임자에게 제한됐다.
장하늘은 펜스 밖 대피를 취재했다. 벽돌 조각 사진보다 세 종류의 통지문을 찍었고 누가 무엇을 받지 못했는지 기사 중심에 뒀다.
한 방송은 겁에 질린 세입자 얼굴을 요청했다. 소라는 임시 공간과 작업물만 촬영하게 했고 사람 얼굴은 각자 동의를 받은 경우에만 허용했다.
저녁 구조 점검은 동쪽 외벽 상단 일부가 느슨하다고 판단했다. 벽을 바로 철거하지 않고 외부 지지와 내부 접근 금지를 유지하라는 결론이었다.
귀가 가능한 점포와 불가능한 점포가 갈렸다. 남쪽 두 곳은 저녁 영업을 재개했고 동쪽 세 곳은 최소 사흘 대피가 필요했다.
주민들은 전원 안전이라는 한 문장으로 닫지 않았다. 돌아간 사람의 영업과 남은 사람의 숙소, 노동자의 다음 출근이 각각 달랐다.
임대인은 건물 수리 견적을 요구했고 세입자는 납품 지연 확인서를 요구했다. 노동자는 임금 확인서를 요구했다. 세 서류는 같은 접수번호 아래 별도 묶음이 됐다.
윤태식은 대피가 과도했다는 회사 내부 의견을 일지에 첨부했다. 동시에 떨어진 벽돌의 위치와 점검 결과, 대피로 줄인 노출 시간을 적었다.
정호진은 동료들과 숙소로 돌아가기 전 다음 날 보강 작업 범위를 물었다. 한규철은 점검 결과에 따라 일부 작업이 다시 열릴 수 있다고 했다.
태식은 구두로 듣지 말고 아침 조회 전에 허용 목록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전날의 모호한 예외가 다시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밤에는 비가 조금 내렸다. 펜스 안 느슨한 벽돌 아래로 방수포가 설치됐고 대피소에는 점포별 필요한 물품 목록이 붙었다.
마틴은 마지막 통지 확인표에서 임대인 수령 여섯, 세입자 수령 다섯, 노동자 직접 수령 셋을 확인했다. 숫자가 다른 이유를 빈칸으로 두지 않았다.
다음 날에는 같은 상황을 가정한 통지 연습을 했다. 건물주가 전화를 받지 않았을 때 세입자와 야간 노동자에게 순서대로 닿는지 확인했고, 마지막 사람이 수령한 시각까지 걸린 시간을 공개했다.
첫 연습은 십구 분이 걸렸고 외국어 설명 한 건이 빠졌다. 통역 담당의 근무시간을 늘리는 대신 야간 비상 통역 수당과 대체 담당자를 계약에 넣어 두 번째 연습을 준비했다.
펜스 밖의 대피는 한 번의 방송과 사이렌으로 끝나지 않았다. 건물을 가진 사람, 가게를 쓰는 사람, 안에서 일한 사람이 서로 다른 통지를 받았다는 사실을 바로잡는 일이었다.
다음 아침 허용 목록에는 외부 지지대 설치와 느슨한 부재의 제한 제거가 적힐 예정이었다. 주민들은 제거라는 한 단어가 무엇까지 포함하는지 도면에 표시해 달라고 요구했다.
대피소 불이 꺼진 뒤에도 그 요구는 현장 결재함에 남았다. 안전을 위해 비운 자리가 다시 열 수 없는 빈 가게가 되지 않도록 돌아올 조건과 비용을 함께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