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우진이 보낸 저녁 장소는 아르덴이 아니었다. 그가 속한 체인 호텔 최상층의 회원제 식당이었다. 윤서린은 장소를 바꾸자고 하지 않았다. 대신 중립 변호사와 장지민을 동석시키겠다고 답했다. 차우진은 삼 분 뒤 '좋습니다'라고 보냈다.
강도윤은 함께 가겠다고 먼저 말하지 않았다. 서린이 로비에서 차를 기다릴 때까지 주방에 있었다. 출발 십 분 전, 포장한 샌드위치와 따뜻한 차를 들고 나왔다.
"저녁 먹으러 가는 사람한테 이걸 왜 줘요."
"차우진 식탁에서는 밥 못 먹을 것 같아서요."
도윤은 동행하지 않았다. 대신 서린이 원하면 언제든 전화하라고 했다. 보호하겠다며 자리를 대신 차지하지 않고, 선택할 수 있는 거리를 남겼다.
식당에는 예약 손님이 없었다. 긴 테이블 한가운데에 네 사람 몫의 접시가 놓여 있었지만 음식은 나오지 않았다. 차우진은 창가 끝자리에 서 있었다. 서린과 지민, 변호사가 앉고도 빈 의자 하나가 남았다.
"누굴 기다리죠?"
서린이 묻자 차우진은 대답 대신 문을 봤다. 문이 열리고 회색 코트를 입은 남자가 들어왔다. 걸음이 예전보다 느렸고 머리는 더 희어졌지만, 서린은 얼굴을 확인하기 전에 손부터 알아봤다. 호텔 장부를 넘길 때 검지로 종이 끝을 누르던 손이었다.
윤종필이었다.
서린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버지도 가까이 오지 않았다. 긴 테이블 양끝에 선 채 서로를 봤다. 지민이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차우진만 빈 의자를 윤종필 쪽으로 조금 당겼다.
"앉으세요."
서린의 말은 인사보다 딱딱했다. 윤종필은 그제야 의자에 앉았다. 코트 안주머니에서 휴대폰과 작은 수첩을 꺼내 변호사 앞에 놓았다.
그는 2019년 배성재 투자 계약에 서명한 사실부터 말했다. 호텔 자금이 바닥났고 직원 급여일이 다가오자 우선매수권과 장부 분류 변경을 받아들였다. 처음에는 한 계절만 버티면 되돌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손실이 커질수록 배성재의 의결권과 법무 접근권이 늘었다.
2022년에는 도윤을 내세운 복귀 사업으로 호텔 가치를 되돌리려 했다. 배성재는 반대로 도윤을 무너뜨려 매각 가격을 낮추었다. 윤종필은 기사 대가와 법무 유출을 일부 알았지만 공개하지 않았다. 자신의 장부 승인 책임이 드러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강도윤 씨가 떠나는 걸 막지 못한 게 아닙니다."
윤종필이 말했다. "막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이 욕을 먹고 나가면 호텔과 서린이는 남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서린의 손이 테이블 아래에서 굳었다. 아버지가 자신을 지키려 했다는 말보다, 도윤 한 사람을 계산에서 빼도 된다고 여겼다는 사실이 더 선명했다.
지난가을 윤종필은 공동운영 신탁 원본과 배성재 지급 자료를 들고 차우진을 만났다. 차우진은 두 가지 선택을 제시했다. 자료를 넘기고 체인 인수에 협조하거나, 자료를 분산 보관한 뒤 당분간 사라져 배성재의 압박을 피하라는 것이었다.
"두 번째를 골랐습니다."
윤종필이 말했다. "차 이사가 마련한 지방 숙소에 있었고, 외부 연락을 끊었습니다. 자료를 지키면 나중에 모든 걸 되돌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서린이 차우진을 봤다. "실종 신고가 된 걸 알고 있었죠."
"알았습니다."
"왜 말하지 않았어요?"
차우진은 물잔을 만지지 않았다. "윤 대표가 모습을 드러내면 배성재 쪽에서 자료를 압수하거나 장부 책임으로 먼저 고소할 가능성이 컸습니다. 그리고 아르덴이 체인에 들어오면 제가 더 안전하게 정리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안전하게가 아니라 당신 방식으로겠죠."
차우진은 부인하지 않았다. 윤종필의 생존과 증거는 배성재를 밀어낼 카드이면서 아르덴 인수를 성사시킬 카드였다. 그는 사람을 숨겨 지켰지만, 그 침묵으로 호텔을 더 약하게 만들었다.
윤종필이 서린을 향해 몸을 조금 돌렸다. "네가 이렇게까지 떠맡을 줄 몰랐다."
"그 말을 하시면 안 돼요."
서린은 처음으로 목소리를 높였다가 곧 낮췄다. "모른 게 아니라 확인하지 않은 거예요. 아버지는 자료를 지킨 게 아니라, 자료만 지키면 사람도 따라 남을 거라고 정한 거고요. 내가 버틸지, 직원들이 급여를 받을지, 도윤 씨가 어떤 이름으로 살지 묻지 않았어요."
윤종필은 변명하지 않았다. 증거 보전을 위해 숨은 선택이 필요했다고 다시 말하지도 않았다. 그는 자신의 서명과 침묵, 실종 때문에 생긴 손실을 조사받겠다고 했다. 가족에게 돌아온다는 말보다 먼저 경영권을 내려놓겠다고 말했다.
숨은 기간 동안 그는 현금만 쓰고 가명으로 머물렀으며, 정해진 날 차우진 측 연락책에게 자료 보존 상태만 알렸다. 그 생활이 고통스러웠다는 설명은 했지만 희생처럼 포장하지 않았다. 서린이 밤마다 병원과 경찰서에 전화를 걸었던 시간과 직원들이 대표 없는 호텔에서 받은 압박은 그가 자처한 불편과 같은 무게가 아니었다.
윤종필은 자신의 실종이 보호가 아니라 무단 이탈이었다고 진술서에 적었다. 장부를 지킬 다른 절차를 찾지 않았고, 딸에게 판단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는 문장도 넣었다. 변호사가 법적 표현을 완화하자고 했지만 그는 원문을 유지했다.
서린은 준비해 온 조건을 읽었다. 윤종필의 의결권은 독립 수탁자에게 맡기고 공동운영 구조가 확정될 때까지 어떤 경영 결정에도 참여하지 않는다. 모든 기기와 원본 자료를 제출하고 공개 조사에 출석한다. 장부 조작으로 확인된 손실은 개인 지분 배당과 재산에서 우선 회복한다.
"호텔로 돌아오시는 것과 경영으로 돌아오는 건 다른 일입니다."
서린이 말했다. "아버지로서 만날지는 오늘 결정하지 않겠습니다. 대표 자리로는 돌아오실 수 없어요."
윤종필은 서류를 끝까지 읽고 서명했다. 차우진에게도 조건이 주어졌다. 윤종필을 숨긴 기간의 연락 기록과 숙소 비용, 체인 인수 제안서를 제출하고, 아르덴 지분이나 운영권 협상에서 즉시 물러난다는 확인이었다.
"거절하면요?"
차우진이 물었다.
지민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오늘 대화와 913번 보관함 자료는 이미 세 곳에 보존돼 있어요. 거절 여부도 그대로 공개 확인 절차에 들어갑니다."
차우진은 오래 서류를 읽었다. 자신이 만든 식탁에서 처음으로 선택지를 받는 쪽이 됐다. 그는 인수 협상 철회에는 서명했지만 책임 인정 문구에는 이의를 달았다. 변호사는 이의까지 기록하고 자료 제출 기한을 적었다.
음식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윤종필은 물 한 모금만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린에게 다가가려다 멈췄다. "미안하다"는 말은 했지만 용서를 구하지는 않았다. 지금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아는 얼굴이었다.
서린은 호텔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도윤에게 전화를 걸었다. 첫 신호가 끝나기 전에 연결됐다.
"아버지, 살아 있었어요."
긴 침묵 뒤에 도윤이 물었다. "지금 어디예요?"
"돌아가는 중이에요."
"로비에 있을게요."
도윤은 괜찮냐고 묻지 않았다. 괜찮지 않을 답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아르덴 로비에 도착했을 때 그는 정말 같은 자리에 서 있었다. 서린은 그를 보자 걸음을 멈췄지만, 기대거나 안기지는 않았다. 도윤도 먼저 다가오지 않았다.
차우진의 식탁에서 윤종필은 돌아왔지만 과거의 자리까지 돌려받지 못했다. 증거를 지킨 선택은 확인됐고, 사람을 두고 사라진 책임도 같은 문서에 남았다. 서린은 아버지를 되찾은 날, 호텔의 지배권은 가족에게 돌려주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