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보다 먼저 사라진 것은 화살이 아니라 빵이었다. 일곱 영지 길목이 닫힌 지 나흘 만에 수도 빵값은 두 배가 됐고 베도르 변두리에서는 하루 한 끼 배급도 끊겼다.
양쪽 지휘부는 상대가 굶주림을 무기로 쓴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닫힌 창고에는 사병용 곡식과 주민용 곡식이 섞여 있었고, 어느 수레가 누구에게 가는지 확인할 장부도 끊겼다.
세라는 로벨 창고에서 곡식 호송대 열두 대를 꾸렸다. 수도에만 보내면 적 영지 주민을 굶겨 항복시키는 일이 되고, 모두에게 나누면 사병이 빼앗을 위험이 있었다.
마센은 적재표를 세 종류로 나눴다. 주민 구호, 치료소, 군수. 자루 색과 매듭을 달리하고 각 수레의 도착지와 수량, 되돌아올 빈 자루까지 적었다.
군수 수레는 호위 병력과 함께 지정 길로 갔다. 구호 수레에는 활과 갑옷을 싣지 않았고 호위도 짧은 검과 방패만 들었다.
수레 옆에는 흰 밀 이삭을 묶은 중립 표식이 달렸다. 세라는 표식만 믿지 않았다. 어느 검문에서도 짐을 열어 볼 수 있되 입회자 둘이 자루 수와 손상 여부를 적는 규칙을 붙였다.
첫 검문은 헌장 수비대가 했다. 병사들은 적지로 가는 수레라며 곡식 일부를 수도 창고로 돌리려 했다. 세라는 자기 편 검문도 적재표를 넘을 수 없다고 막았다.
수도 장교는 전시 징발권을 내세웠다. 조정탁 기록에는 주민 구호를 군수로 바꾸려면 해당 지역 주민 대표와 군량 담당의 공개 승인이 필요했다.
장교는 수레를 세 시간 붙잡았다. 세라는 힘으로 통과하지 않고 지연 시각과 빵이 끊긴 마을 수를 수도 벽에 보냈다. 시민들이 자기 군대의 검문도 보게 했다.
승인이 나지 않자 장교는 수레를 놓았다. 세 시간 동안 젖은 자루 둘은 따로 표시해 먼저 쓰도록 했다. 지연 비용도 어느 편의 선의로 사라지지 않았다.
강변에서는 왕정파 사병이 두 번째 검문을 했다. 그들은 중립 표식을 헌장군의 위장이라고 주장하며 호위대 무장 해제를 요구했다.
세라는 호위 검을 공동 보관 수레에 넣되 사병 무기고에는 맡기지 않겠다고 제안했다. 열쇠는 수레 대표와 강변 마을 노인이 나눠 가졌다.
사병 지휘관은 첫 수레만 열었다. 주민용 밀과 치료소 약초가 나왔지만 바닥을 뜯어 숨은 화살을 찾겠다고 했다.
마센이 만든 적재표에는 수레 바닥 두께와 수리 흔적까지 있었다. 마을 목수가 자기 도장을 확인하고 바닥을 한 칸만 열었다. 무기는 없었다.
검문 중 사병 하나가 자루를 칼로 찔렀다. 밀알이 길에 쏟아졌다. 호위 대원이 그를 밀치려 했지만 세라가 중단패를 들었다.
찢어진 자루 무게와 병사 이름, 지휘관의 조치가 기록됐다. 사병 지휘관은 자기 병사를 뒤 교대로 보내고 같은 양을 영주 창고에서 보충하겠다고 약속했다.
세라는 약속만 받고 떠나지 않았다. 창고 문까지 동행한 마을 대표가 자루 하나를 가져오는 것을 확인했다. 보충 자루에도 출처와 반환 의무가 붙었다.
첫 목적지 미레안 경계 마을에서는 주민이 수레를 돌려보내려 했다. 헌장 곡식을 받으면 영주에게 반역자로 찍힐 수 있다는 두려움이었다.
세라는 배급을 강요하지 않았다. 마을 회의가 원하는 장소와 시간을 정하게 하고, 이름을 수도에 보내지 않는 대신 총수량과 잔량만 공개했다.
마을은 밤 우물가에서 배급하기로 했다. 영주 지지자도 줄에 섰고 반대자도 섰다. 정치 입장을 묻지 않고 가족 수와 지난 배급 시각을 확인했다.
한 사병 가족이 두 몫을 요구했다. 남편이 전선에 있으니 더 받아야 한다는 이유였다. 주민 배급 담당은 군 복무를 우선표로 쓰지 않고 다친 노인 집에 먼저 줬다.
그 결정 때문에 사병 가족은 세라에게 항의했다. 세라는 영주의 전쟁 급료 문제와 주민 구호 기준을 분리해 기록하고, 가족을 남편의 선택으로 벌주지 않았다.
두 번째 목적지 치료소에는 양쪽 부상자가 있었다. 헌장군 치료관은 포로에게 같은 죽을 줄 수 없다고 반발했다. 약초가 부족해 아군 부상도 위험했다.
루키안의 이동 학교가 상처 정도와 필요한 양을 다시 분류했다. 포로 여부는 치료 순서 칸에서 빠졌다. 중상자는 먼저, 회복 중인 사람은 적은 몫을 받았다.
밤사이 구호 수레 하나가 사라졌다. 흰 밀 이삭 표식만 길가에 버려져 있었다. 양쪽은 서로의 약탈이라고 주장했다.
세라는 바퀴 자국과 빈 자루 번호를 따라갔다. 수레는 헌장 수비대의 외곽 막사에서 발견됐다. 굶은 병사들이 장교 명령 없이 끌고 간 것이었다.
수비대장은 전투 중인 병사도 굶었다며 처벌을 막으려 했다. 세라는 굶주림을 이유로 이해할 수는 있어도 주민 몫을 숨긴 선택은 심리해야 한다고 했다.
남은 곡식은 주민에게 돌려주고 이미 먹은 양은 군수 장부의 빚으로 기록했다. 병사 개인 가족에게 물리지 않고 부대 배급 결정과 장교가 도움 요청을 늦춘 이유를 조사했다.
중립 표식은 그날 효력을 잃은 듯 보였다. 아군도 표식을 떼고 수레를 훔쳤기 때문이다. 세라는 새 표식을 만들지 않았다.
이틀 뒤 더 위험한 일이 생겼다. 왕정파 보급 수레가 흰 밀 이삭을 베껴 달고 밑바닥에 화살을 숨겨 강변 검문을 통과하려 했다. 중립 표식이 실제로 군수 위장이 된 첫 사례였다.
마을 입회자는 매듭 모양이 다르고 출발지 적재표가 없다는 점을 발견했다. 수레를 불태우지 않고 화살과 곡식을 분리해, 곡식 출처와 수레꾼이 무엇을 알았는지 확인했다.
수레꾼 둘은 표식을 붙이라는 명령만 받았고 밑바닥 칸을 몰랐다고 했다. 지휘 서신은 왕정파 보급관에게 이어졌다. 표식 위조 책임과 운반자의 정보가 같은 죄가 되지 않았다.
그 사건 뒤 흰 이삭만으로 통과할 수 없게 했다. 출발지와 도착지 주민이 서로 아는 짧은 확인 문구를 매번 바꾸고, 짐을 열 권한과 검사로 생긴 손해 배상도 함께 적었다.
대신 각 검문과 손실, 보충, 지연, 도착 수량을 같은 지도에 붙였다. 중립은 깨끗한 천의 힘이 아니라 위반이 어느 편에서 나와도 같은 방식으로 드러나는 데 있었다.
세 번째 호송부터 마을 대표가 출발지와 도착지에서 자루를 함께 셌다. 호위대는 수레를 지키지만 배급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왕정파는 구호가 헌장 선전이라고 비난했다. 세라는 수레에 엘리안 이름이나 로벨 문장을 달지 않았다. 수량표에는 곡식을 낸 마을과 받을 마을만 적혔다.
헌장 지지자들은 적 영지 주민이 곡식을 먹고 다시 사병을 지원할 수 있다고 걱정했다. 아델린은 그래서 주민 장부와 전쟁 장부를 나눠 공개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했다. 굶기는 것으로 충성을 시험하지 않았다.
일주일 뒤 수도 빵값은 더 오르지 않았고 미레안 마을의 굶주림 사망 보고도 멈췄다. 모든 수레가 도착한 것은 아니었다. 둘은 지연됐고 하나는 강물에 바퀴가 빠졌다.
손실 자루도 승리 수치에서 빼지 않았다. 길마다 어디에서 중립 표식이 존중됐고 어디에서 행동이 어긋났는지 표시했다.
세라는 첫 수레에 달았던 흰 밀 이삭을 회수해 원장 옆에 걸었다. 먼지와 칼자국이 묻어 더는 깨끗하지 않았다.
곡식 호송대가 내전을 끝내지는 못했다. 그러나 칼보다 먼저 끊긴 빵을 어느 편의 항복 조건으로도 두지 않자, 주민은 영주와 군대가 숨긴 전쟁 비용을 보기 시작했다.
마지막 빈 수레가 로벨로 돌아올 때 아이들이 바닥에서 밀알을 주웠다. 세라는 그 작은 손실까지 세게 했다. 구호는 선행의 이야기보다, 출발한 자루가 실제 입에 닿았는지를 끝까지 묻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