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 가림막이 걷힌 뒤 첫 겨울이 왔다. 북쪽 두 동이 있던 자리에는 낮은 상가 건물과 작은 마당이 생겼고, 보존한 남쪽 가로변에는 오래된 간판이 그대로 걸려 있었다.
고시에 적힌 14개월 공정은 마지막 금요일에 끝났다. 날짜가 밀리지 않았다는 사실보다 철거 범위가 북쪽 두 동과 비어 있던 안쪽 대지에서 더 넓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주민들은 먼저 확인했다.
골목생활협동조합 기록실에는 완공 사진보다 확정 정산표를 보러 오는 사람이 많았다. 어느 날 오전, 낯선 세 사람이 두꺼운 복사 묶음을 들고 찾아왔다.
“화양2구역에서 왔습니다.” 앞에 선 임소라가 말했다. 그는 작은 봉제 마감 작업장을 임차해 쓰고 있었다. “동화4처럼 해 달라고 요구하려고요.”
복사 묶음 첫 장에는 마틴의 관리번호 A-1과 구백팔십만 원 영업 이전·휴업분, 이백사십만 원 주거 이전비가 굵게 표시돼 있었다.
다음 장에는 비공개 반지하 가구 삼백십만 원, 야간 재봉 점포 오백사십만 원, 최봉수 칠백이십만 원이 색칠돼 있었다. 금액만 떼어 새로운 요구표처럼 만든 자료였다.
오선우는 그 종이를 빼앗지 않았다. 대신 원본 확정 정산표와 기준 설명을 같은 탁자에 폈다.
“이건 동화4 당사자의 실제 점유 기간, 장비, 휴업일, 이사 조건으로 정한 금액입니다. 화양2의 단가표가 될 수는 없습니다.”
소라는 그런 말은 개발사도 한다며 굳었다. 동네마다 다르다는 말로 언제나 더 적게 준다는 것이었다.
선우는 부정하지 않았다. 다만 다르다는 말을 권리 축소에 쓰는 것과 실제 자료를 새로 확인하는 일은 구분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동화4에서 복구된 실제 점유자 다섯 명 표를 보여 줬다. 이름이 돌아온 뒤에도 각자의 법적 지위와 비용은 별도로 심사했다는 주석이 붙어 있었다.
의심 점포 세 건도 숨기지 않았다. 한 곳은 보증금과 실제 입점 준비비만 인정되고 영업손실은 빠졌으며, 두 곳은 주소와 당사자 근거가 확인되지 않아 지급액 0원으로 닫혔다.
소라 옆의 세탁소 세입자는 0원 판정이 주민을 버린 것 아니냐고 물었다. 선우는 실체가 확인되지 않은 칸에 돈을 적지 않는 일과 실제 사람을 명부에서 지우는 일은 반대 방향의 같은 정확성이라고 답했다.
가람개발 하청의 근거 없는 현장 협조비 칠백팔십만 원 반환 기록도 꺼냈다. 반환됐다고 보상액에 나눠 얹지 않았고 조합 계좌로 돌려놓은 뒤 별도 감사로 닫았다는 설명이 붙었다.
윤태식의 책임표에는 수정 명단 전송과 확인 없는 완료 결재가 남아 있었다. 제보를 했다는 이유로 실행 책임이 지워지지 않았다.
박도경 관련 확정란도 그대로였다. 은평 안전 간담회 참석과 사무실의 사고 요약 수신은 확인됐지만 개인 삭제 지시는 입증되지 않았다. 선우는 빈칸에 새 추측을 채우지 않았다.
화양2 주민 셋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들이 듣고 싶었던 것은 이긴 방법이었지만 선우가 꺼낸 것은 인정받지 못한 비용과 닫힌 의심, 남은 책임이었다.
서미라는 협동조합 결산 파일을 탁자에 놓았다. 공사 완료 뒤 첫 열두 달 적립금이 삼백육십만 원이라는 표와 이정훈의 인쇄, 마틴의 배송에 노동비를 지급한 내역이었다.
“우리가 공짜로 밤을 새서 성공한 게 아니에요.” 미라가 말했다. “할 수 있는 일만 돈 주고 했고, 못 한 건 못 했다고 적었습니다.”
소라는 화양2에는 그런 돈도 조직도 없다고 했다. 건물주 모임은 있지만 야간 작업자와 주소 없는 창고 사용자는 회의에 들어오지 못했다.
마틴은 자기 계약서가 없던 때부터 설명했다. 동화4 표를 복제하기 전에 화양2에서 실제로 문을 열고 일하고 자는 사람부터 따로 세야 한다고 했다.
세탁소 세입자는 이미 개발사 현황조사가 끝났다고 말했다. 선우는 조사 완료 날짜, 조사자, 부재 방문 방식, 이의 접수창구를 물었다. 셋은 답을 알지 못했다.
그 질문이 첫 자문 목록이 됐다. 보상액은 마지막 칸으로 밀고 실제 점유 확인과 통지, 안전 상태, 계약 형태를 앞에 놓았다.
장하늘도 기록실에 들렀다. 다른 골목이 동화4 모델을 수입한다는 제목을 생각했다가 선우의 표를 보고 노트를 덮었다.
“성공 모델이라고 쓰면 안 되겠네요.”
“쓰지 말라는 게 아니라, 무엇이 끝났고 무엇을 못 했는지 같이 써 주세요.” 선우가 답했다.
하늘은 화양2 주민에게 취재 동의를 따로 물었다. 동화4 기록 공개에 동의했다고 새 동네 사람의 이름과 사정까지 기사에 쓸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소라는 작업장 주소를 공개하지 않고 업종과 점유 시간만 말하기로 했다. 세탁소 세입자는 이름 공개에 동의했지만 임대료는 비공개로 뒀다.
오후에는 화양2 현황조사 안내문 사본이 도착했다. 점유 확인 이의 기간이 닷새였고, 야간 영업자를 위한 방문 시간이나 별도 접수는 없었다.
선우는 동화4 접수번호를 새 문서에 옮기지 않았다. `DH4-2026-0402-0917`은 동화4 자료를 받은 번호일 뿐 다른 구역의 권리를 보장하는 만능 표가 아니었다.
대신 화양2 주민이 자기 접수번호와 사본을 받을 방법부터 찾기로 했다. 구청 담당 부서와 현장 조사 업체에 같은 질문 목록을 보냈다.
협동조합 사람들은 외부 자문을 받을지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기록실을 보여 준 한나절도 누군가의 유급 노동 시간이었다.
미라는 다음 회의 안건에 외부 요청의 범위와 비용을 올렸다. 선우가 좋은 뜻으로 남아서 계속 설명하는 방식은 금지하자고 적었다.
화양2 주민들은 성공담 대신 실패 목록 한 부를 들고 돌아갔다. 개별합의 압박에 흔들린 날, 잘못 베낀 숫자, 늦은 정정, 공사 중 영업 손실, 선택하지 못한 공간이 적혀 있었다.
소라는 문 앞에서 다시 물었다. “그래도 동화4처럼 될 수는 있습니까?”
선우는 확답하지 않았다. “동화4와 같아질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사람을 지우지 않고 결정할 기준은 같이 만들 수 있습니다.”
저녁 기록실에는 화양2 자료를 위한 빈 상자가 하나 놓였다. 동화4 확정 정산표와 섞지 않도록 색도 번호도 달리했다.
오복순은 그 상자를 보며 또 일이 생겼다고 혀를 찼다. 그러면서도 떡을 세 봉지 싸서 화양2 사람 편에 보냈다. 자문비와 떡값을 같은 미담으로 계산하지 않았다.
다음 날 소라는 화양2 세입자 일곱 명의 작업 시간을 다시 받아 왔다. 낮에 문이 잠긴 점포도 밤에는 재봉틀이 돌았고, 주소가 다른 창고에도 사람이 여섯 시간씩 머물렀다. 동화4의 방문 시간표를 그대로 썼다면 또 비어 있었을 칸이었다.
선우는 화양2 현황조사표 귀퉁이에 `동화4 금액 참조 금지`라고 적었다. 대신 계약서가 없는 경우 무엇으로 점유를 확인할지, 전기 사용과 납품 영수증 가운데 어느 범위까지 당사자가 공개할지 선택란을 만들었다.
미라는 자료를 많이 내는 사람이 더 많은 권리를 얻는 것처럼 보여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주민들은 증빙이 부족한 사유와 자료 제출을 거부한 사유를 분리하고, 비공개 면담으로 보완할 날짜를 두기로 했다.
소라는 처음 들고 온 색칠된 복사본을 버리지 않았다. 왜 남의 금액이 자기 골목의 답처럼 보였는지 설명하는 자료로 봉투에 넣었다. 개발사의 낮은 일괄액과 주민이 베낀 높은 금액 사이에서 실제 사람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경고였다.
첫 현황 회의 날짜는 야간 작업자가 쉬는 수요일 오전과 토요일 저녁 두 차례로 잡혔다. 같은 설명을 두 번 하는 노동도 상담 예산에서 지급하기로 했다.
완공된 골목은 다른 골목의 답이 되지 않았다. 북쪽 두 동의 철거와 남쪽 보존, 14개월 일정, 확정 보상과 0원 사유가 바뀌지 않은 채 한 사례로 남았다.
그날부터 사람이 남는 도면은 동화4의 완공 사진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먼저 따라간 것은 보상 숫자가 아니라, 숫자를 쓰기 전에 누구에게 무엇을 물었는지 적은 실패 비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