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장사를 준비하던 오복순이 시장 입구에서 낯선 전단을 주웠다. 맨 위에는 골목생활협동조합이 박도경 후보를 공식 지지한다는 문장이 굵게 찍혀 있었다.
조합 이름 옆에는 붉은 도장까지 있었다. 아래에는 동화4 주민 일동이라고 적혔지만 서미라나 순환대표 두 사람의 서명은 없었다.
복순은 전단을 구겨 버리려다 기록실로 가져왔다. 서미라는 비닐 장갑을 끼고 종이 앞뒤와 접힌 방향, 발견 시각을 먼저 찍었다.
조합 도장은 원래 원형과 달랐다. 글자 사이가 좁고 가운데 점이 하나 빠져 있었다. 그러나 멀리서 보면 충분히 진짜처럼 보였다.
선우는 곧바로 박도경이 위조했다고 쓰지 않았다. 전단에 이익을 보는 후보와 실제로 주문한 사람은 같을 수도, 다를 수도 있었다.
주민들은 유효한 공동 문서의 조건부터 확인했다. 순환대표 두 명의 서명, 도장 사용대장 번호, 총회 의결 날짜가 모두 있어야 했다.
전단에는 세 가지가 하나도 없었다. 조합은 첫 공지에서 `공식 지지문이 아님`이라고만 밝혔고 범행 주체를 추측하지 않았다.
이정훈은 종이를 만져 보고 동네 인쇄소에서 쓰는 재고와 다르다고 했다. 얇은 광택지였고 재단 폭도 자신의 기계 규격보다 길었다.
전단 아래 아주 작은 인쇄 표시는 `새길기획`이었다. 박도경 캠프 홍보물을 납품한 업체와 이름이 같았지만 그것만으로 주문자를 확정할 수는 없었다.
미라는 인쇄소에 원본 파일을 요구하지 않았다. 우선 인쇄소 주문서의 주문일, 부수, 주문자 표시, 결제 방식만 확인해 달라고 서면으로 요청했다.
새길기획은 선거 자료라며 답을 미뤘다. 주민들은 선거관리기관에 가짜 지지문 원본 한 장과 조합의 유효 문서 규칙을 접수했다.
접수 당일 오후 인쇄소는 주문서 일부를 공개했다. 전단 천이백 장, 주문자는 박도경 캠프의 외곽 자원모임 `동네앞날`로 적혀 있었다.
결제는 현금이 아니었다. 동네앞날 대표가 새길기획 계좌로 보낸 배포 비용과 인쇄비가 한 묶음으로 표시돼 있었다.
캠프 본부는 자원모임이 독자적으로 만든 자료라고 답했다. 박도경과 회계 책임자가 정확한 문구를 승인한 문서는 찾지 못했다고 했다.
정유림 캠프는 박도경의 직접 위조가 드러났다고 성명을 내려고 했다. 선우는 주문서가 보여 주는 범위는 외곽 모임과 인쇄업체의 계약까지라고 공개표에 적었다.
그날 저녁 다른 후보를 지지하는 주민이 왜 상대 후보를 보호하느냐고 따졌다. 미라는 사람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확인되지 않은 칸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배포 경로는 종이의 접힌 자국에서 이어졌다. 시장 입구, 버스 정류장, 화양2 펜스 앞에서 같은 묶음 끈과 운반 상자가 발견됐다.
배포 인력 두 명은 새길기획의 일용 작업자였다. 그들은 후보 캠프가 아니라 업체 반장에게 장소 목록을 받았다고 말했다.
장소 목록에는 동화4 조합 사무실 앞이 `핵심 인증 구역`이라고 적혀 있었다. 조합과 합의했다는 표시나 담당자 연락처는 없었다.
주민들은 일용 작업자의 얼굴과 이름을 공개하지 않았다. 지시한 문서와 지급된 노동비는 확인하되 가장 약한 고리를 범인처럼 내세우지 않았다.
새길기획 대표는 조합이 박 후보 정책에 우호적이라는 자원모임 설명을 믿었다고 했다. 도장 모양은 이전 공개 안내문의 사진을 보고 다시 그렸다고 인정했다.
누가 `공식 지지` 문장을 처음 썼는지는 주문서 첨부 메모에도 없었다. 자원모임 대표와 업체는 서로 상대가 가져왔다고 주장했다.
박도경은 긴급 회견에서 자기 캠프의 공식 승인 없이 배포됐다고 말했다. 동시에 자기 이름으로 이익을 얻은 자료이므로 회수와 정정 비용은 캠프가 부담하겠다고 했다.
조합은 그 약속을 면책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회수 수량, 남은 전단, 정정문 부수, 비용 출처를 다음 날 정오까지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천이백 장 가운데 확인된 배포는 팔백서른 장이었다. 창고에 남은 이백 장은 봉인됐고, 나머지 백일흔 장의 위치는 알 수 없었다.
정정문에는 단순히 오해라고 쓰지 않았다. 조합 의결이 없었고 서명과 도장 사용대장 번호가 없다는 판별 기준을 넣었다.
동네앞날은 활동을 중단했지만 주민들은 단체 이름을 명단에서 지우지 않았다. 대표의 해명과 주문서, 비용표, 박 캠프의 회수 약속을 한 묶음으로 보관했다.
이정훈은 정정문을 자기 인쇄소에서 맡아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는 이해관계를 공개하고 다른 인쇄소 두 곳의 견적도 함께 받게 했다.
조합은 가장 싼 곳을 자동 선택하지 않았다. 최초 배포 장소를 같은 날 되짚고 수령 확인표를 남길 수 있는 업체를 골랐다.
정정 배포 노동자에게도 약속한 시급이 지급됐다. 처음 전단을 나른 사람에게 회수 책임을 무급으로 떠넘기지 않았다.
화양2 펜스 앞에서는 주민들이 전단과 정정문을 나란히 붙였다. 어떤 문장이 가짜였는지 원본을 보지 못하면 정정이 새 선전처럼 보일 수 있었다.
마틴은 외국인 작업자에게 조합이 특정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설명했다. 자신이 누구를 선호하는지는 그 설명 뒤에 따로 말했다.
하늘은 기사 제목에서 `후보 위조`를 뺐다. 대신 인쇄소 주문서와 배포 비용이 확인한 현재 경로, 아직 확인되지 않은 문구 작성자를 구분했다.
기사 아래에는 조합 문서 판별법이 실렸다. 이름과 도장만 보지 말고 의결 날짜, 서명, 사용대장 번호를 함께 확인하라는 내용이었다.
박도경 캠프는 외곽 조직 관리가 부족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박도경이 가짜 지지문의 정확한 문장을 직접 지시했는지는 끝내 확인되지 않았다.
캠프가 제출한 새 관리안에는 외곽 모임의 이름, 담당자, 예상 지출과 인쇄물 사전 확인란이 있었다. 조합은 선거가 끝나기 전 두 차례 실제 등록 기록을 공개해 제도가 종이로만 남지 않게 하라고 했다.
첫 등록에는 거리 유세 차량과 자원봉사 간식비가 들어갔고, 두 번째에는 추가 홍보물이 없다고 적혔다. 주민들은 내용의 선악보다 누가 확인하고 언제 수정할 수 있는지 절차를 보았다.
선거관리기관은 회수되지 않은 백일흔 장이 발견되면 원본을 보존하고 배포 장소만 신고하라고 안내했다. 주민들은 전단을 본 사람에게 정치 성향이나 투표 선택을 묻지 않는다는 문구를 신고함 앞에 붙였다.
주민들은 그 미확인을 빈말로 두지 않았다. 캠프가 외곽 자원모임의 지출과 인쇄 주문을 이후 어떻게 사전 등록할지 답변 기한을 붙였다.
사흘 뒤 마지막 정정문이 버스 정류장에 붙었다. 누군가 최초 전단 위에 후보 비난 낙서를 했지만 미라는 사진만 남기고 지웠다.
가짜를 밝히는 일이 새 과장을 허락하지는 않았다. 조합이 원한 것은 상대편 선전물이 아니라 자기 이름의 사용 조건이었다.
총회에서는 도장을 더 화려하게 바꾸자는 제안이 나왔다. 선우는 모양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보다 유효 절차를 주민이 아는 편이 낫다고 했다.
도장함 옆에는 사용대장 사본과 대표 임기표가 붙었다. 누구나 공식 문서를 확인할 수 있었지만 빈 도장을 미리 찍을 수는 없었다.
선거가 계속되는 동안 비슷한 전단은 다시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배포망이 사라졌다고 단정하지 않고 인쇄·비용 공개 약속을 선거 뒤 점검표에 남겼다.
골목 이름은 한 번 종이에 도둑맞았지만 주민들은 그것을 한 후보의 영원한 죄나 다른 후보의 무기로 넘기지 않았다.
가짜 지지문 한 장은 서명 없는 환호보다 주문한 사람, 인쇄한 사람, 돈을 낸 사람, 나른 사람의 서로 다른 책임을 묻는 기록으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