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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8-10화]

왕국의 마지막 큰 전투

작성: 2026.09.01 19:51 조회수: 1
창작물 안내
[AI 생성물] 본 소설의 내용과 표지는 인공지능(AI) 모델을 통해 기획 및 작성된 허구의 창작물입니다.
이 콘텐츠는 AI가 창작한 장기 연재소설입니다. 실제 인물이나 사건과 무관한 창작물입니다.

일곱 영지 연합군은 남은 병력과 곡식을 하르엔 강 북쪽에 모았다. 수도로 가는 가장 넓은 돌다리 하나를 차지하면 열린 창고를 다시 복종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다.

헌장 수비대도 남쪽 둑에 집결했다. 수도 강경파는 보급이 끊긴 적을 여기서 전멸시키면 내전이 끝난다고 말했다.

강 위 다리에는 군대만 있지 않았다. 북쪽 마을 주민 천여 명이 전투를 피해 남쪽으로 건너고 있었고, 반대 방향에는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탈영병 가족이 있었다.

강물은 해빙기로 불어났다. 오래된 중앙 교각에는 전투 전부터 금이 있었고 봉인 학교 경보가 노란 빛을 냈다.

루키안의 학생들은 양군에 같은 경고를 보냈다. 병력과 수레가 한꺼번에 오르면 두 시간 안에 중앙 구간이 무너질 수 있었다.

연합 사령관 테르안은 경고가 헌장군의 속임수라고 무시했다. 다리를 먼저 건너 남쪽 둑을 밀어내라는 명령을 내렸다.

헌장군 장군도 적이 다리 위에 있을 때 교각을 끊자고 제안했다. 강에 떨어뜨리면 수적 열세를 뒤집을 수 있었다.

엘리안은 다리 파괴 명령을 거부했다. 적 병력뿐 아니라 피난민과 북쪽 마을의 유일한 겨울 길도 함께 사라진다고 했다.

장군은 최고 지휘자가 아니면서 작전을 막을 권한이 있느냐고 따졌다. 조정탁의 봉인·피난 중단권이 이미 발동됐고, 해당 구역 주민 대표도 반대했다.

세라는 회색늑대 방어대를 다리 남쪽 양옆에 나눴다. 중앙 돌격이 아니라 피난 행렬이 빠질 두 갈래 퇴로를 지키는 임무였다.

연합군 첫 줄이 다리에 올랐을 때 북쪽 피난민이 뒤에서 밀렸다. 사병은 사람을 옆 난간에 붙이고 그 사이로 전진하려 했다.

세라는 남쪽 방패벽을 열어 피난민을 먼저 통과시켰다. 적 병사가 섞여 들어올 위험이 있었지만 무기를 내려놓은 사람은 선 안에서 따로 확인했다.

첫 화살은 연합군에서 날아왔다. 헌장군도 응사했고 다리 위 천막 하나에 불이 붙었다. 연기가 피난 행렬을 덮었다.

이동 학교는 바람벽으로 연기를 강 쪽으로 밀었다. 학생들은 화살을 되돌리는 주문을 쓰지 않고 시야와 숨 쉴 길만 열었다.

전투 수레가 중앙 교각 위에서 서로 부딪쳤다. 돌 금이 벌어지고 난간 한쪽이 강으로 떨어졌다. 경보가 붉게 바뀌었다.

엘리안은 공격 중단 신호를 양쪽에 보냈다. 테르안은 헌장군이 약해졌다고 보고 기병을 더 올렸다.

남쪽 장군은 지금 측면으로 건너면 테르안을 잡을 수 있다고 했다. 세라도 지휘부까지 닿는 길을 보았다. 전쟁을 끝낼 기회처럼 보였다.

그때 다리 중앙에서 피난 수레 하나가 기울었다. 아이와 노인 열두 명이 난간 쪽으로 쏠렸고 말이 줄에 걸렸다.

세라는 테르안 쪽 공격로를 버리고 구조대로 방향을 틀었다. 회색늑대 대원들은 방패를 바닥에 깔아 깨진 돌 위 길을 만들었다.

연합군 병사 둘도 수레를 붙잡았다. 바로 앞의 적을 돕는 선택이었다. 헌장군은 그들을 포로로 잡지 않고 구조 표식 아래 함께 움직이게 했다.

엘리안은 남쪽 공병에게 교각을 지지할 목재를 보내고 북쪽 목수에게도 공개 요청을 했다. 북쪽 주민은 자기 군대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들보를 가져왔다.

다리를 살리려면 양군 중장비가 내려가야 했다. 남쪽 투석 수레부터 물렸고 그 장면을 본 연합군 하급병이 자기 공성 수레를 뒤로 밀었다.

테르안은 후퇴자를 쏘라고 명령했다. 궁수 셋이 시위를 당겼지만 지휘관 하나가 명령서를 찢었다. 열린 창고에서 가족 명부를 본 병사였다.

연합군 줄이 갈라졌다. 계속 전진하는 부대와 다리를 내려가는 부대, 피난민을 돕는 병사가 서로 부딪쳤다.

헌장군 강경파는 혼란을 이용해 돌격했다. 엘리안은 자기 편 중단패를 울렸지만 선두 스무 명이 듣지 않았다.

세라는 회색늑대 방패를 그들 앞에 세웠다. 적을 막던 방패가 자기 편 돌격을 막았다. 마렉은 옛 전우와 몸싸움을 하며 칼을 뽑지 않았다.

남쪽 장군이 선두를 교대시키고 돌격 명령을 취소했다. 위반에 대한 심리는 전투 뒤 남기되 지금은 다리 하중을 줄이는 것이 먼저였다.

교각 아래 봉인 돌이 깨지며 물이 솟았다. 루키안의 학생은 중앙 출력을 올리면 잠시 버틸 수 있지만 자기 감각을 잃을 위험이 있다고 보고했다.

루키안은 멀리 이동 수레에서 혼자 맡지 말라고 답했다. 다리 양쪽 작은 봉인 여섯 곳이 각자 상한 안에서 힘을 나눴다.

북쪽 왕정파 학교 학생도 하나의 봉인을 맡았다. 정치 충성을 묻지 않고 측정값과 중단 시각만 공유했다.

한 시간 동안 전투는 구조와 후퇴로 바뀌었다. 완전한 휴전 협정은 없었지만 양쪽 현장 병사가 붉은 경보가 꺼질 때까지 화살을 내려놓았다.

다리 북쪽 끝에서는 명령을 모르는 후속 기병이 계속 달려왔다. 주민 전령이 흰 천을 들고 접근했지만 말발굽 소리에 신호가 보이지 않았다.

세라는 회색늑대 깃발을 펴지 않고 다리 하중 경보판을 높이 들었다. 연합군 구조병도 자기 부대 북을 중단 박자로 쳤다. 서로 다른 신호가 같은 위험을 가리켰다.

후속 기병 선두 셋이 멈추지 못해 난간에 부딪쳤다. 한 명이 강으로 떨어졌고 헌장 수영병과 연합 밧줄병이 함께 끌어올렸다. 구조 뒤에도 그 병사의 전투 책임은 별도로 남았다.

다리 아래 수리공은 중앙 돌 하나가 더 빠지면 보행로도 끊긴다고 외쳤다. 양쪽 병사 스무 명이 방패와 창을 내려놓고 들보를 밀었다. 누구 지휘 아래였는지보다 어느 쪽에서 몇 명이 일했는지를 입회자가 적었다.

구조에 참여하지 않은 부대도 있었다. 남쪽 궁수대 하나는 함정이라 의심해 제자리를 지켰다. 전투 뒤 그 선택을 비겁함으로 단정하지 않고 당시 받은 정보와 지휘를 확인했다.

테르안은 그 틈에 북쪽 말길로 빠져나갔다. 세라는 추격 기병을 보낼 수 있었지만 마지막 피난 행렬이 아직 다리 위에 있었다.

엘리안도 체포 기회를 놓쳤다는 비난을 받아들였다. 지휘자 한 명보다 수백 사람의 퇴로와 다음 겨울의 다리를 택한 결과를 숨기지 않았다.

해 질 무렵 중앙 구간은 반쯤 내려앉았지만 끊어지지 않았다. 사람은 한 줄씩 걸어서 건널 수 있었고 무거운 수레는 양쪽에 남았다.

사망자는 서른둘이었다. 헌장군 열하나, 연합군 열셋, 신원 미확인 여섯, 주민 둘이었다. 큰 전투에서 적게 죽었다는 말로 숫자를 줄이지 않았다.

부상자는 양쪽 치료소에 나뉘었고 신원 미확인 시신은 문장으로 편을 추정하지 않았다. 가족 확인 전까지 같은 천으로 덮었다.

다리 전투에서 사라진 사람 명부도 따로 만들었다. 강에 휩쓸렸는지 북쪽으로 돌아갔는지 모르는 이름을 사망자로 서둘러 확정하지 않았다. 가족에게는 수색 구역과 다음 확인 시각을 알렸다.

다음 날 연합군은 더 싸울 곡식과 말이 없었다. 열린 창고로 돌아간 병사들은 영주 명령 대신 주민 심리를 요구했다.

헌장군도 추격하지 않았다. 강 북쪽 마을을 점령하면 승리할 수 있었지만 피난민이 돌아갈 집을 군영으로 만들지 않기로 했다.

테르안은 도망 중 체포되지 않았다. 이틀 뒤 자기 영지 주민 회의와 사병 부관에게 신병을 넘겼다. 체포 장면을 엘리안의 전공으로 만들 수 없었다.

하르엔 다리에는 양군 깃발 대신 하중표와 통행 순서가 걸렸다. 공병과 목수, 봉인 학생, 주민 대표가 수리 교대를 정했다.

세라는 부러진 방패를 난간 틈에 잠시 끼웠다가 수리공에게 넘겼다. 전투 기념물로 두면 다리의 실제 금을 가릴 수 있었다.

엘리안은 남쪽 둑에서 승리 연설을 하지 않았다. 중단 명령을 어긴 자기 편 병사와 테르안의 후퇴 사격 명령을 같은 공개 심리 목록에 올렸다.

왕국의 마지막 큰 전투는 적 지휘부를 섬멸한 날로 남지 않았다. 양쪽 군대가 자기 승리보다 먼저 무너지는 길에서 내려오고, 패잔병과 피난민에게 같은 퇴로를 남긴 날로 기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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