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대관식이 멈춘 뒤에도 일곱 영지의 전쟁 북은 그치지 않았다. 연합 지휘부는 라엔이 납치됐다며 마지막 총동원을 명령했다.
그러나 군대를 움직일 곡식은 왕관에서 나오지 않았다. 농민의 수확, 상인의 수레, 제분소의 밤일, 창고지기의 열쇠가 있어야 했다.
베도르 제분 마을에서 첫 전쟁 장부가 수도로 왔다. 주민용 밀 이천 자루가 `왕실 회복 공납`으로 바뀌고 사병대에 넘어간 기록이었다.
장부를 보낸 사람은 영주 회계관의 견습 서기 나르였다. 그는 처음 석 달 동안 같은 숫자를 직접 베꼈고, 굶주린 마을을 본 뒤 사본을 만들었다.
헌장 지지자들은 그를 영웅으로 불렀다. 피해 주민은 늦게 공개한 책임도 묻자고 했다. 나르는 두 평가 모두를 받아들이며 자기가 서명한 장부 줄을 숨기지 않았다.
사본은 일곱 영지 상단망을 통해 퍼졌다. 칼세른 상인들은 자기 창고표와 비교해 군량이 두 번 계산된 부분을 발견했다.
미레안 농민 대표는 전쟁 세금이 한 계절만이라는 약속과 달리 종료일 없이 이어졌음을 밝혔다. 영주 인장 옆 주민 입회 칸은 비어 있었다.
도르반 광산에서는 철 수레가 농기구가 아니라 창과 갑옷 제작소로 향했다. 광부들은 배송을 멈추면 사병이 가족 배급을 끊을까 두려워했다.
일곱 영지 주민 대표들은 수도에 모이지 않았다. 각 시장과 제분소, 광산 앞에서 같은 시각에 자기 장부를 펼쳤다. 한곳을 점령해도 공개를 되돌릴 수 없게 했다.
연합 지휘부는 장부가 위조됐다고 선언했다. 영주 회계관들은 전시 기밀을 훔친 사람을 교수형에 처하겠다고 공고했다.
아델린은 진짜라는 선언만으로 맞서지 않았다. 종이 출처, 잉크 시기, 수레 번호, 받은 창고, 실제 병사 배급을 대조할 검토단을 보냈다.
검토단에는 헌장 회계관뿐 아니라 왕정 복귀 지지 상인도 참여했다. 그는 왕이 필요하다고 믿었지만 이중 장부는 왕의 이름으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고 했다.
첫 검토에서 나르 사본 한 줄이 틀린 것으로 드러났다. 오십 자루가 오백으로 베껴져 있었다. 반대자들은 전체가 거짓이라고 외쳤다.
나르는 오류를 인정하고 원본 수레표를 가져왔다. 숫자를 고친 뒤에도 주민 몫 삼천여 자루가 사병에게 간 사실은 남았다. 오류를 숨기지 않은 검토가 오히려 나머지 기록을 단단하게 했다.
칼세른 시장은 사병 공급을 멈출지 공개 표결했다. 전면 중단은 전선의 강제 징집병과 그 가족까지 굶길 수 있다는 반대가 나왔다.
주민들은 공격용 추가 배급과 기본 식량을 나눴다. 화살·말 사료·공성대 곡식은 중단하되 병사 개인 한 끼와 부상자 치료 식량은 계속 보냈다.
표결 결과는 창고 문에 걸렸다. 사병 지휘관은 전쟁 방해라며 열쇠를 내놓으라고 명령했다.
창고지기 한 사람의 열쇠로 문이 열리지 않았다. 농민 대표, 상인, 창고지기가 각각 가진 세 열쇠가 필요했다. 로벨에서 시작된 공동 열쇠가 적 영지 안에서도 다른 모습으로 자라 있었다.
사병 스무 명이 문을 부수러 왔다. 주민들은 돌과 창을 들지 않고 창고 앞에 재고표와 가족 배급 명부를 펼쳤다.
병사 가운데 열둘은 자기 가족 이름을 명부에서 찾았다. 공성대에 곡식을 가져가면 가족 배급이 이틀 뒤 끊긴다는 수치도 보았다.
지휘관은 명령을 반복했지만 병사 여덟은 망치를 들지 않았다. 나머지도 문을 한 차례 친 뒤 멈췄다. 불복종한 병사 이름은 주민이 숨겨 다른 부대로 끌려가지 않게 했다.
베도르에서는 영주가 창고에 불을 지르라고 명령했다. 빼앗길 바에는 태워 반역자에게 책임을 씌우려는 계획이었다.
불을 놓으러 온 하인이 주민에게 쪽지를 보냈다. 그는 이전에 기름을 옮긴 책임을 피하지 않되 마지막 명령은 거부했다.
주민 소방대와 이동 학교 학생이 창고 지붕을 적셨다. 회색늑대는 불을 놓으려는 병사를 체포하기보다 기름 수레가 들어오는 길을 막았다.
붙잡힌 지휘 문서에는 영주의 서명과 연합 사령부 확인이 있었다. 방화가 실패한 뒤 문서를 만든 현재 책임자를 별도 심리에 올렸다.
미레안의 열린 창고에서는 반대 문제가 생겼다. 주민들이 사병 창고를 전부 열어 자기 몫이라며 가져가려 했다.
아델린의 적진 회의에 참여했던 농민 대표가 약탈을 막았다. 전쟁 장부를 공개하는 것과 재판 없이 모든 물자를 나누는 것은 다르다고 했다.
재고는 주민 배급, 병사 기본식, 영주 사유분, 출처 불명으로 나뉘었다. 출처 불명 곡식은 당장 굶는 가구에 임시 지급하되 최종 소유 심리를 남겼다.
영주 지지 주민은 자기 창고까지 빼앗길까 두려워했다. 공개 대상은 전쟁 세금과 공동 창고였고 개인 집 수색은 금지됐다.
열린 창고는 문을 항상 열어 둔 곳이 아니었다. 재고와 열쇠 보관자, 배급 결정, 이의 절차가 보이는 곳이었다. 밤에는 다시 잠갔고 다음 날 여러 손으로 열었다.
연합군 보급은 일주일 만에 절반으로 줄었다. 말 사료가 먼저 끊겨 기병대가 움직이지 못했고 공성 수레 제작도 멈췄다.
연합 사령관은 주민을 적군 협력자로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어느 마을 하나를 공격하면 다른 여섯 영지 창고도 동시에 문을 닫겠다는 공동 답신이 나왔다.
그 답신은 수도가 쓰지 않았다. 일곱 영지 주민 대표가 서로 다른 인장과 손도장을 찍었다. 왕정 지지자도 생계와 강제 징집을 이유로 참여했다.
세라는 이 틈에 연합 지휘부를 암살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보급이 끊긴 지금 지휘자 몇만 죽이면 전쟁이 끝난다는 계산이었다.
그녀는 거절했다. 지휘자를 밤에 죽이면 장부 공개가 수도의 비밀 공작으로 보이고, 남은 사병이 보복할 명분을 얻을 수 있었다.
엘리안도 열린 창고를 헌장 승리라고 선포하지 않았다. 주민들이 왕정 복귀를 지지하면서도 전쟁 장부를 거부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대로 인정했다.
사병 탈영자가 늘었다. 일부는 무기를 들고 곡식 줄에 나타났다. 주민들은 무기를 공동 보관함에 놓고 이름과 부대, 강요 여부를 확인한 뒤 기본 한 끼를 줬다.
열린 창고 대표들은 탈영병 한 끼가 주민 몫을 줄이는 수량도 숨기지 않았다. 공동 복구 기금에 긴급 곡식을 요청하고, 어느 마을이 얼마나 더 부담했는지 다음 표결에 올렸다.
도움이 무한하다는 거짓 약속 대신 남은 재고와 우선순위가 보이자, 탈영병도 두 번째 몫을 군대 지위로 요구하기 어려웠다.
강요를 주장한 모든 말을 곧바로 믿지는 않았다. 가족 위협 쪽지, 급료, 이전 전투 행동을 분리해 휴전 심리로 넘겼다.
나르는 공개 뒤 자기 마을로 돌아가지 못했다. 영주 측이 가족을 찾고 있었다. 그는 수도 관직 보상을 받지 않고 다른 영지 검토단에 합류했다.
그의 가족은 비밀 피난처가 아니라 주민 보호 명부 아래 다른 가구와 같은 규칙으로 이동했다. 유명한 폭로자의 가족만 먼저 구하지 않았다.
일곱 번째 영지의 장부가 마지막으로 열렸을 때 연합군은 강 위 다리로 병력을 모으고 있었다. 남은 곡식으로 한 번의 큰 전투를 치르려는 움직임이었다.
창고 앞 주민들은 전쟁을 이미 끝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공급을 멈춘 선택이 지휘부를 더 위험한 마지막 승부로 몰 수 있음을 알았다.
그들은 피난 수레와 부상자 식량을 먼저 남겨 두고 창고 문을 다시 잠갔다. 전쟁을 먹이지 않는 것과 전쟁 뒤 사람을 먹이는 일을 동시에 준비했다.
일곱 영지의 열린 창고에서 승리의 깃발은 오르지 않았다. 장부 숫자와 세 개씩 나뉜 열쇠, 명령을 거부한 병사의 빈 망치만 남았다.
왕국의 전세는 암살이나 새 왕의 기적이 아니라, 주민이 자기 곡식과 노동을 더는 보이지 않는 전쟁에 내주지 않겠다고 결정하면서 기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