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현장검증 날 아침, 골목 입구에는 노란 조끼를 입은 구청 직원 세 명과 조합 실무자 둘이 서 있었다. 가람개발 직원은 봉인 스티커와 점유표를 든 채 뒤쪽에 있었다. 선우는 먼저 참석자 명단과 검증 범위를 읽었다. 공용 공간과 동의가 있는 점포만 들어가고, 잠긴 문은 건물주나 당사자 없이 열지 않는다는 원칙이었다.
“오늘 문이 닫혀 있으면 없는 점포로 처리합니까?”
마틴이 물었다.
구청 책임자가 고개를 저었다. “부재 한 번으로 결론 내리지 않습니다. 연락 시도와 다른 자료를 함께 기록하겠습니다.”
그 대답도 현장조서 첫 장에 들어갔다. 장하늘은 조서가 보이도록 촬영하되 서명과 연락처가 나오지 않게 각도를 잡았다. 공개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파란 스티커를 문에 붙였고, 그 점포 앞에서는 카메라를 내렸다.
첫 순서는 마틴의 수리점이었다. 셔터가 올라가자 벽면 공구, 수리 대기표, 부품 거래명세가 보였다. 그는 수리점 오 년과 현재 방 거주 이 년을 각각 설명했다. 구청 직원은 전기 계량기 번호와 임대료 이체 기간을 대조하고 ‘영업 점유 확인, 주거 점유 별도 확인’이라고 적었다.
조합 실무자가 말했다. “계약서가 없어서 권리 판단은 별도입니다.”
“그건 알고 있습니다.” 마틴이 답했다. “오늘은 내가 여기 없다는 표시부터 고치는 날이잖아요.”
현황표에서 ‘임시 사용 확인 중’이라는 문구가 지워지고 ‘실제 영업 점유 확인’으로 바뀌었다. 그것은 보상 금액을 정한 결정이 아니었지만, 마틴은 수정된 문장을 소리 내어 두 번 읽었다.
뒤편 반지하 거주자는 문을 열지 않고 복도에서 직원과 만났다. 동의한 수도·전기 자료와 이체 내역만 건넸다. 아이가 있는 방 내부는 촬영하지 않았다. 직원은 가족 수나 이름을 공개 조서에 적지 않고, 실거주 여부와 확인 자료 종류만 남겼다.
오복순의 떡 배달 장부가 생활 자료로 쓰인 두 공간도 확인됐다. 한 곳은 낮에 일하러 나간 사람이 저녁에 돌아오는 방이었고, 다른 한 곳은 창고처럼 보이지만 밤에는 재봉 작업을 하는 점포였다. 카드매출이 없다는 이유로 비어 있다고 적었던 칸이 현장 작업대와 전기 사용 기록으로 고쳐졌다.
정오가 가까워질 무렵 칠 번 점포 문이 열렸다. 내부에는 며칠 전 없던 접이식 탁자와 새 가격표가 놓여 있었다. 조합 실무자는 영업 준비 중인 점포라고 설명했다. 선우는 새 물건이라는 인상만으로 꾸민 공간이라고 단정하지 않았다.
구청 직원이 명단 속 세입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상대는 해당 주소에 임대차 계약을 썼지만 실제로 영업을 시작하지는 못했다고 답했다. 보증금 일부를 냈고, 입점 시기는 계속 미뤄졌다고 했다. 통화 내용은 본인 동의를 받아 요약됐고 ‘계약 주장 있음, 실제 영업 점유 미확인’으로 기록됐다.
네 번 점포의 명단 당사자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전기는 공용등 수준이었고 내부는 공사 자재 창고였다. 임대인은 열쇠 제공 비용 설명을 반복했지만 세입자 확인 자료는 내지 못했다. 세 번째 의심 점포는 카드매출 사본의 상호와 주소가 다른 구역 점포로 확인됐다.
세 곳은 현황표에서 삭제되지 않았다. 대신 실제 점유 확인표와 분리된 ‘계약·영업 실체 추가 검증’ 부록으로 옮겨졌다. 그에 따라 영업손실 추정액도 본 보상 기초표에서 빠지고 보류표로 이동했다. 추후 자료가 확인되면 다시 판단할 수 있다는 문장도 붙었다.
“왜 그냥 빼지 않죠?”
서미라가 물었다.
구청 책임자가 답했다. “허위라고 최종 판단한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만 실체가 확인된 사람과 같은 표에서 금액을 계산할 수는 없습니다.”
서미라는 그 말을 현장조서에서 직접 확인한 뒤에야 서명했다. 실제 점유자 다섯 사람은 본 현황표로 돌아왔고, 세 점포는 별도 검증 부록으로 갔다. 숫자는 같아 보였지만 이제 서로 다른 상태를 뜻했다.
오후 공개회의는 시장 공동창고에서 열렸다. 이정훈이 수정 전후 현황표를 큰 종이로 출력해 벽에 붙였다. 사람들은 자기 이름 대신 관리번호로 공개할 수 있었고, 본인에게는 실명이 적힌 개별 확인서를 나눠 줬다.
회의 시작 십 분 전, 최봉수가 조합에서 받은 새 합의서를 들고 왔다. 오늘 안에 서명하면 이주 준비금을 먼저 검토하겠다는 문장이 있었다. 봉수는 종이를 접지 않은 채 선우에게 내밀었다.
“오늘 현장검증 끝나기 전에 답하라고 했어요.”
선우는 합의서를 빼앗거나 서명하지 말라고 명령하지 않았다. 설명을 들은 시각, 상대가 제시한 답변 기한, 동행인이 없었다는 사실을 적었다. 서미라는 공개회의 안건에 ‘당일 답변 요구’를 추가했다.
박 씨는 회의장 뒤쪽에 앉았다. 자기 이름이 불리지 않기를 원했지만, 임대차 갱신 압박과 개별 합의에 관한 절차는 말하고 싶다고 했다. 장하늘은 그의 자리를 찍지 않았고, 서미라가 익명 문장으로 대신 읽었다.
“공동행동 참여 여부 때문에 계약이나 설명 기회에 불이익이 생기지 않도록, 모든 접촉을 기록하고 답변 시간을 달라.”
조합 측은 처음에 민간 임대차까지 책임질 수 없다고 했다. 선우는 책임을 모두 떠넘기는 문장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조합이나 용역사가 공동행동 참여 정보를 임대인에게 전달하지 않을 것, 개별합의 제안에는 검토 기간과 동행 가능성을 적을 것, 보복 의심 신고를 구청이 접수할 창구를 둘 것을 요구했다.
마틴이 손을 들었다. “서류를 읽기 어려운 사람도 있어요. 그 자리에서 사인 안 하면 손해라고 말하면 결국 혼자 결정하게 됩니다.”
이정훈도 말했다. “최소 사흘은 원문을 가져가서 읽게 하고, 원하면 법률 상담이나 동행인을 부르게 해 주세요. 사본도 줘야 합니다.”
구청 책임자는 법적 효력을 미리 판단하지 않는 범위에서 절차 문안을 정리했다. 개별합의 당일 서명 요구 금지, 최소 사흘 숙려 권고, 사본 제공, 동행인 참석 허용, 참여·제보를 이유로 한 불이익 의심 접수와 서면 회신. 조합과 가람개발은 해당 절차를 현장 운영지침에 넣겠다고 서명했다.
박 씨가 뒤에서 물었다. “권고면 안 지켜도 되는 거 아닌가요?”
“그럴 수 있습니다.” 선우가 솔직히 답했다. “그래서 제안 시각과 답변 기한을 매번 기록하고, 어기면 구청 회의록과 함께 이의를 제기하는 겁니다. 위험이 사라졌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박 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신보다 한계를 들은 뒤 표정이 조금 풀렸다.
최봉수의 합의서는 그 자리에서 무효가 되지 않았다. 대신 조합은 당일 답변 기한을 철회하고 새 안내문을 보내기로 했다. 봉수는 원본을 가지고 돌아가 독립 상담을 받겠다고 했다. 공동행동이 그의 선택을 대신하지 않되, 지친 시간에 혼자 서명하도록 몰아붙이지 않는 절차가 생겼다.
공개회의 마지막에는 수정 현황표를 관리번호 순서로 한 줄씩 읽었다. 해당 당사자가 틀린 부분을 말하면 즉석에서 지우지 않고 정정 요청란에 적었다. 마틴은 영업 기간 오 년, 거주 기간 이 년이라고 다시 고쳤다. 서미라는 명부 밖 진술자 가운데 공개를 원치 않는 사람은 별도 비공개 부록에 남는지 확인했다.
장하늘은 회의가 끝나도 바로 기사를 보내지 않았다. 수정 조서 사본과 참석자 확인, 조합·가람개발의 최종 문구를 대조했다. 박 씨에게는 익명 문장이 약속대로 쓰였는지 다시 읽어 줬다. 봉수에게는 합의서 금액과 이름을 싣지 않겠다고 확인했다.
저녁 기사 제목은 ‘동화4구역 실제 점유자 다섯 명 현황표 복구, 세 점포 별도 검증’이었다. 본문은 보상 결정이 아니라 점유 확인 절차의 시정이라고 분명히 했다. 숙려와 동행 절차도 법률상 모든 분쟁을 막는 방패가 아니라 현장 운영 약속이라고 썼다.
해가 지자 마틴은 수리점 셔터에 붙어 있던 이름 종이를 조심스럽게 떼어 투명 파일에 넣었다. 이름들이 현황표로 옮겨졌다고 해서 종이가 쓸모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어디서 시작했는지 잊지 않기 위해 보관하는 첫 기록이 됐다.
오복순은 떡집 앞 의자를 정리하며 수정된 현황표를 한참 봤다. “이제 사람 있는 데 사람 있다고 썼네.”
선우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골목이 남는다는 결정은 아직 없었다. 누구에게 얼마가 돌아갈지도 정해지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이 있는 점포와 비어 있는 점포가 같은 숫자로 취급되던 표는 끝났다. 각자의 문을 두드리고 대답을 기다린 시간이, 처음으로 공식 문장의 순서를 바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