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오전 여덟 시, 이정훈의 인쇄소 재단기 위에 보상 산정표 마흔두 장이 펼쳐졌다. 윤태식이 조합 서버에서 예전에 업무용으로 내려받아 둔 사본과 구청이 정보공개 답변으로 보낸 파일이었다. 두 사본의 생성 시각은 달랐지만 표의 행 번호와 기초 금액은 같았다. 선우는 원본이라고 부르지 않고 ‘업무 사본’과 ‘공개 사본’이라고 적었다.
실체 미확인으로 분류한 칠 번 점포 행에는 영업 기간 열여덟 달과 월평균 매출이 들어 있었다. 그 숫자로 계산된 영업손실 추정액도 있었다. 반면 오 년째 수리점을 운영한 마틴의 행은 없었고, 뒤편 반지하 거주자의 이주 검토 칸은 비어 있었다.
“가게가 비었는데 매출 숫자는 어디서 왔죠?”
마틴이 물었다. 윤태식은 산정표 아래쪽 작은 주석을 가리켰다. ‘신고자료 및 임대인 확인.’ 어느 신고자료인지, 누가 확인했는지는 적혀 있지 않았다.
선우는 칠판을 세 칸으로 나눴다. 왼쪽에는 확인된 문서, 가운데에는 당사자 설명, 오른쪽에는 ‘미확정 질문’을 적었다. “산정액이 있다는 건 사실입니다. 실제 지급됐다는 뜻은 아닙니다. 매출 숫자의 출처와 점유 실체는 아직 답이 없어요.”
서미라는 붉은 펜을 들었다가 검은 펜으로 바꿨다. “빨간색으로 연결하면 벌써 범인표 같아 보여요.”
외부 회계 검토자는 각 파일의 합계보다 거래 식별 문구와 날짜를 먼저 보라고 했다. 조합은 가람개발에 ‘현황조사 및 이주협의 용역비’를 지급했다. 가람개발은 사흘 뒤 하청업체에 ‘공실 정리·점유 조사비’를 보냈다. 그 하청업체는 같은 주 두 건물 임대인에게 각각 ‘현장 협조비’를 지급했다.
그중 한 건물은 박 씨가 가게와 임차 공간을 쓰는 곳이었다. 등기사항과 계좌 예금주가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은 확인됐다. 그러나 현장 협조비가 명부 작성의 대가인지, 열쇠 제공과 폐기물 처리 비용인지, 다른 용역 대금인지는 이체 내역만으로 알 수 없었다.
박 씨는 오후에 인쇄소로 왔다. 공동행동 회의 때보다 표정이 더 굳어 있었다. 서미라는 돈 표를 보여 주기 전에 자료 열람 범위를 설명했다. 박 씨가 원하지 않으면 집주인 문자와 계약서는 꺼내지 않겠다고 했다.
“보여 주세요.”
박 씨가 먼저 말했다. 그는 휴대폰에서 계약 갱신을 언급한 문자를 열었다. 공동행동에 이름을 올리면 다음 계약은 어렵다는 문장과, 며칠 뒤 ‘현장 확인에 협조해 달라’는 문장이 이어져 있었다. 발신자가 임대인이라는 사실은 확인됐지만 그 말이 가람개발 지시였다는 증거는 없었다.
“내가 서명 안 한 이유는 이거예요.” 박 씨는 화면을 끄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 문자를 누가 시켰다고 쓰지는 마세요. 나는 모릅니다.”
장하늘은 그대로 받아 적었다. “모른다는 말까지 포함하겠습니다. 기사에 문자 원문을 싣는 건 별도 동의가 필요해요.”
박 씨는 원문 공개에는 동의하지 않고, 갱신 압박을 받았다는 사실을 익명으로 쓰는 데만 동의했다. 이정훈이 범위 확인서를 출력하자 박 씨가 직접 읽고 서명했다. 그것은 공동행동 참여 서명이 아니라 자기 자료 사용 범위를 정한 서명이었다.
오후 두 시, 건물주 대리인과의 면담이 떡집 앞 탁자에서 열렸다. 그는 현장 협조비가 빈 점포 열쇠를 내주고 폐기물을 치우는 비용이었다고 설명했다. 박 씨 계약에 관한 문자는 개인적인 임대 판단이었고 조합과 상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선우는 같은 질문을 세 번 바꾸어 묻지 않았다. 대신 열쇠 인계서, 폐기물 처리 영수증, 협조비 산정 근거를 서면으로 달라고 했다. 대리인은 열쇠 인계서가 있다고 했지만 그날 가져오지는 않았다. ‘제출 예정’이라는 말은 확인된 문서 칸이 아니라 설명 칸에 들어갔다.
가람개발은 서면 답변에서 하청업체에 점유 조사를 맡긴 사실을 인정했다. 유령 점포를 만들거나 특정 임대인에게 명부 기재를 요구한 적은 없다고 부인했다. 조합은 산정표가 협상 전 내부 추정치일 뿐 지급 대상 확정표가 아니라고 했다. 하청업체는 답변 기한까지 구체적인 자료를 보내지 않았다.
장하늘이 칠판을 보며 말했다. “그래도 화살표는 그릴 수 있잖아요. 조합, 가람개발, 하청, 임대인. 돈이 같은 주에 움직였으니까.”
“거래 경로 화살표는 그릴 수 있어요.” 선우가 답했다. “하지만 화살표 위에 ‘명부 조작 대가’라고 쓰면 안 됩니다. 지금 확인된 건 지급 주체, 수취 주체, 날짜와 문서상 명목이에요.”
윤태식은 가장 끝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는 자신이 현황조사 완료 확인란에 결재선을 올렸다고 말했다. 현장을 모두 확인하지 못한 상태에서 하청 보고서를 받아 조합으로 넘겼고, 공실 표본만 봤다고 했다.
“책임이 없다는 말은 안 하겠습니다. 확인하지 않은 걸 확인한 것처럼 올렸으니까요.”
서미라가 그를 봤다. “그때도 빈칸을 남겼어요?”
태식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때는 남이 채운 칸을 그냥 통과시켰습니다.”
그 말은 회계 자료와 별도의 진술로 기록됐다. 태식의 결재 사실은 파일 이력으로 확인됐지만 그가 돈의 목적이나 허위 세입자를 알았는지는 더 확인해야 했다. 선우는 태식의 인정과 추정되는 동기를 한 문장에 넣지 않았다.
외부 회계 검토자는 산정표의 월평균 매출 숫자를 역산했다. 세 점포 가운데 두 곳은 같은 기준액을 조금씩 나눠 쓴 흔적이 있었고, 한 곳은 인근 실제 점포의 분기 매출과 끝자리까지 같았다. 그것은 복사 가능성을 강하게 보여 줬지만 누가 복사했는지는 파일 이력에 남아 있지 않았다.
이정훈이 실제 점포 주인에게 연락했다. 당사자는 자기 월별 합계가 검증용으로만 쓰이는 데 동의했고, 이름과 상호는 공개하지 말라고 했다. 두 표를 나란히 놓자 일치하는 숫자가 확인됐다. 하늘은 숫자 전체를 기사에 싣지 않고 ‘동일 수치가 다른 점포 산정에 반복’됐다고만 썼다.
저녁 무렵, 인쇄소 앞에 낯선 승합차가 잠시 멈췄다. 운전자는 내리지 않고 사진을 찍는 듯 휴대폰을 들었다가 떠났다. 마틴이 번호판을 쫓아가 찍으려 하자 선우가 말렸다. 누가 탔는지, 왜 멈췄는지 모르는 차를 증거처럼 다룰 수 없었다. 대신 출입구의 기존 방범영상 보존 시각만 적고, 사람들에게 혼자 귀가하지 않도록 동행을 정했다.
박 씨는 그 장면을 보고도 자료 사용 동의를 철회하지 않았다. 다만 집으로 갈 때 서미라와 함께 걷겠다고 했다. 선택을 바꾸지 않는 것과 겁이 나지 않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구청에는 산정표와 거래 경로를 분리한 보존 요청서가 제출됐다. 첫째는 점유 실체 미확인 세 점포의 산정 근거, 둘째는 실제 점유자 누락 사유, 셋째는 조합·가람개발·하청업체·임대인 사이 용역 문서와 거래 내역이었다. 개인 범죄를 주장하는 고발장이 아니라 원자료를 지우지 말아 달라는 요청이었다.
하늘의 기사는 그날 밤 늦게 올라갔다. 제목은 ‘비어 있는 점포에 산정액, 동화4구역 보상 기초표 출처 논란’이었다. 조합과 가람개발의 반론, 하청업체의 미답변, 현장 협조비의 주장된 목적을 모두 넣었다. 돈이 흘렀다는 사실과 그 돈이 무엇을 샀는지는 같은 문장이 아니라고 명시했다.
마지막 교정지에서 서미라는 ‘비자금’이라는 단어를 지웠다. 은평 자료에서 처음 그 말을 보았을 때와 달리, 이제는 의심을 크게 쓰는 것보다 확인된 범위를 작게라도 정확히 남기는 편이 오래 간다는 걸 알았다.
선우는 칠판의 세 칸을 사진으로 남기고 원본 문서를 봉투별로 봉인했다. 확인된 돈의 길은 비어 있는 집 앞까지 왔다. 그 문을 누가 어떤 이유로 열었는지는 아직 문서 밖에 있었다. 문을 억지로 열지 않는 대신, 그 앞에 도착한 날짜와 사람을 지우지 않는 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다음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