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로스가 체포된 이틀 뒤 의회 정문이 완전히 열렸다. 불탄 문서 냄새와 젖은 곡물 냄새가 함께 들어왔고, 의원들은 창문이 아니라 자기 발로 회의장에 들어갔다.
의회 재개 첫 안건은 왕을 뽑는 일이 아니었다. 쿠데타 기간 운영회의 결정과 종료 시각, 체포 절차, 문서고 손실, 곡물고 재고를 공개 확인하는 일이었다.
아델린은 왕실 자리에 앉지 않았다. 이전과 같은 의원석에 이름표를 놓고, 섭정안을 거절한 기록도 회의록에 남겼다.
엘리안에게는 중앙 단상 자리가 제안됐다. 그는 변경 대표석 가운데 빈 의자를 골랐다. 군사 조정 보고를 하되 표는 변경의 다른 대표와 같았다.
운영회는 열흘째 정오에 끝나도록 돼 있었다. 아직 벨로스 심리와 기록 복구가 남았다는 이유로 연장하자는 안이 나왔지만, 기능별 후속 조직을 정식 절차로 만들기로 하고 임시 권한은 예정대로 닫았다.
군량은 선출된 배급위원회, 기록 복구는 문서고·지방 기록자·이용자 대표의 공동실, 근위 재배치는 수도 경비 심사단으로 넘어갔다. 임시 운영회가 자기 후임을 임명하지 않고 의회와 주민 선출을 거쳤다.
벨로스의 첫 공개 심리는 피해자 진술로 시작됐다. 그는 왕실 명령을 따랐다고 주장했지만, 기한 없는 포괄 승인과 인질 조건, 위조 인장 회의록이 차례로 제시됐다.
그가 최종 형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수도는 체포를 결말로 꾸미지 않았다. 방화, 위조, 군량 전용, 강요가 서로 다른 증거와 피해를 가진 만큼 심리도 이어져야 했다.
근위병 가운데 명령을 거부한 사람은 영웅 훈장을 받지 않았다. 그들의 불복종 기록은 처벌 대상에서 분리됐고, 이전에 참여한 봉쇄와 피해는 별도로 확인됐다.
광장 퇴장 통로의 흰 석회선은 지우지 않았다. 시민들은 그 위에 죽은 사람 이름을 적으려 했지만 이번 충돌에는 사망자가 없었다. 대신 다친 사람과 나간 사람, 돌아오지 않은 사람의 수를 적었다.
하르트는 증언자석에서 질문에만 답했다. 의전실 상자 번호를 설명한 뒤 열쇠를 요구하지 않았다. 루엔이 대조표를 읽었고 지방 기록자가 빈칸을 지적했다.
세라는 회색늑대의 수도 임무 종료를 보고했다. 무기표와 위반, 교대, 체포 보조 기록을 모두 넘겼다. 대원들은 왕궁 앞 승리 행진 없이 동문 바깥 대기지로 나갔다.
마렉은 수도 사람들이 자신들을 끝내 믿었는지 물었다. 세라는 믿음이 아니라 다시 멈출 수 있는 기록을 남겼다고 답했다. 다음에 들어오려면 새 표결과 새 임무표가 필요했다.
정오 종이 울리기 직전, 의회 서쪽 일곱 자리에서 대표들이 동시에 일어났다. 왕실과 오래 계약을 맺은 일곱 영지의 사절이었다.
그들은 수도가 근위총감을 모욕하고 왕실 계승을 거부했으므로 더는 공동 헌장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군량, 통행세, 봉인석 지원, 병력 약속을 모두 거둔다고 했다.
첫 사절은 이것이 전쟁 선포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각 영지가 자기 경계를 스스로 지킬 뿐이며 수도가 새 왕을 세우면 돌아오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하르트가 인계한 서신과 붙잡힌 보급관 명부에는 다른 준비가 적혀 있었다. 영지마다 고용 병사와 귀족 사병을 모으고, 강을 건너는 다리와 곡물 창고를 먼저 확보하라는 지시였다.
두 영지에서는 이미 공동 봉인망 응답이 끊겼다. 세 번째 영지는 수도 상단의 수레를 돌려보냈고, 네 번째는 헌장 판결을 인정하지 않는 별도 재판소를 열었다.
의원들은 사절을 붙잡자고 외쳤다. 쿠데타 자금과 연결된 서기관이 나왔으니 공모를 조사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엘리안은 서신과 답변을 확보하되 사절 신분만으로 구금하지 말자고 했다. 귀환을 막으면 일곱 영주는 대표가 납치됐다는 명분으로 사병을 바로 움직일 수 있었다.
피해자 대표는 또 피를 피하려고 책임자를 놓아주는 것이냐고 물었다. 엘리안은 확인된 서기관은 심리에 남고, 다른 사절은 자기 답변과 전달 문서를 공개한 뒤 정해진 길로 돌아가게 한다고 구분했다.
아델린은 일곱 영지 탈퇴서를 한 문서로 묶지 않았다. 요구와 준비 정도, 내부 반대, 공동 기능 의존도가 모두 달랐다. 같은 날 일어났다고 같은 이유로 움직인 것은 아니었다.
첫 영지는 왕실 혼인 계약을 되살리려 했고 둘째는 북방 광산 통행세를 노렸다. 셋째는 벨로스와 실제 자금 거래가 있었으며 넷째는 사병 지휘관이 영주보다 강했다.
다섯째 영지의 사절은 탈퇴문을 읽고도 비밀리에 반대 의원 명단을 건넸다. 여섯째에서는 농민 대표가 군량 징발을 거부하고 있었다. 일곱째는 봉인망 의존도가 높아 완전 단절하면 자기 도시가 먼저 위험했다.
엘리안은 일곱 깃발을 하나의 적으로 그리는 전쟁 지도를 거부했다. 각 영지 안에서 전쟁을 원하지 않는 사람과 강요받는 병사, 끊기면 모두 다치는 기능을 따로 표시했다.
세라는 수도 방어부터 굳혀야 한다고 했다. 회색늑대만으로 일곱 사병대를 상대할 수 없으며, 변경 공동체와 수도 민병대가 방어 구역을 정해야 했다.
운영회가 끝났으므로 엘리안은 혼자 동원 명령을 내릴 수 없었다. 의회는 사흘 안에 영지별 공개 협상단과 공동 방어안을 표결하기로 했다. 공격 전진은 별도 승인 없이는 금지됐다.
봉인국 후임 감독단은 사병 충돌이 봉인석 길을 끊을 경우를 경고했다. 중앙 봉인으로 되돌리지 않고 천 개의 작은 봉인망에 우회 노드를 만들 계획을 냈다.
군량 담당은 수도 비축이 스무 날뿐이라고 보고했다. 일곱 영지가 길을 닫으면 피난민과 병사에게 같은 배급 규칙을 적용해야 했다. 귀족 창고도 재고 공개 대상이 됐다.
아델린은 왕실 보석을 팔아 군량을 사자고 제안했다. 왕관은 상징 보존을 이유로 제외하자는 반대가 나왔지만, 그녀는 굶는 사람보다 철제 왕관의 형태가 우선일 수 없다고 했다.
의회는 왕관을 녹이지는 않되 담보로도 한 사람이 내놓을 수 없게 네 열쇠 보관을 유지했다. 다른 왕실 보석 일부는 공개 평가와 기한 있는 환매 조건으로 곡물 계약에 쓰였다.
수도 쿠데타 종료 결의는 해 질 무렵 통과됐다. 지휘부 통제와 인질 점거는 끝났고, 운영회는 해산됐으며, 남은 범죄는 공개 심리로 넘어갔다고 적었다.
결의문은 평화가 왔다고 선언하지 않았다. 일곱 영지의 탈퇴와 사병 소집, 군량 위험, 봉인길 단절을 다음 공개 위험 목록에 올렸다.
광장에서는 왕궁 깃발을 다시 세울지 논쟁이 일었다. 의회는 기존 왕실기와 변경기, 시민기를 같은 높이로 임시 게양하고 어느 하나도 중앙 꼭대기에 두지 않았다.
사절단이 서문을 나갈 때 시민들은 돌을 던지지 않았다. 대신 각 수레 번호와 동행자, 가져간 문서, 도착 예정 길을 기록했다. 돌아갈 권리가 흔적 없는 권리는 아니었다.
첫 정찰 보고는 밤에 왔다. 가장 가까운 영지의 언덕에 사병 모닥불이 세 줄로 늘었고, 공동 창고에는 일곱 문장이 찍힌 새 자물쇠가 달렸다.
세라는 칼을 갈았지만 출정 명령을 기다리지 않았다. 피난 길, 우물, 봉인 우회로, 병사 가족 연락처부터 지도에 표시했다. 전쟁 준비가 전투 계획만을 뜻하지 않게 했다.
엘리안은 빈 왕좌가 있는 왕실 역사관을 지나 의회로 돌아왔다. 철제 왕관은 네 자물쇠 뒤에 그대로 있었고, 누구도 그에게 열쇠 회의를 요구하지 않았다.
의회 안 서쪽 일곱 자리는 비어 있었다. 의자마다 탈퇴서 한 장과 그 영지 안 반대자·강요받는 병사·끊기면 위험한 길의 목록이 함께 놓였다.
엘리안은 빈자리를 적의 깃발로 덮지 않았다. 그 앞에 일곱 개의 작은 등불을 켜고, 연락이 끊기거나 피난 신호가 오면 누구든 불빛을 바꿀 수 있게 담당자를 나눴다.
수도의 마지막 종이 울렸다. 쿠데타는 끝났지만 나라의 균열은 성벽 밖으로 번지고 있었다. 왕관 없는 변경백은 왕이 되는 것으로 그 균열을 덮지 않았다. 그는 일곱 불빛 사이에 지도를 펴고, 다가올 내전에서 무엇을 지킬지 여러 사람과 다시 묻기 시작했다.