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 공격 뒤 일곱 영지 연합은 아델린에게만 협상 초대장을 보냈다. 왕실 피를 가진 사람과 왕위 복구를 논의하겠다는 문장이 첫 줄에 있었다.
의회는 함정이라며 거절하자고 했다. 왕정파가 그녀를 붙잡아 섭정이나 여왕으로 선포할 수 있었다.
아델린은 초대장을 버리지 않았다. 다만 왕위 협상은 하지 않고 민간 통로와 주민 대표 회의를 논의하겠다는 답신을 공개했다.
연합은 그녀의 수행원을 왕실 시녀와 기사로 제한했다. 아델린은 지방 서기, 피해 마을 대표, 치료관, 왕정 지지 관찰자를 데려가겠다고 고쳤다.
두 차례 답신 끝에 적진 회의 장소는 미레안 수도원으로 정해졌다. 양군 주둔지에서 같은 거리였고 봉인 학교가 지하 흐름 안전만 확인했다.
아델린의 혈통은 통행권을 얻는 데 쓰였다. 그러나 입장문에는 그 혈통이 표결 수나 결정권을 늘리지 않는다고 적혔다.
세라는 호위를 맡겠다고 했지만 아델린은 회색늑대가 수도원 안에 들어오지 않게 했다. 바깥 길까지만 지키고 회의 중단은 주민 대표도 요구할 수 있었다.
적진 경계에서 사병은 아델린에게 왕실 예법대로 절했다. 그녀는 답례를 받되 왕실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자기 이름을 연합의 정당성 장면으로 쓰지 말라고 기록관에게 요구했다.
수도원 안에는 일곱 영주의 대리인과 사병 지휘관 셋이 앉아 있었다. 주민 자리는 두 개뿐이었고 둘 다 영주가 지명한 상인이었다.
아델린은 회의를 시작하지 않았다. 각 영지에서 주민 대표를 어떤 절차로 뽑았는지 확인할 때까지 자기 자리도 비워 두겠다고 했다.
베도르 대리인은 전쟁 중 선거는 불가능하다고 반발했다. 영주가 주민을 보호하니 대표권도 가진다는 주장이었다.
미레안 수도원장은 전쟁 중에도 수도원 배급 대표를 매주 뽑고 있다고 말했다. 완전한 선거가 어렵다면 마을·상단·농민·피난민의 임시 위임장을 받을 수 있었다.
회의는 하루 미뤄졌다. 일곱 영지 안으로 전령이 나갔고, 돌아오지 못하는 곳은 공개 빈자리로 남기기로 했다.
그 밤 연합 장군은 아델린을 따로 찾아왔다. 그녀가 섭정을 수락하면 전투를 멈추고 엘리안에게 로벨 영지를 보장하겠다고 제안했다.
아델린은 제안을 듣는 자리에 입회자를 불렀다. 장군이 비밀을 요구하자 대화가 끝났다. 사람의 안전과 영지를 왕실 자리의 대가로 바꾸지 않았다.
다음 날 주민 대표 열셋이 도착했다. 농민 다섯, 상인 셋, 광산 노동자 둘, 피난민 둘, 사병 가족 하나였다. 두 영지는 전령을 막아 빈자리가 남았다.
도착한 대표도 모두 자유롭지는 않았다. 칼세른 농민 대표의 동생이 사병대에 있었고, 그가 반대표를 내면 위험할 수 있다는 쪽지가 따라왔다. 회의는 그 이해와 압박을 먼저 기록했다.
피난민 대표 하나는 원래 영지 명부에서 이름이 지워져 위임 자격을 의심받았다. 함께 이동한 백여 가구의 손도장과 배급 명부가 그의 현재 대표권을 증명했다. 토지를 잃었다고 목소리까지 잃지는 않았다.
빈 두 자리에는 영주 대리인을 대신 앉히지 않았다. 전령 방해 사실과 확인되지 않은 주민 수를 적은 판을 놓고, 그 영지에 직접 적용할 조항은 다음 확인 때 다시 묻게 했다.
영주 대리인들은 그들이 헌장파가 고른 사람이라고 의심했다. 각 대표는 위임한 사람 수와 장소, 반대 의견, 이동 중 받은 도움을 공개했다.
왕정 복귀에 찬성하는 대표도 넷 있었다. 아델린은 그들을 빼지 않았다. 휴전은 정치 신념을 바꾸는 표결이 아니었다.
첫 안건은 사흘 동안 곡식 호송과 치료 수레를 공격하지 않는 것이었다. 영주 대리인은 헌장군이 군수를 숨길 수 있다고 했다.
세라가 만든 적재표와 양쪽 입회 검문 규칙이 제시됐다. 주민 대표는 자기 마을 검문자를 직접 추천했다.
두 번째 안건은 강변 다리에서 양군을 열 걸음씩 물리는 일이었다. 사병 지휘관은 전략적 손실이라며 거부했다.
강변 주민은 두 군대가 붙어 있는 동안 물을 길을 수 없고 죽은 가축도 치우지 못했다고 말했다. 전술의 빈 공간에 실제 생활이 들어왔다.
아델린은 자기 표를 마지막에 냈다. 왕실 혈통 대표가 아니라 수도 의원 한 표였다. 찬성 이유와 왕정 복귀 반대 입장을 함께 기록했다.
휴전안은 영주 대리 표만으로는 부결됐지만 주민 대표와 사병 가족 표를 포함하면 통과했다. 연합은 그 표결 방식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아델린은 그러면 자기 통행권도 같은 왕실 규칙만으로 무효라며 회의에서 나가겠다고 했다. 혈통을 선택적으로 정당성에 쓰지 못하게 했다.
미레안 영주 대리인이 처음으로 주민 표를 임시 인정했다. 자기 영지 곡식길이 가장 급했기 때문이다. 선의가 아니라 이해가 휴전 문을 열었지만 이유를 숨기지 않았다.
사흘 휴전에는 자동 종료와 위반 확인 절차가 붙었다. 화살 한 발이 날아와도 즉시 전면 전쟁으로 돌아가지 않고 발사 위치와 지휘 여부를 한 시간 확인한다.
첫날 저녁 실제 위반 신고가 왔다. 왕정파 검문대가 구호 수레에서 곡식 다섯 자루를 내렸고 헌장 호위는 약속이 깨졌다며 무기를 들었다.
공동 확인자는 검문 지휘관이 아니라 굶은 하급병 셋이 자루를 가져간 사실을 찾았다. 지휘관은 즉시 돌려주고 병사 식량 부족을 자기 보급표에 올렸다. 휴전 전체를 깨지 않고 현재 피해와 부대 책임을 남겼다.
둘째 날에는 헌장 정찰이 약속선보다 두 걸음 북쪽으로 들어갔다. 길 표시가 비에 지워진 탓이었지만 왕정파 주민은 위협을 느꼈다. 선을 다시 긋고 정찰 책임자가 공개 사과했다.
아델린은 사과를 평화의 미담으로 포장하지 않았다. 작은 위반을 실제로 고치는 경험이 있어야 더 큰 사건 때도 바로 전쟁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다고 기록했다.
회의가 끝나기 전 적진 사병 하나가 수도원 밖에서 헌장 서기를 때렸다. 연합 장군은 개인 싸움이라며 넘기려 했다.
주민 대표들은 휴전 안에서 회의 참가자 안전도 다뤄야 한다고 요구했다. 사병은 교대됐고 피해 서기는 치료와 진술을 받은 뒤 회의에 돌아왔다.
아델린은 그 사건을 휴전 파기라 선언하지 않았다. 작은 폭력을 묻지 않는 것도, 한 사람 행동으로 모든 사람을 다시 전장에 넣는 것도 거부했다.
돌아오는 길 사병 경계는 그녀에게 여왕 폐하라고 불렀다. 아델린은 이름과 의원 직함을 고쳐 말하게 했지만 병사를 처벌하지 않았다. 그가 받은 교육과 현재 명령을 조사 목록에 넣었다.
수도에서는 아델린이 적과 타협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반대로 왕정파 유인물은 그녀가 곧 섭정에 오른다고 선전했다.
그녀는 회의 전체 기록과 비밀 제안 시도, 주민 대표 위임장을 공개했다. 어느 쪽의 편리한 이야기에도 빈칸을 주지 않았다.
사흘 동안 곡식 수레 열아홉 대와 치료 수레 일곱 대가 강을 건넜다. 화살 두 발이 날아왔지만 지휘 명령이 아닌 사냥꾼 오인으로 확인됐다.
두 영지의 빈 주민 자리는 끝내 채워지지 않았다. 휴전이 성공했다는 이유로 그 침묵을 동의에 넣지 않았다.
휴전 마지막 날 주민 대표들은 다음 회의도 요구했다. 영주가 탈퇴 인장을 거두지 않더라도 자기 마을 통행과 징집을 말할 자리가 필요했다.
아델린은 상설 왕실 사절 자리를 받지 않았다. 각 영지가 새 대표를 뽑고 회의 장소도 번갈아 정하게 했다.
적진 회의에서 그녀의 피는 문턱을 넘는 데만 쓰였다. 안쪽 결정은 열셋의 서로 다른 목소리와 공개 표결이 만들었다.
수도 성벽이 보일 때 아델린은 왕실 휘장을 가방에 넣었다. 통행권의 효력은 끝났고 다음 회의에는 다른 사람도 같은 길을 쓸 수 있어야 했다.
내전은 사흘 뒤 다시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러나 영주끼리 나누려던 왕위와 영토의 탁자에 주민 대표 의자가 들어갔다. 한번 생긴 그 자리는 다시 쉽게 지울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