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운영사의 제안서는 얇은 표지와 달리 백육십 쪽이었다. 첫 장에는 노후 객실 전면 개보수, 십 년 만기 저금리 자금, 글로벌 예약망 연결이라는 세 문장이 크게 인쇄돼 있었다.
윤서린은 요약본만 읽고 회의를 잡지 않았다. 원문과 번역본, 부속 문서 목록이 모두 도착했는지부터 확인했다. 목차에는 본 계약보다 긴 데이터 운영 부속서와 인사 자문 기준이 붙어 있었다.
제안 금액이면 객실층 배선과 배관, 단열, 욕실을 한 번에 고칠 수 있었다. 현재 단계 공사로는 몇 해가 걸릴 일을 열 달 안에 끝낼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금리는 국내 조달 예상보다 낮았다. 대신 운영사는 아르덴 이름 앞에 자기 브랜드를 병기하고, 총지배인 후보 추천권과 예약 고객 정보의 공동 분석 권한을 요구했다.
`추천`과 `공동`이라는 말은 부드러웠다. 부속 조항을 읽으면 추천 후보를 거부할 때 서면 사유가 필요했고, 고객 분석 자료는 운영사 해외 서버 체계에 연결될 수 있었다.
서린은 강도윤의 레지던시 제안과 투자안을 같은 회의에 올리지 않았다. 소개 네트워크는 겹쳤지만 계약 주체와 수익 구조가 달랐다. 한쪽을 수락하면 다른 쪽도 따라야 한다는 전제도 없었다.
신탁 운영위원회는 외부 번역가 두 명을 선정했다. 한 명은 금융 계약, 다른 한 명은 호텔 운영과 노동 분야를 맡았다. 운영사에서 제공한 번역은 참고 자료로만 썼다.
직원 대표는 번역 비용이 아깝다는 의견에 반대했다. 싼 금리보다 인사와 근무표에 미칠 영향이 큰 문서였다. 이해하지 못한 조건에 표를 던지는 비용이 더 컸다.
첫 검토에서 객실 개보수 공사 중 직원 재배치 조항이 발견됐다. 운영사는 필요하면 자기 체인 호텔로 임시 파견할 수 있다고 썼다. 직원 개인 동의와 귀환 자리 보장은 명확하지 않았다.
시설 책임자는 공사 일정의 장점을 인정했다. 층별 폐쇄 기간이 짧고 임시 전원 장비도 포함돼 있었다. 자본이 크다는 이유로 기술안까지 나쁘다고 몰 수는 없었다.
한소희는 표준 객실 디자인 사용 조건을 문제 삼았다. 대피 폭과 접근성 기준은 좋아졌지만 지역 조달 가구와 아르덴의 작은 회의 기능이 사라질 수 있었다. 디자인 승인권이 어느 쪽에 있는지 물었다.
장지민은 글로벌 예약망의 유입 효과를 계산했다. 외국인 고객 접근은 넓어지지만 수수료와 후기 데이터 권한이 운영사로 기울었다. 아르덴이 계약을 끝낸 뒤 고객 연락 기록을 돌려받는 조항도 흐렸다.
운영사는 첫 화상 설명회에서 통제라는 표현을 부인했다. 국제 브랜드 품질을 지키기 위한 최소 기준이라고 했다. 서린은 표현을 두고 다투지 않고 거부권과 종료권을 문장으로 제시해 달라고 요구했다.
강도윤은 호텔 투자 회의에 주방 책임자로 참석했다. 같은 네트워크에서 개인 제안을 받은 사실을 먼저 신고했고, 운영사 식음 브랜드 조항이 있는 안건에서는 발언 범위를 공개했다.
운영사는 도윤의 해외 프로젝트가 아르덴 브랜드 가치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두 계약을 결합한 할인도 가능하다고 했다. 도윤은 자신의 경력과 호텔 자금이 교환되는 조건은 받지 않겠다고 답했다.
서린은 그 답변을 사랑의 충성으로 해석하지 않았다. 개인 계약의 독립성을 지키는 이해충돌 기준이었다. 신탁 회의록에도 같은 표현으로 남겼다.
재무팀은 자금을 거절할 경우를 계산했다. 안전 공사를 우선하면 객실 개보수는 층별로 늦어지고, 판매 가능 객실이 줄어 현금이 더 팽팽해졌다. 통제권을 지키는 선택에도 실제 비용이 있었다.
직원 설명회에는 좋은 조건부터 공개됐다. 낮은 금리, 빠른 공사, 교육 기회. 이어 인사 추천권, 파견, 고객 정보, 브랜드 종료 조항을 같은 글씨 크기로 보여 줬다.
프런트 직원 한 명은 글로벌 체인 경력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무조건 고용 위협으로만 보지 않았다. 다만 파견을 고를 권리와 복귀 직무가 계약에 있어야 한다고 했다.
주방 직원은 표준 메뉴 의무가 생기는지 물었다. 부속서에는 조식 핵심 품목과 지정 구매 비율이 있었다. 지역 식재료 계약과 충돌할 수 있어 도윤은 공급 조건 검토에서 빠지고 자료만 설명했다.
운영위원회는 질문 목록을 백열세 개로 만들었다. 운영사는 사소한 문구 때문에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서린은 사소하다면 삭제하거나 명확히 쓰는 데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첫 수정안에서 인사 추천권은 자문권으로 약해졌지만 고객 정보 공동 분석은 유지됐다. 파견에는 직원 동의가 추가됐으나 복귀 자리 보장은 없었다.
신탁 감사인은 계약 종료 때 운영사가 브랜드 기준 위반을 이유로 즉시 상환을 요구할 수 있는 조항을 찾았다. 낮은 금리는 그 순간 큰 위험으로 바뀔 수 있었다.
아르덴은 조항별 위험표를 만들었다. 삭제, 수정, 수용 가능, 추가 검토 네 색으로 나눴다. 투자사를 악으로 표시하는 칸은 없었다.
운영사도 아르덴의 요구 중 일부가 비용을 늘린다고 공개했다. 지역 조달과 독립 디자인을 유지하면 규모 할인 효과가 줄었다. 상대의 계산도 계약 협상 자료로 인정했다.
서린은 직원들에게 어느 쪽을 원하는지 단순 찬반을 묻지 않았다. 각 조항이 자기 근무와 고객 서비스에 미칠 영향을 적게 했다. 목소리가 큰 사람의 감상만 남지 않게 익명 의견도 받았다.
윤종필은 과거 해외 자본을 검토했던 경험을 제공하겠다고 했다. 운영위원회는 문서 질의만 서면으로 받았고 표결이나 협상석은 주지 않았다. 그의 귀환이 경영 복귀가 되지 않았다.
노바크라운은 같은 주에 추가 객실 리뉴얼을 발표했다. 아르덴은 경쟁사의 속도 때문에 검토 기한을 줄이지 않았다. 맞은편 불빛은 계약서의 빈칸을 채워 주지 못했다.
도윤은 저녁에 서린에게 투자안을 놓치면 자신이 떠나는 기간이 더 부담이 될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서린은 그 걱정을 계약 찬성 근거로 쓰지 않겠다고 했다. 사람의 부재와 자본의 통제는 따로 해결해야 했다.
둘은 호텔 밖에서 각자의 문서를 읽었다. 서린은 고객 정보 조항에 표시했고 도윤은 레지던시 중 이름 사용 조항을 표시했다. 같은 테이블에 앉아도 서로의 결론을 대신 내지 않았다.
두 번째 수정안이 도착했을 때 금리는 조금 올랐다. 대신 즉시 상환 조항이 좁아지고 직원 파견 복귀 보장이 들어갔다. 협상은 좋은 조건을 공짜로 얻는 과정이 아니었다.
외부 기술 검토자는 운영사가 제시한 공사 기간이 객실을 완전히 비운다는 전제라고 지적했다. 장기투숙객 이동과 직원 교육 시간이 들어가면 실제 일정은 더 길었다. 아르덴은 전제 조건까지 견적표에 적게 했다.
장기투숙객에게는 계약이 확정되기 전 이동 동의를 받지 않았다.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방을 비우게 하지 않고, 확정 뒤 선택할 대체 객실과 다른 숙소 기준을 미리 준비했다.
직원 대표는 수정안이 좋아질수록 거절하기 어려워지는 심리도 기록하자고 했다. 이미 쓴 번역비와 실사 시간이 계약 수락의 이유가 되지 않도록 지금까지의 비용을 별도 종료 비용으로 처리했다.
브랜드·인사·고객 정보 통제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운영위원회는 최종 표결을 미루고 제한적 설비 자금만 분리할 수 있는지 새 안을 요구했다.
바다 건너온 제안서는 호텔을 단숨에 새롭게 만들 수 있었다. 동시에 누가 이름을 쓰고, 사람을 뽑고, 손님의 흔적을 보관하는지 바꿀 수 있었다.
아르덴은 큰돈을 두려워해 문을 닫지도, 낮은 금리에 눈을 감지도 않았다. 제안서를 잘게 나누자 자금과 통제권이 같은 문장에 묶여 있다는 사실이 보였고, 신탁은 그 매듭부터 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