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입고 장부의 11월 14일 줄에는 금액 옆에 숫자 두 개가 연필로 적혀 있었다. 1107과 913. 회계 전표 번호로 보기에는 자릿수가 짧았고, 거래처 코드로 검색하면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장지민이 두 숫자를 소리 내어 읽다가 고개를 들었다.
"객실 번호 같지 않아요?"
서린은 처음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르덴의 11층에는 1107호가 있었고, 9층에는 913호가 있었다. 너무 눈앞에 있는 답이라 오히려 늦게 보였다.
1107호의 2019년 11월 예약 기록은 비어 있었다. 객실 관리 시스템에는 판매 중지로만 표시돼 있었다. 그러나 한소희가 가져온 꽃 납품 대장에는 그날 1107호에 흰 백합 다섯 송이와 생수 네 병을 올렸다는 기록이 있었다. 숙박이 아니라 비공개 회의 세팅이었다.
"꽃 다섯 송이는 당시 회의실 기본 수량이었어요."
소희가 말했다. "정식 회의실을 쓰면 행사팀 기록이 남으니까 객실을 빌린 것 같아요."
객실 카드 서버는 오래된 자료를 월별 압축 파일로 보관하고 있었다. 지민이 관리 직원과 함께 복원하자 1107호 문은 오후 세 시 십일 분부터 네 번 열렸다. 윤종필의 총지배인 카드, 배성재 측 방문 카드, 외부 법무 임시 카드가 차례로 찍혔다. 네 번째 카드는 소유자 이름이 삭제돼 있었지만 발급 단말은 지하 전략기획실이었다.
서린은 삭제된 카드 번호를 따로 적었다. 2019년 당시 차우진은 체인 그룹 인수자문팀에서 아르덴 투자 구조를 검토하고 있었다. 아직 그 카드가 차우진 것이라는 증거는 없었다. 추측란에만 이름을 놓았다.
1107호 문을 열 때는 시설팀과 변호사, 객실 노조 대표가 입회했다. 지금은 일반 객실로 쓰고 있어 서린이 먼저 예약을 막고 투숙 기록이 없는 시간을 확인했다. 벽과 가구를 함부로 뜯지 않기 위해 2019년 수리 도면부터 대조했다.
창가 아래 목재 패널 하나가 도면과 달랐다. 시설팀장이 나사를 풀자 안쪽에서 오래된 전화선과 함께 작은 황동 열쇠가 나왔다. 열쇠 고리에는 913이라는 숫자가 찍혀 있었다.
"객실 열쇠가 아니에요."
시설팀장이 말했다. "예전 프런트 귀중품 보관함 열쇠입니다. 방 번호를 표찰로 달아 손님 물건을 맡아 주던 방식이었어요. 지금은 지하 보관실에 장만 남아 있습니다."
913호는 당시 배관 누수 때문에 석 달 동안 판매가 중지된 객실이었다. 그런데 관리 기록에는 윤종필이 일주일에 두 번씩 913호를 점검한 흔적이 있었다. 투숙객도 없는 방을 총지배인이 직접 확인할 이유는 없었다.
913호 옷장 안쪽에는 귀중품 보관증 반쪽이 테이프로 붙어 있었다. 보관함 번호는 913, 맡긴 사람은 윤종필, 물품 칸에는 '운영안 원본 및 의결 자료'라고 적혀 있었다. 맡긴 날짜는 2019년 11월 14일이었다.
지하 보관실은 오래 비워 둔 탓에 먼지 냄새가 났다. 철제 보관장 아랫줄에 913번 문이 남아 있었다. 황동 열쇠는 한 번에 돌아가지 않았다. 시설팀장이 윤활제를 쓰기 전에 변호사가 상태를 촬영했고, 소희가 보관증의 찢어진 결을 확인했다.
두 번째 시도에서 자물쇠가 열렸다. 안에는 방수 봉투 세 개와 작은 녹음기, 낡은 객실 방명록이 들어 있었다. 서린은 손을 뻗다가 멈췄다. 변호사가 면장갑과 인수 목록을 건넸다. 혼자 먼저 만지지 않는 것이 이제 자연스러운 순서가 되어 가고 있었다.
첫 봉투에는 배성재 투자 계약의 원안과 수정안이 있었다. 원안에는 경영 참여 한도가 적혀 있었지만 수정안에서는 그 문장이 사라지고, 일정 손실이 나면 우선매수권이 생기는 조항이 들어갔다. 1107호 회의 날짜와 수정일이 같았다.
두 번째 봉투에는 납품업체 지급 내역과 장부 정정 지시가 있었다. 윤종필의 서명도 남아 있었다. 그는 투자금을 받기 위해 실제로 수정안에 서명했고, 비용 분류를 바꾸라는 지시를 승인했다. 피해자이기만 한 기록은 아니었다.
세 번째 봉투 표지에는 '아르덴 공동운영 신탁 초안'이라고 쓰여 있었다. 직원, 장기 거래처, 지역 소액투자자, 가족 지분을 하나의 목적신탁 안에 묶되 어느 집단도 단독 과반을 가질 수 없게 한 구상이었다. 호텔 매각이나 담보 제공에는 네 집단 가운데 세 집단의 동의가 필요했다.
초안에는 직원이 현금을 넣지 않아도 근속과 운영 기여로 수익권을 쌓는 방식, 거래처가 대금 유예를 강요받지 않도록 지급 우선순위를 공개하는 방식도 적혀 있었다. 윤종필은 가족 지분을 보존하되 가족 대표가 총지배인까지 겸하지 못하게 했다. 자신이 다시 지배하지 못할 구조를 생각했다는 흔적이었다.
객실 번호 뒤에 숨겨졌던 장부가 비로소 운영 규칙의 초안으로 읽혔다.
도윤은 초안을 넘기다 한 줄에서 멈췄다. 주방과 객실, 시설, 협력업체가 각각 운영위원을 선출한다는 문장이었다. 호텔의 얼굴로 한 사람을 세우는 대신, 실제로 공간을 굴리는 사람들이 의사결정에 들어오는 구조였다.
"좋은 안이네요."
지민이 말했다. 그러다 바로 덧붙였다. "그런데 왜 실행하지 않았죠?"
서린은 마지막 장을 봤다. 필요한 투자 확약서 칸이 비어 있었다. 윤종필은 직원 설명회도, 거래처 동의도 받지 않았다. 배성재에게 수정 계약을 들킨 뒤 초안을 객실 번호 뒤에 감추고 멈췄다.
녹음기에는 1107호 회의 일부가 남아 있었다. 배성재는 장부 손실을 키우면 채권자들이 매각에 동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종필은 호텔을 공동운영 신탁으로 넘기겠다고 맞섰다. 세 번째 목소리는 차우진과 비슷했지만 음질만으로 단정할 수 없었다. 그는 '지금 서명하면 호텔은 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서린은 녹음을 끝까지 듣고 기기를 끄지 않았다. 마지막 십여 초 동안 의자 끄는 소리와 아버지의 짧은 숨이 남아 있었다. 그 침묵까지 원본이었다.
객실 방명록에는 2023년 11월 23일 기록도 있었다. 윤종필이 실종 전날 같은 보관함을 열어 녹음기와 최신 지분표를 다시 넣었다. 2019년 회의와 지난가을의 마지막 회의가 913번 보관함에서 연결됐다.
서린은 공동운영 초안을 바로 아르덴의 해답으로 발표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만든 문서라는 이유만으로 옳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직원과 거래처가 실제로 동의할지, 자금이 얼마나 필요한지, 가족 지분을 어떻게 제한할지 새로 검토해야 했다.
"이건 유언장이 아니에요."
서린이 말했다. "아버지가 시작했다 멈춘 제안서예요. 쓸 수 있는 조항만 가져오고, 잘못된 건 다시 쓰죠."
지민은 원본을 세 부로 복제해 각각 다른 보관처로 보낼 준비를 했다. 소희는 2019년 꽃 대장과 객실 기록을 묶었다. 도윤은 녹음 원본의 음성 감정을 외부 기관에 맡기자고 했다. 누구도 아르덴 안의 기억만으로 결론 내리지 않았다.
보관실을 나올 때 913번 철문은 다시 잠기지 않았다. 증거는 봉인 봉투로 옮겨졌고 빈 보관함만 남았다. 객실 번호처럼 적혀 있던 장부의 숫자는 회의 장소와 숨겨 둔 문서, 실행되지 못한 공동운영 구상을 한 줄로 이어 주었다.
서린은 황동 열쇠를 증거 봉투에 넣으며 1107호와 913호를 다시 생각했다. 호텔의 객실은 누군가 머물다 나가는 곳이었다. 아버지는 그 방들에 책임을 숨기고 사라졌다. 이제 남은 사람들은 숨긴 문서를 꺼내 실제로 머물 수 있는 구조로 바꿔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